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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Mar 26. 2021

같이 읽기 좋죠. 다만 이렇게라면 어떨까요?

독서 모임을 ‘가상 기획’하다

 봄을 맞아 다시 세상은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각종 대면 모임 및 강의는 아직도 그 재개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지만 궁금했던 것을 배울 수 있고 지인들과는 나누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도 되기 때문에 질병 사태가 진정되면 조속히 참여하고 싶은 행사들이다.

 특히 독서 모임은 신선하고도 매력적인 이벤트였는데, 이런 만남을 하나의 제품과 브랜드로 만든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독서와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홀로 책을 읽기 주저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맞이한 독서 모임의 ‘암흑기’(혹은 비수기)를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즐겁고도 의미있는 체험이었기에 얼른 참여해 책도 읽고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고 싶다. 하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숨겼던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즐거움은 그대로 살려두되 어떻게 아쉬움을 줄여볼까라는 마음에서 기획일지 편집일지 재창조일지 모를 여러 단상들이 떠올랐다.










 의무적 준수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앞둔 학생과 수험생과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각각 도서관(독서실)과 피트니스 센터는 ‘국룰’이다. 물론 집과 주변 체육 시설에서도 해결 가능한 일들이지만 관련 시설 업종이 유사 이래(?) 건재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 설정이라는 넛지(nudge)에 받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알 수 있다. 특히 할 필요는 있으나 다급하지 않은 일의 경우엔 더욱 그 위력이 배가된다.

 

 독서라는 행위는 이 경우에 꼭 들어맞는다. 굳이 성공한 사람들은 다독가였다는 ‘전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의 장점과 필요성은 인정한다. 특정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압축적으로 정리해 놓은 간접 경험의 결정체로서 책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알지만 읽기가 귀찮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독서 모임은 일시적 동반자들을  공간에 모으는 방법으로  ‘귀차니즘 절묘히 해결했다.


독서모임은 지식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일단 움직여 만나고 함께 읽고 이야기한 결과 책이 마냥 두렵고 어색하기만 하던 ‘독린이’들은 용기 내어 독서에 입문할 수 있었고 나 책 좀 읽는다며 ‘껌씹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책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아주 가끔은 ‘지적 스웩’을 뽐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처음 만났을지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하에 공통의 관심사인 책으로부터 출발해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과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일상으로부터의 달콤한 외도 ‘한 조각’을 맛보는 듯 신선하다. 또한 자칫 읽혀지지 않거나 잊혀질 수 있었던 많은 책들이 읽히고 알려지게 되었으며, 기존 작가들 뿐만 아니라 독서의 내공 및 업무와 관심사의 경험치가 쌓인 사람들의 저술도 활발해졌다.


무엇보다 책과 독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된 것이 독서모임의 가장 큰 순기능으로 꼽힌다. 물론 사람들이 평생 학습과 자기 계발의 필요성을 느낀 탓도 있지만 독서모임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혼자서만 알고 느낀 것을 표현하고 나누면 그 기쁨이 더 커짐을 많은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혼자 읽기에서 함께 읽기로 한 단계 개념을 확장한 결과 만들어진 독서 모임이라는 ‘발명품’은 앞으로는 더 널리 활용될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책 한 권이 담고 있는 바를 그저 한 번 읽어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내용의 진정한 뜻을 되새겨 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개진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보는 등 여러 종류의 해석 작업은 분명 필요하다. 이 중 흔히 채택되는 방법이 서평 작성인데 개중에는 의무적 서평을 요구하는 독서 모임도 있다. 물론 그 취지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일단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모임 전에 책을 더 꼼꼼하고 자세히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야 하며 모임에 참여해서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 받기도 더 수월하다. 보다 성의있고 충실한 준비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서 서평 작성은 충분히 유용하다.

 하지만 우리가 독서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책으로부터의 간접 경험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그로 인해 질적으로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서평을 아무리 공들여 쓰더라도 사고의 휘발성 때문에 우리가 결심한 바가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쉽게 말하면 글은 글이고 삶은 삶이기 때문에 서평을   자체만으로 보다 의미있는 삶의 발전이 일어나긴 어렵다. 또한 의무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 모임 직전에 서평을 제출하거나 완결 구조가 엉성한 글들을 쓰는 경우도 있다(개인적으로  분들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런 글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들 바쁜 일상에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참여한 모임이 서평 때문에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이후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글쓰기는 분명 의미있는 활동이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


 낯선 사람들과의 모임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거리두기’를 고수하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익숙한 이벤트는 아닐지라도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의 대면 만남이라는 모임의 본질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종류를 불문하고 인간 관계는 한 방의 ‘훅’보다는 가벼운 ‘잽’을 자주 날려야 가까워지고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자리에서 아무리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한들  달에  번처럼 너무 적게 만난다면 친해지는 것은 차치하고 서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 받기 어렵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곤란하지만 관심사와 성향에 대한 최소한의 파악 정도는 있어야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 ‘단톡방’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아무 이야기도 없을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는 세상과 상대방에 나를 표현하고 보여줄 때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기왕 대면 모임의 방식을 채택한 이상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아가고 친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모든 일은 사람이 만나 이루어진다. 대면 만남에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모임의 선정 도서가 인기 신간 위주로 정해지는 현상도 한 번쯤 고민해 볼 일이다. 물론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모두가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신간을 모임 도서로 정하는 게 무난하긴 하다. 다만 인기 신간이고 서점에 많이 배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반드시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하긴 어렵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유명 저서를 거의 표절한 수준이거나 울림없이 그저 좋은 말만이 담긴 ‘유체이탈’ 화법으로 쓰여진 책 등이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라오는 경우도 목격된다. 또한 사회적 필요에 의해 출간된 실용서의 경우 시공을 초월해 통용되는 원칙보다는 해당 문제의 단편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 및 전문 분야와 동떨어졌지만 모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어렵게 읽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여기에 앞서 언급한 의무적 서평 작성이라는 미션까지 주어지만 그 독서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안길 수도 있다.








 

 이쯤되면 ‘그래서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이 으레 나올 것이다. 당사자와 제3자, 생산자와 소비자, 선수와 관중~~ 후자가 봤을 땐 본인이 하면 다 잘될 것 같지만 막상 입장이 바뀌면 뜻대로 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후자의 입장에서 대답할 수밖에 없지만 평소에 자주 생각하고 여러 질문을 던져봤던 사안이라 나름 구체적이라 자신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봤다.



1. 우선 모임의 인원 제한을  것이다. 물론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3시간의 ‘러닝 타임 8명이 넘어갈 경우 의견을 교환하기는 커녕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도 빠듯했다. 여기에 조금 친해지면 간단한 사적 질문까지 나올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규모로 진행해야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 말하고 들을 기회를   있다.

2. 반드시  권만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최대 3권까지 도서의 선택폭을 늘려 참여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준다. 다만  경우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용과 의미를 조리있게 요약해  필요가 있을테니 참여자들의 보다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주최자의 입장에서 모든 책을 조금이라도 읽고 짧은 리뷰도 써서 공유할 것이다.

3. 서평 작성은 자유에 맡길 것이다. 정리된 글로 서평을 써오면 좋지만 모든 참여자들이 그럴만한 여유도 없고  서평 때문에 모임 자체를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독서 소감을 짧게라도 말할  있는 정도의 준비는 주문하고 싶다. 그럴 경우 참여자가 구술하는 소감을 정리해 즉석에서 메모로 전달하거나 가능하다면 개인 메신저로 보내줄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이 구체화되고 확장될  있다면  정도의 수고는 충분히 감당할  있다.

4. 최대  3회로 모임 횟수를 늘릴 것이다. 모두 참여하고 싶은 사람과 1번이면 족하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참여 횟수는 당연한 말이지만 자율에 맡긴다. 원하는 것을 얻어가고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바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사람의 모임이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수도 없다. 상호간의 예의를 지키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모임에 참여하고 오가면 그걸로 됐다.



  업무와 개인사에서 잠시 벗어나 책 한 권을 매개로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핏 포근한 ‘힐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 말하기를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그것이 미흡했을 경우 시간만 쓰고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허술한 기획은 참여자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참여자와 호흡을 주고받고 소통하면서도 지나침과 부족함이 없는 주최자의 맞춤 기획이 독서 모임에 꼭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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