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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pr 10. 2021

결혼식은 올렸지만 결혼하지 않았다?

구속과 책임은 다르다

 7년간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남자와 여자가 있다. 요란스럽지 않게 살았으며 격하지는 않았어도 조용하고 은은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꺼렸고 함께하는 시간도 확연히 줄어든 듯 보였다. 결국 여자를 통해 그들이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얼마 후 작은 반전이 공개된다. 두 사람은 애초에 ‘부부’가 아니었으며 그러므로 처음부터 ‘함께하는 길’도 걷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연애와 달리 결혼은 법적인 개념이며 당연히 두 사람이 부부임을 선언하는 혼인 신고라는 절차도 존재한다. 혼인 신고를 하는 순간 두 사람은 심정적으로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공동체가 되고 사회적으로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게 된다. 헤어질 때도 의사 표현에 더해 소정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반전 뒤에 밝혀진 속사정은 바로 그들이 처음부터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애초에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었으며 자연히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라는 상호 간의 합의만으로 두 사람의 삶은 분리된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혼인 신고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혼인 신고를 안 했다고 해서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도 없다. 이미 사실혼 관계의 남녀들의 존재가 그리 드물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미혼인 입장에서 타인의 삶에, 그것도 결혼 생활에 감히 훈수를 둘 의지도, 이유도, 권리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예식을 치르며 ‘결혼 생활’의 시작을 알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더라도 심정적(인간적)으로는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의 실행 여부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이다. 둘만의 잊지 못할 행복과 추억을 위해 결혼식을 치르는 것을 막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은 했지만 우린 부부가 아니야’라는 의견을 아무 이유없이 수용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다이어트 중이지만 야식은 꼭 먹어야겠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정말 조심스럽게 하나 더하자면 그들의 헤어짐을 밝힌 사람이 여자라는 사실을 주목하고 싶다(물론 더 이상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우리는 부부보다 친구 사이가 더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어 헤어지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여전히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랍니다”라는 것이 여자의 공식 입장이었다. 얼핏 봐서는 얼굴 붉히지 않고 최대한 좋게 결별했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보통의 인간 관계를 넘어 남녀 관계였고 게다가 실질적 부부 사이였다. 이 상황에서 상대를 더 많이 사랑했고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차분하게’ 유체이탈 화법으로 이별을 설명할 수 있을까? 헤어졌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좋아하며 미련이 남은 사람과 하루 아침에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을 이어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자의 입장이 괜시리 걱정되고 행여 그가 많이 아파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것이 과연 터무니없는 오지랖일까? 결정적으로 남자도 혼인 신고 없이 살자는 의견을 받아들였을까?






 


본인이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이 없거나,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앞에 있는 상대방이 배우자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결혼하지 않으면 된다. 그 선택에 대해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으며 책임을 강제로 부담해야 한다는 법 역시 세상 어디에도 없다. 또한 결혼이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고도 조용히 두 사람만의 삶을 영위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이미 우리는 인간 관계의 수많은 버전이 존재하고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남자와 여자는 각자 나름의 후유증을 겪으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그녀에게 묻고 싶다. 어쨌거나 이별을 담담히라도 공표한 사람은 여자이니까 말이다(물론 내게 대답해 줄 이유는 전혀 없지만).


   ‘혼인 신고 없이 짧지 않은 세월을 사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기혼이라는 타이틀이 아쉬운  같진 않으신데 말이죠.    누구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혼인 신고를  의도가 없으셨다면 굳이  ‘결혼식이라는 외피를 빌려쓰실 이유가 있었을까요? 정말 두 분이 함께하고 싶으셨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 이용하지 않고도 가능했을  같은데요. 말씀드리기 외람되지만 매력적인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대가나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혼인 신고는 구속이 아닌 소정의 책임을 부담하겠다는 최소한의 선언이 아닐까 싶군요. 마지막으로 남성분께서는  헤어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분도 님과 같은 생각이실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같이 읽기 좋죠. 다만 이렇게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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