1타 강사, 철저히 한국적인 신드롬
최근 정부의 3기 신도시 지정 발표와 맞물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이 단체로 저지른 부적절한 행위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의혹의 핵심은 3기 신도시 예정지에 100억원대 토지를 사들였다는 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함과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물론 아직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행위가 ‘내부자 불법 거래’라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일부에서는 ‘신도시 지정 취소’ 같은 극약 처방이 필요하며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강경한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조속히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순리대로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물론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그런데 최근 LH 현직 직원이 일으킨 물의는 이것만이 아니다. 3월 초 LH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토지 경매 강의로 거액의 수익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청약 당첨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며 당장 수도권에 주거를 마련해야 하는 입장도 아닌지라 토지 투기보다는 이 사건 쪽에 조금 더 주목하고 그 원인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았으며 어떤 함의가 숨겨져 있을까를 고민해 봤다.
위의 영상에서도 보도되었지만 다시 한 번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LH에 따르면 서울지역본부 모 사업단에 근무하는 40대 직원은 모 유료 사이트를 통해 토지 경·공매 강의를 해 지난 1월 말부터 감사를 받고 있다. 그는 사내에서 토지 보상 업무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실제 이름이 아닌 필명을 사용했고 자신을 '대한민국 1위 토지 강사', '토지 경매/경매 1타(매출 1위) 강사'라고 홍보했다. 아울러 “부동산 투자회사에 18년간 근무했으며 토지와 관련한 수많은 수익 실현과 투자를 진행했다"는 경력 사항도 덧붙였다. 그가 홍보하고 강의한 ‘토지 기초반'은 5개월 과정으로, 수강료는 23만원에 달했으며 유튜브에도 패널로 나와 자신의 투자 경험을 여러 차례 설명하기도 했다.
LH는 지난해 8월 직원들에게 인터넷에서 개인 활동을 할 경우 겸직 허가를 받으라는 지침을 공지했지만 그는 지키지 않았다. 현재 그는 "온라인 강의를 한 적 없다"며 "회사 직원이라서 특별하게 강의하거나 그런 적은 없다"고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LH 측은 "내부 자체 감사가 마무리 수순"이라며 "겸직 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거짓말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한 사실이 확인돼 인사 조처와 함께 징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해당 직원은 직위 해제된 상태이며 민/형법상의 처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부적인 규정을 어긴 것에 대한 조치는 응당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강의 수익이 부당 이익이라면 마땅히 환수되어야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주목한 부분은 이 직원의 규정 위반이나 도덕적 해이를 차치하고 이런 현상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해당 직원이 강의를 개설하고 그에 대한 소정의 수강료를 책정한 후 수익을 챙길 수 있었던 이유는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하고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수강생들의 선택을 어리석다거나 부적절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해당 강의에서 부동산 경매를 접하고 나아가 깊이 이해하게 되어 본인들의 투자에 도움을 받고 자산 증식에 성공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수강생들은 다음에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긍정적인 답변을 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한다.
부동산이라는 거대하고도 애매한 개념(혹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 방법인가?
소위 ‘1타 강사’에게 수업을 듣는다면 나의 목적이 달성될 확률이 현실적으로 더 높아지는가?
어떤 현상의 원인이 단지 한 사람, 한쪽 편에게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과연 어떤 속사정들이 겹쳐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 질문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며 분석해 보려 한다.
부동산은 물질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실은 현대인의 욕망과 취향이 고도로 응축되어 있는 재화이다. 때문에 가격이 책정되고 오르내리는 원리, 입지 조건에 따른 평가, 사람들의 선호 여부를 객관적이고 수치적으로 평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에 배웠던 각종 교과나 소정의 자격을 위한 과목과는 그 결 자체가 다르며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학습해서는 부동산 투자의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특히 모든 강의는 본질적으로 수동적일 수밖에 없으며 학습을 위한 수단 중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수강생들은 강의 수강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강의 내용 자체보다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바로 앞에서 지켜봄으로써 동기 부여되는 효과가 더 의미있다’라는 논리를 앞세워 강의 예찬론을 펴기도 한다. 물론 사람에게는 직접 만나봐야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있으니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공한 강사는 수많은 수강생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눌 수 없고 당연히 맞춤 조언을 해주기도 어렵다(솔직히 수강생들에게 거의 관심도 없다). 게다가 그 강사가 성공한 과정은 단지 수 차례의 강의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다. 굳이 방법을 찾는다면 강사의 일상에 동행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참고하고 그로부터 성공의 비결을 깨닫는 것 정도가 있겠지만 그건 강사와의 특별한 친분이 있거나 간청하여 허락을 얻어내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강사의 과거로 돌아가 관찰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니 그나마 이 방법이 조금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물론 투자를 위한 과정에 소정의 강의 수강이 포함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과도하게 ‘의존’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보긴 어렵다. 투자하고자 하는 지역 및 물건을 직접 찾아 다니며 관찰하고 틈틈이 부동산 관련 서적을 사거나 빌려서 읽고 유튜브 등에서 무료 콘텐츠를 시청하는 등의 능동적인 노력을 병행한 사람이라면 강의를 수강해도 주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에서는 그 누구도 아닌 ‘내 생각’만이 나를 살릴수도 아닐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소위 ‘1타 강사 신드롬’은 부동산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험생들을 가르치는 학원가 1타 강사들이다. 이들은 해당 업계에서 범접할 수 없는 입지를 구축했으며 학생들에게 강사를 넘어 거의 신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물론 이들은 학생들이 보다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해당 과목을 학습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들의 존재로 인해 사교육 시장에서는 건전한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궁극적으로 시험은 학생이 치는 것이지 강사가 절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강사가 업계 최고의 실력과 인지도를 보유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학생의 성적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해당 과목에 대한 학생의 최소한의 관심과 나름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주 최강’의 강사가 온다 한들 ‘천지개벽’할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학생 본인이 충분히 고민해 본 후 이해되지 않는 일부분에 대해서 학원 강의를 참고하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과정 등을 거쳐야만 비로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원리는 과목이 ‘국영수’에서 부동산 투자로, 수강생이 학생에서 성인으로 바뀌어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부동산 거래를 해 본 경험이 부족하며, 평소에 부동산 시장 전반에 대한 관심도 없고, 본인 거주지 이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1타 강사 아니 부동산의 신이 와서 강의해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피트니스에 관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 유튜버는 ‘트레이너가 몸짱인 것은 그의 직업에 대한 충실한 태도를 반영할지는 몰라도 내가 몸짱이 되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했다. 물론 강사가 많은 경험을 통해 쌓아온 투자에 대한 내공까지 무시하긴 어렵지만, 강사가 축적한 자산과 나의 미래 자산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부동산 강의의 경우 입시와는 달리 수강생의 성장을 객관적으로 증빙할 수 있는 데이터조차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1타 강사의 후광 효과는 착시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통한 학습에 대한 경로 의존성과 스타 강사에 대한 환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학창시절부터 주입식 교육만을 받아왔으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양성할 기회는 거의 갖지 못했다(물론 사회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지식 교육에는 주입식이 유용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무엇을 제대로 알아가기 위한 능동적인 학습은 귀찮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비용을 투입해 타인에게 배우려는 습관이 형성된다. ‘자기 계발’이라는 외피가 씌워진 수업은 실제로 강사가 그저 ‘떠먹여주는’ 모양새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무언가를 비용을 들여 보다 쉽게 배우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심리와 이를 이용한 해당 강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합쳐져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강사의 직위 때문에 특별히 화제가 되었을 뿐 그동안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비슷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는 점에서 낯설지 않은 기시감(Déjà Vu)마저 느껴진다.
물론 한국의 교육열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온 주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제대로 된 공부에 대한 개념이 재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정 개념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불필요한 오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면 책상에서의 단편적인 지식 습득을 넘어 직접 체험하고 만나며 타인과 대화하는 ‘공감각적’ 학습이 필요하다. 특히 부동산 투자와 같은 개인 맞춤형 답안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인의 역동성이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학습 태도와 만난다면 이번 사태의 유형과는 다른 새로운 ‘한국적 신드롬’이 발생하여 모두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