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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ug 14. 2020

6년의 동행이 보여준 세상

차보다 매력적인 브랜드로서의 사람을 향해

 비오는 아침부터 차를 끌고 사설 정비소에 왔다. 공식 서비스센터는 당장 접수해도 한 달이 넘어야 방문할 수 있다기에 딜러가 소개한 장소로 온 것이다.  다행히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어서 점심 때쯤 출고할 수 있었다(물론 소정의 비용은 어김없이 발생했다). 서울로 올라가며 그동안 이 친구와 함께 해 온 6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지금은 이렇게 주기적으로 잔병치레를 하지만 처음 나왔던 그 날엔 그저 젊고 강했었는데 말이다(지금도 여전히 잘 달리긴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으로 시작된 인연


 예전에 타던 국산 가솔린 중형차는 4년 가까이 주행하자 고속 주행에서 시속 130만 넘겨도 차체가 흔들려 핸들(a.k.a 스티어링 휠)에 대롱대롱 매달려야 했으며 시내 주행시 연비가 거의 대형 가솔린 세단 수준이 되었다. 그때에도 장거리 주행을 자주 했었기 때문에 차를 바꿀 이유가 아예 없진 않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런 사정들은  당시 수입차를 갈망하던 내게 트리거(trigger)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이불킥’할 노릇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맞선을 보는 여성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수입차로 바꾸게 되면 뭔가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 아니 확신했었다(!). 결국 주행 자체에 큰 문제는 없었던 차는 나의 ‘왜곡 회로’를 거쳐 처분해야 할 ‘폐품’이 되고 말았다.


4년간 9만km를 달리며 많은 추억을 쌓았는데 마지막에 떠밀듯이 보내버렸다. 어리석은 나 대신 좋은 주인을 만나 아직도 잘 달리고 있을거라 믿는다



 새 차를 알아보기 위해 4월 초부터 여러 브랜드의 전시장을 방문하고 다녔다. 2달 가량의 탐색 기간 후 지금의 차로 결정했고 6월 초의 어느 날 전시장에서 인수 받아 집으로 데려왔다. 비가 흩뿌리던 그날 솜사탕과도 같았던 주행의 부드러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그냥 내 기분이 솜사탕 같았는지도 모른다).


처음 데려온 후 다음날 아침의 모습. 이 때까지만 해도 이 친구와 같이 나가면 뭔가 근사한 일들만 있을 줄 알았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차를 바꿔 신분상승(?)하려던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동일 브랜드의 상위 세그먼트를 비롯하여 훨씬 더 고가인 다른 브랜드의 고급차들조차 한남대교나 성수대교, 영동대교를 건너는 순간(물론 남쪽 방향이다) 좌우전후에 출몰할 정도였는데 ‘고작’ 이 정도로 부유하게 보이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차를 샀다고 해서 실제로 더 부유해지지 않는다. 부자인 것과 부자처럼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그때의 나는 그토록 뻔한 사실을 애써 외면했었다. 또한 차는 그저 차일 뿐 인간의 가치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매력적인 남자가 되기 위해 차를 바꾼다고 하면 온 동네 사람이 웃을 일이다.


 

 그렇다면 차를 바꾼 것은 과연 후회만 남긴 사건이었을까?










확실한 성능과 실용성으로 보답하다


 어리석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부르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이다. 살면서 이런 경우가 많지 않은데 나는 운이 좋아도 억세게 좋았다. 새 친구는 그야말로 차 본연의 임무에 대해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능


고속주행에서 HUD에 160이 훌쩍 넘는 속도가 찍혀도 차체의 흔들림 따윈 전혀 없었다. 심지어 코너링에서도 140이상은 쉽게 넘길 정도였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의 부드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거기다 장거리를 주행할 경우 가솔린의 반 정도에 불과한 기름값에서 디젤의 거대한 위엄을 실감했다. 디젤을 폄하하는 일부 사람들은 용달이니 경운기니 하며 특유의 엔진 소음 및 차체의 진동을 조롱한다. 물론 정숙한 승차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은 존중한다. 그러나 자동차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기능은 어디까지나 잘 달리고 잘 서고 잘 도는 것이다. 이에 대한 주관은 정말 확고하기 때문에 성능에 대해선 지금껏 조금의 불만도 없었고 후회도 하지 않았다.


디자인 


C필러, 호프마이스터 킥 등의 용어를 굳이 들먹일 것도 없다. 보닛이 길고 트렁크가 짧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쿠페가 부럽지 않다. 개인별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독3사’ 세단의 디자인은 확실히 국산보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모델 할 것 없이 미끈하고 늘씬하며 외관만으로도 잘 달릴 것만 같은 ‘확신적 느낌’을 준다. 맑은 날이면 코발트 색과 비슷한 임페리얼 블루(imperial blue)의 묵직하고도 청량한 빛깔이 더욱 돋보였다.

 

편의성


조수석 창문을 닫기 위해 끝까지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를 필요는 없었다. 주차 센서밖에 사용해 보지 못했던 입장에서 후방 카메라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는 것만 해도 별천지의 세상이었다. HUD가 있었으므로 미세하게나마(실은 위험하게) 고개를 숙여 계기판을 볼 필요 따윈 전혀 없었다. 맑은 가을날이면 썬루프를 열어 햇살을 쬘 수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발로 여는 트렁크였다. 한동안 호기심에 발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을 정도였다.


  

 마침 그 무렵 ‘외유’할 일이 부쩍 많아졌던 내게 새 친구는 그야말로 나의 분신이 되었고 함께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너와 함께라면 무사하단 확신에 힘차게 달렸고(실제로도 아무 일 없었으니까) 나를 새롭고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해 주었다. 늘어나는 주행거리만큼 대한민국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도 이전보단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실내에선 누군가와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고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들으며 운전 중에도 더 넓은 지식과 문화의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18만 km를 타면서 차체와 휠의 색이 바래졌고 부품도 노후화했지만 아직도 기본 이상은 충분히 한다. 다른 차와 함께 하는 건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다음엔 어떤 차를 타야 할까? 그리고 난 어떤 사람이 될까?


 주행거리가 길고 연식이 오래된만큼 이번처럼 예기치 못한 정비를 받아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보증 기간도 끝난지라 수리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어차피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엔 무슨 차를 선택해야 할지 가끔 생각한다. 차를 몰고 다니면서 느낀 불편함 중 하나가 차체가 다소 커서 주차가 신경쓰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내 신장과 골격엔 지금보다 살짝 작은 차를 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이전부터 생각해 왔다.

 

 그러던 와중 최근 공식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맡기고 지금 차보다 한 단계 아래 세그먼트의 차를 렌트받았다. 이전부터 이만한 크기면 된다고 생각해 왔던 사이즈인데 직접 타보니 성인 3~4명은 충분했다. 이전 모델은 혼자 타는 차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는데 차체와 실내 공간이 넓어져 이제 그럴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또한 새 차라서 그렇겠지만 힘차게 잘 나갔는데다가 디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숙했다. ‘지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기분좋은 주행이었다. 구매력이 되고 장거리를 자주 타는 사람에겐 적극 추천할 만한 모델이다.


지금 차가 좋다지만 괜히 새 차가 아니다. 정숙하고 부드러웠던 주행은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차가 날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정착하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세상이 빨리 변한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30년 전 방송됐던 ‘2020 우주의 원더키디’의 예측대로라면 지금 우린 헬리콥터 택시를 타고 있어야 한다). 다음 차를 살 때가 되어도 전기차가 대중화되어 있진 않을 듯 하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다소 고가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디젤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남아있는 지금으로선 조금 작은 사이즈의 디젤 차량이 가장 유력한 선택지가 될 것 같다. 물론 장거리 운전할 일이 좀 줄어들게 된다면 가솔린이나 하이브리드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음엔 ‘정말로&무조건’ 실용성 위주의 선택을 할 것이다. 나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도우미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선택의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 ‘차빨’ 받는 사람이 되기보단 차로 하여금 ‘사람빨’ 받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바라는 여러 가지 소망 중 상당수가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남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참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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