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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pr 05. 2021

광활한 잔디 바다 위의 연극

프로야구 개막전, 고척 스카이돔 첫 직관기

개구리가 깨어나는 3월 초의 경칩만 되어도 계절의 교체를 기다리거나 선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그 무렵의 날씨는 봄을 말하기엔 매우 추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간혹 ‘이상 기후’가 나타나며 기온이 오르기도 하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꽃샘 추위의 반격은 다소 맵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팬으로서의 사심을 담아 말하면 ‘3말 4초’의 프로야구의 개막이야말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아닐까 한다. 같은 실외 스포츠인 축구에 비해 활동량이 적은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로 기온이 충분히 올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관전하려 마음먹고 있었지만 프로야구를 기다린 사람(경쟁자)들은 생각보다 정말 많았던 모양이다. 티켓 예매 창이 열리자 광속으로 표가 없어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추신수가 복귀한 SSG의 문학 경기는 시즌 티켓 소지자 외의 팬들에겐 직관 기회가 거의 차단되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두산이 개막전을 치르는 잠실 역시 만만치 않았고 결국 고척 스카이돔까지 밀려 간신히 키움과 삼성의 개막 2차전 표를 구할 수 있었다(사실 밀렸다는 표현을 쓰기엔 키움의 전력과 돔구장의 시설은 매우 훌륭하다). 라임을 맞추려고 했는지 ‘봄’ 나들이를 ‘돔’에서 하게 된 행운에 설레는 마음으로 구장으로 향했다.


화면으로만 봐오던 ‘영웅들의 성전’에 입장하다



이제 갓 개막했고 방역 수칙에 민감한 탓인지 먹거리나 기념품을 파는 매점들은 대체로 한산했거나 개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벽에 액자처럼 걸린 미국 메이저리그와 국내 프로야구 구단의 유니폼들이 이 곳이 ‘종합 야구 공간’임을 말해주었다. 국내 구단들에 비해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비교적 오랫동안 디자인과 폰트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농구나 배구 직관차 실내체육관에 들어섰을 때도 널찍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야구장에 입장하는 순간 그 스케일에 놀라 헛웃음이 나왔다. 체육관이 호수라면 야구장은 바다라고 할 수 있을만큼 규모의 차이가 났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치 드넓은 허공으로 바다같은 잔디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게다가 경기장에 들어선 선수들의 수는 비슷했기 때문에 그 여백은 더욱 넓어 보였다. 예매 당시에는 가까운 1루나 3루 근처 좌석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저하기도 했으나 막상 4층에 올라가니 경기장 전체를 담는 뷰가 한 눈에 들어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스카이 뷰가 몇십층 건물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초록 잔디 덕에 눈도 피곤하지 않았다.



전신 현대 유니콘스 이후로 우승이 없는 히어로즈. 첫 우승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는 캐치 프레이즈


경기 시작에 즈음하여 전광판에 양 팀의 선발 엔트리가 소개되었고 홈팀 키움의 라인업을 응원단장이 직접 호명했다. 경기장의 스케일 탓인지 농구와 배구에서처럼 ‘암전 모드’에서 스포트 라이트가 비추는 가운데 달려나오는 ‘출정식’은 없었다(하긴 경기장 한복판까지 뛰어나오는 것도 보통 수고는 아닐 것이다).


야구장의 전광판은 농구장에 비해 보다 디지털스러운 그래픽이 돋보였다.


선수들은 넓은 운동장 한복판으로 뛰어 나오는 대신 전광판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키움 선발투수 안우진이 삼성 1번 타자 박해민을 향해 힘차게 투구하며 경기의 막이 올랐다. 쉴 새 없이 볼이 오가고 득점이 나는 농구나 배구와는 달리 투구 사이의 공백만 해도 수십여 초라 약간 다른 모드로 경기에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찰나에 이루어지는 투구와 타격을 모든 관중이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광경은 실로 신선하고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농구와 배구가 눈뗄 틈 없고 다이나믹한 음악과 함께 하는 뮤지컬이라면, 야구는 침착하게 호흡을 고르며 흐름을 따라가고 배우의 대사에 집중하는 연극이었다. 게다가 방송 중계에서처럼 캐스터와 해설자라는 ‘사회자’의 진행을 들을 수 없어 침묵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닝이 거듭되며 ‘관전 매뉴얼’에 차차 적응이 되었고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지켜봤다(물론 여전히 투수의 구종은 알 수 없었다. 그냥 다 ‘광속구’로 보일 뿐)




 팽팽한 투수전으로 진행되던 경기의 흐름을 먼저 깬 쪽은 삼성이었다. 안우진은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여기에 키움 내야 수비 실책이 더해지며 3점을 먼저 내줬다. 결국 3회까지 던진 안우진은 마운드를 내려왔고 키움은 곧바로 계투진을 투입했다. 물론 안우진은 빠른 공을 가진 자질있는 젊은 투수지만 제구력과 상대 타자 파악 등의 차원에서 아직 더 성장이 필요해 보였다.


상대방의 실책에 편승해 선취점을 낸 삼성. 하지만 득점의 ‘자체 생산’은 경기 내내 미미했다.



하지만 얼마 후 삼성의 외국인 선발투수 라이블리가 알아서 자멸했고 키움은 이를 놓치지 않고 타자 일순하며 6점을 뽑아내며 빅 이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로 승부는 일찌감치 결정되고 말았다. 물론 최선을 다했겠지만 동계 훈련 동안 과연 충실히 준비를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삼성의 불펜은 허약했으며 타선에서도 확실한 킬러를 찾아볼 수 없었다. 2년차를 맞는 허삼영 감독의 올 시즌도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루에서 2타점 적시타를 쳐낸 키움 외국인 타자 프레이타스



캡처는 못했지만 운좋게도 키움 박병호의 홈런을 영접할  있었다. 올해로 한국 나이 36살에 접어들었지만 변함없는 파워에 집중력과 노련미까지 더해진 박병호는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경기 후반이 되자 이미 적응과 상대 분석을 끝낸  상대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고 담장을 넘겨버렸다. 마치 나 아직 죽지 않았다며 잘못 걸리면 ‘얄짤없다는무력 시위를 펴는  했다. 여기에 3안타를 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하성의 공백이 뭐냐 묻는 김혜성과 라이블리에게 홈런을 뺏어내며 추격의 신호탄을  김수환까지 가세하여 키움은 7 이후를 ‘가비지 타임으로 만들었고 무난한 승리를 챙겼다.


 전체적으로 키움은 신구 조화가 잘 이루어졌으며 젊은 선수들의 성장도 두드러져 보였다. 이대로라면 올해도 플레이오프는 무난할 듯 했다. 다만 기대치와 눈높이가 우승인 팀이라 보다 높은 목표의 달성을 이룰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http://naver.me/FVPXefrW


http://naver.me/GgesMI0I



 참고로 높은 곳에서 본 탓인지 홈런의 궤적은 그다지 높지 않은 직선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볼의 최대 도달 높이는 돔구장의 천장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며 돔구장 규모의 위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기를 보고 나오니 맑았던 하늘이 흐려져 있었고 기온도 다소 내려가 쌀쌀한 느낌이었다. 물론 날씨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직관을 보장한 든든한 돔구장 덕분에 무사히 관전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야외 구장에서의 낭만이 못내 그립고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포근한 심지어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시원한 음료수(맥주) 한 잔과 함께 환호하며 보는 것이 야외 스포츠 관전의 ‘국룰’ 아니겠는가. 아울러 모두 채워지지 못한 관중석의 공백은 정말 커 보였으며 실내 스포츠보다 훨씬 공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현재 수도권의 스포츠 경기 관람 인원은 수용 정원의 10%로 제한되어 있다). 마치 조용하고 텅빈 스타벅스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 듯 했다. ‘조용한 스벅’이라니 어쩐지 착 감기는 상상의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유례없는 사태에 놀라고 긴장해 무관중으로 개막을 맞이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개막전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나들이였다. 따뜻하고 화사하며 정열적인 야구의 계절이 무르익으면 ‘잠실-문학-수원’ 찍고 ‘대전-대구-부산-마산’도 돌아보며 그 모든 곳이 만드는 멋진 이야기에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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