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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Mar 01. 2021

전쟁이 공연이 되는 그 곳, 잠실학생체육관

다시 만난 프로농구 직관 이야기

 서울 잠실에 위치한 잠실학생체육관(이하 학생체)은 1977년 개관 이래 수많은 스포츠 경기 및 공연을 개최한 한국의 Main Arena 중 하나이다. 그 많았던 이벤트 가운데 1980년대 중반 시작되어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농구대잔치는 학생체의 ‘리즈 시절’을 상징하는 행사였다. 특히 1994년 연세대가 대학팀으로는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하고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우지원(이상 연세대) 및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이상 고려대) 등의 스타 플레이어들(a.k.a 오빠부대)이 주축이 되어 연고전 라이벌 매치를 치르던 1990년대의 학생체는 스포츠 분야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핫플’이었다.


https://youtu.be/QeinWGa66lg

모든 승부가 명승부이자 마지막 승부이던 그 시절. 1994년 MBC배 대학농구 결승전에서 맞붙은 연세대와 고려대



 하지만 이후 농구대잔치의 개최장소가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으로 옮겨지고 얼마 후인 1997년 초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프로경기는 잠실체육관(현재 서울 삼성의 홈구장)에서만 열리게 되었다. 물론 그 후로도 학생체에서 농구 경기가 간혹 열렸지만 대부분 대학 및 고교 경기였고 그렇게 지난날 농구의 메카였던 시절은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10월 서울 삼성과 함께 잠실체육관을 사용해오던 서울 SK가 ‘분가’를 하게 되는데 새로 이사한 곳이 바로 학생체였다. 이로써 농구팬들은 다시금 매년 최소 늦가을에서 최대 봄까지 학생체에서 농구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체는 농구대잔치 시절의 찬란한 역사를 뒤로 하고 조금씩 프로 구단 전용 경기장으로서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마침 2000년대 후반 모 그룹인 SK가 추구하던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 정책에 힘입어 학생체와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아쉽게도 이제 사라지는)의 홈구장인 문학 야구장은 팬들을 위한 맞춤 나들이 공간으로 태어났다. 덕분에 양 구장은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팬 서비스가 가장 확실히 자리잡은 경기장으로 꼽힌다.


경기장 이전 후 초창기인 2005년 경기 모습


현재의 베이지색 플로어로 단장한 모습. 2014년 고양 오리온과의 경기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코로나 19는 프로스포츠에도 예외없이 그 마수를 뻗쳤다. 결국 2020년 초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시즌 전면 중단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고 반년 이상이 흐른 2020년 가을 새로운 시즌도 무관중 체제로 개막했다. 10월 중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면서 일시적으로 관중 입장이 가능해지기도 했지만(개인적으로 이 무렵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의 홈경기를 직관했었다), 11월 말부터 터진 코로나 3차 대유행 탓에 팬들은 직관의 즐거움을 다시금 접어야 했다.

이후 겨울의 끝자락에 달할 무렵 코로나의 예봉은 조금 무디어졌고 이에 따라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된 탓에 지난 2월 25일 1년여만에 학생체에서 열리는 서울 SK나이츠와 안양 KGC인삼공사의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전체 수용인원의 10%만 입장을 허용했지만 직관이 가능하다는 설레임에 들떠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5G의 속도’로 티켓을 구매했다. 방역 수칙의 준수를 위해 입장이 지연될 수 있음을 고려해 경기 시작 30분 전 넉넉하게 도착했고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6시 30분의 경기장 모습. 에이스 김선형을 필두로 한 선수들의 배너가 시즌 중임을 나타낸다.



학생체의 수용 인원은 6200여석으로 이웃한 잠실체육관의 13500여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아담한 사이즈 덕분에 보다 가까이에서 생생히 경기를 지켜본다는 느낌이었다. 3층이었지만 좌석 앞에 긴 테이블이 놓여있어 개인 소품들을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또 다른 행운이었다. 게다가 베이지색 플로어와 깔맞춤인 화사한 조명 덕분에 스포츠 경기라기보다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즐거운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3층에서 보니 경기장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자리 명당일세~~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양팀 모두 왕성한 활동량을 기반으로 하는 압박 수비를 펼쳤고 그 와중에서도 수비에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찰나의 틈을 타고 득점이 이루어졌다. 김선형(SK)과 이재도, 변준형(이상 KGC) 등 리그 수준급의 가드들을 보유한 양팀답게 공수 전환의 속도도 매우 빨랐다.  1~2쿼터까지는 양팀이 대등한 경기를 했고 전반이 끝났을 땐 37:33으로 KGC가 겨우 4점 앞설만큼 박빙이었다.


양팀의 빠른 템포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전반이 대등하게 끝났지만 이런 식이면 후반으로 갈수록 SK가 고전을 면치 못할 거라 예상했는데 결국 그대로 됐다. 김선형은 33세에도 여전히 스피드와 탄력 및 탁월한 코트 비전을 갖춘 리그 최고의 가드임을 경기 내내 보여주었다. 하지만 안영준과 최부경, 외국인 자밀 워니 등 나머지 SK선수들의 움직임은 무거웠고 볼은 잘 돌지 못했다. 자연히 패턴에 의한 좋은 찬스를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ᅵᆸ중력 부족으로 수많은 슛을 실패했다. 전반의 득점 중 상당수는 개인 능력에 의존해 힘겹게 만들어졌다. 설령 수비가 강하더라도 이날과 같은 공격으로는 승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KGC는 수비도 강력했지만 공격에서도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다양한 루트로 득점했다. 특히 가드 이재도는 탁월한 볼 키핑 능력과 넓은 시야, 준수한 슈팅 능력 등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상대의 압박 수비를 등지고도 자유자재로 코트를 누비는 모습은 축구의 플레이메이커를 연상시켰다. 이날의 그는 JD(재도)를 넘어 마치 ZD(지단)과도 같았다. 1쿼터 마지막 마무리 뱅크슛 장면은 Scene of Day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재도는 리그 전체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확실한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제껏 한 번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것은(대표 2군격인 동아시아 대표팀엔 선발된 바가 있다) 아쉬운 일이다.


 안양과 국대의 보배 오세근 역시  승리의 결정적 퍼즐을 제공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과거에 비해 다소 날씬해진(?) 탓에 이제 한 물 간 것 아닌가 싶은 우려는 거의 ‘연예인 걱정’ 수준이었다. 거의 풀타임을 뛰면서도 상대 외국인 선수들을 막아냈고 침착한 결정력으로 14점을 곁들였다. 폭발적인 활동량으로 상대의 기를 꺾은 문성곤, 3점 라인 밖에서 볼을 잡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전성현, 현란한 드리블과 돌파로 수비수의 ‘발목’을 노리는 변준형, 내외곽을 넘나들며 상대방인 자밀 워니와 닉 미네라스를 압도한 외국인 선수 맥컬러 등 이날의 KGC는 어느 하나 ‘거를 타선이 없었다’.




결국 경기는  KGC가 78:62로 완승하며 끝났다. 사실 KGC의 라인업은 ‘준 국가대표’라 불릴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베테랑 양희종과 오세근을 비롯하여 위에 언급한 선수들 중 상당수가 대표팀에 ‘들락날락’하고 있다. 여기에 리그 정상급 가드로 성장하던 중에 입대한 박지훈까지 다음 시즌에 가세한다(물론 트레이드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에서 현재의 멤버로 4-5위를 기록 중인 성적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친다고도 할 수 있다(참고로 6위까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 물론 플레이오프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집중력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문명사에서 전쟁은 그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곁에 머무르며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물론 전쟁으로 인해 양산된 수많은 비극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류는 어쩌면 전쟁 이면에 존재했던 박진감과 짜릿함은 잊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전쟁을 공통의 조상으로 하여 탄생한 현대의 수많은 스포츠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2021년 겨울 서울 잠실에서도  매주 ‘평화로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공간을 장식하고 꾸미는 유려한 데코레이션과 팬들의 환호는 이 전쟁을 멋지고 화려한 공연으로 만들어준다. 세상을 덮고 있는 지금의 시련이 끝나고 학생체가 -다른 모든 공간도 - 만원이 되는 그 날엔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많은 사람들의 긴장감과 기대, 온갖 희열과 아쉬움이 이 공연장을 수놓을 것이다. 그날의 세상은 얼마나 더 아름답게 보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브런치 서버에 이상이 있는지 동영상을 전혀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유형의 글에 사진만 첨부하기엔 너무도 아쉽고 허무했지만 몇 시간째 시도해도 업로드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축소본’의 글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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