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로즈의 세계 제국, 그 끝나지 않은 꿈
“넌 항상 내 마음속의 찬란한 빛이었어. 이 다이아몬드처럼”
어린 시절 남매처럼 소꿉친구처럼 지내던 소녀는 어느덧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내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녀를 평생의 배필로 맞이하려 하고 있다. 어린 시절 풀꽃반지를 끼워줬던 그녀의 왼쪽 약지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우는 순간 그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삶에서 가장 찬란한 행복의 순간은 절정에 달한다. 잠시 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한껏 낭만적인 문구가 화면에 나타났다 서서히 멀어져간다.
https://youtu.be/1LnDBIyKK-I
1998년 방영되었던 이 CF는 바로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브랜드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이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산과 들, 이별의 장소였던 학교를 거쳐 결혼식 직전의 함들이가 펼쳐지는 밤의 정원까지 두 남녀의 사랑에 얽힌 서사를 그림같이 아름답게 편집하여 방영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경을 울린 바 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잉글랜드 댄과 존 포드 콜리(England Dan&John Ford Coley)가 감미롭게 부르는 사랑의 테마 ‘Just tell me you love me’도 짧은 이야기의 감동을 한껏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드비어스는 19세기 말인 1888년 창립되었으며 한때 전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90퍼센트를 유통하기도 했던 굴지의 대기업이다. 위에 언급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라는 문구처럼 변치 않는 사랑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오랜 시간 명품 주얼리 브랜드이자 결혼 예물의 대명사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드비어스가 걸어온 길은 자신들이 표방하는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의 이미지와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 2001년 이후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의 불법적 공급 독점을 통해 폭리를 취한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결국 2008년 4월 3억 달러에 달하는 합의금을 물어낸 바 있다(물론 드비어스는 이에 불복했다). 또한 세계 2위 다이아몬드 회사였던 러시아 국영기업 알로사와 담합하여 가격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2006년 2월 EU로부터 불공정거래 기업으로 지목되어 거래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각종 포털 검색 등으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드비어스의 창업자인 영국의 세실 로즈(Cecil Rhodes, 1853~1902)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로즈는 단지 한 사람의 기업가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야망이 컸으며 그가 교류했던 인물들과 손잡고 결성한 조직들은 오늘날까지도국제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즈의 생애를 알아가다 보면 다이아몬드의 찬란함에 가려졌던, 세계를 자신들의 세력 하에 두려 했던 국제 금융재벌과 엘리트들의 ‘빅 픽처’를 만날 수 있다.
1853년 지주 출신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로즈는 선천적으로 병약했고 아버지는 그가 17세가 되던 해 기후가 온화한 남아프리카로 로즈를 보내어 요양토록 했다(당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은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이 이권 다툼에 열을 올리던 전쟁터였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옥스퍼드(Oxford) 대학에 진학한 로즈는 재학 중 당대의 엘리트 사상가이자 학자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연설로부터 큰 감명을 받고 이를 평생의 비전을 세우는 기초로 삼는다. 러스킨의 해당 연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상류층은 대대로 우수한 교육을 받아왔고 예술과 법률에 깊은 교양을 갖추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우월한 기질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류층의 문화와 전통은 잉글랜드를 넘어 전세계의 ‘하층 계급’에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래로부터의 혁명(폭동)이 일어나 상류층 세계는 붕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하루 빨리 서둘러 하류 계층을 계몽시켜야 한다.
영국이 대대적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던 1870년대 후반 로즈는 동생과 함께 남아프리카에서 광업에 뛰어든다. 얼마 후 다이아몬드 광산을 경영하게 되고 그로부터 얻은 자금을 기반으로 1880년 "드비어스 광산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수많은 경쟁자들이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개발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는데, 로즈는 이 바닥을 ‘접수’하기 위해서는 거대 금융의 힘이 필요함을 깨닫고 독보적인 금융의 황제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에 접근한다. 때마침 로스차일드 가문도 다이아몬드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여러 차례의 접촉을 통해 로즈는 로스차일드와 유착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한다. 이후 로스차일드 가문은 수시로 드비어스의 주식과 채권을 매입하며 로즈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 주었고, 로즈는 이에 힘입어 드비어스를 세계 정상의 다이아몬드 브랜드로 올려놓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로즈는 한낱(?) 재벌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러스킨의 연설로부터 받은 감흥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던 로즈는 더 거대한 차원의 비전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제국주의 확장의 로망을 품고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로즈는 나무랄 데 없는 ‘돌격대’요 ‘특전사’이자’뮤즈’였다. 30대 중반에 작성했던 유언장에서 로즈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드비어스 그룹 지분을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했으며 ‘대영 제국의 이익을 위해 이 돈을 써달라’는 편지까지 첨부했다. 그에게 있어 다이아몬드란 영국의 상류층 엘리트의 세계 정복에 필요한 실탄이었고 드비어스가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동인도 회사의 분신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 웅장하고도 당돌한 욕망은 1891년 로즈 소사이어티(Rhodes Society)의 결성과 함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로즈는 위에 언급한 것 이전에 20대에 작성한 유언장에서 대영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미국을 다시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시키며 이를 통해 전쟁이 없는 통일된 세계 제국이 탄생하기를 꿈꿨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결성한 비밀 결사 단체가 바로 로즈 소사이어티이다. 로즈는 이를 통해 정/재계에 막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언론을 조작하여 대영 제국의 패권을 현실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로즈 소사이어티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으며 부와 명예에서 아쉬울 것 없는 상류층 인사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3차례나 영국 총리를 역임한 솔즈베리 후작(Robert Cecil, Lord Salisbury), 사상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 금융 재벌 밀너 훈작(Lord Milner)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재력과 후원 아래 로즈 소사이어티는 영국 최고 권위의 일간 ‘더 타임스’(The Times)와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와 옥스퍼드 올 소울즈(Oxford All Souls College) 등의 명문 사학을 완벽히 장악했다. 또한 엄격한 자체 절차에 따라 로즈 소사이어티의 신입 멤버들을 선발하고 육성했다. 모두가 상류층 엘리트 집안의 자녀들이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왕립국제문제연구소(Chatham House), 더 타임스 산하 잡지 라운드 테이블(Round Table) 등 로즈 소사이어티의 ‘자체 사관 학교’에 들어가 경험을 쌓았으며 ‘대영 제국의 세계 지배’라는 로즈 소사이어티의 핵심 가치를 고스란히 이식받았다.
로즈 소사이어티는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영국의 과거 식민지와 자치령에 모두 지부를 두었고 이는 오늘날의 소위 영연방(Common Wealth) 개념으로 발전한다. 특히 이중 미국 지부는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로 발전해 정/재계 핵심인사, 고위 장성, 유력 언론인, 학계의 거두 등 상류층 엘리트들을 포괄하는 공고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단적인 예로 ‘아버지’ 부시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 중 외교협회와 무관한 인물은 한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해 오늘날 미국을, 조금 확장해 전세계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세력들 역시 ‘대영 제국의 영광’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영광의 최종적인 모습은 세계 정부의 수립을 통한 통일 제국의 건설이다.
한편 로즈는 드비어스를 통해 축적한 재력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철도·전신·신문 업계를 장악했고 정계에도 진출했다. 이후 1889년에는 본국 정부로부터 식민지의 통치권을 가진 ‘대영제국 남아프리카 회사’(BSAC) 설립허가를 받아냈고 1890년에는 케이프 식민지 총리에까지 올랐다. 또한 군대까지 움직여 영국 본토의 4.5배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여 ‘로디지아’(Rhodesia)라고 명명했는데 이 곳이 바로 오늘날의 짐바브웨(Zimbabwe)의 전신이다.
재력에 영국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권력까지 갖춘 로즈의 욕망은 끝이 없었고 거대 금광이 있으며 네덜란드와의 보어 전쟁을 치렀던 지역인 트란스발 공화국에까지 세력을 뻗쳤다. 당초 로즈는 트란스발의 영국인들을 매수해 비밀리에 반란을 선동하고, 이 과정에서 소요가 발생하면 BSAC군을 파견해 진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로즈의 뜻과는 달리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BSAC 군 전체가 보어인들에게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제임슨 사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로즈는 1896년 본인의 모든 직책에서 사임한다. 이후 복수심에 불탄 영국은 제2차 보어 전쟁을 일으키고 로즈도 참전했으나 졸전을 면치 못하던 와중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사망하고 만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는데 생전에 품었던 말로 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과 포부를 생각하면 짧디짧은 삶이었다.
죽는 날까지 골수 제국주의자였던 로즈는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에서조차 대영 제국의 전세계 지배를 목표로 하는 비밀 단체를 만들어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 팔레스타인, 중국, 말레이 반도 등 영국령이 아닌 곳들조차 식민화를 추진했다. 6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로즈의 막대한 유산 대부분은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증했고, 현재 '로즈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역사에 남을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에서는 오늘날 그의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한때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도 로즈의 동상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나왔었지만 학교 측과 동문 대다수의 입김과 로비로 무산된 바 있다.
세실 로즈가 평생을 통해 이루려 했던 숙원은 비단 로즈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표면적으로는 전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담은 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세계를 지배하고자 했던(실은 지금도 그러고자 하는) 국제 금융 재벌과 그에 기생하는 정치 권력의 야욕에 지나지 않는다. 로즈 소사이어티에서 파생된 수많은 비밀 결사 단체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막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세계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에 가깝다.
자본주의가 도래한 이후 수많은 부침이 있었고 때로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도 했지만 소수의 권력 집단이 다수를 지배하는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드비어스는 처음부터 권력을 탐하는 자본의 후원으로 세워졌으며 다이아몬드의 독점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취했고 나아가 소수의 세계 엘리트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촉매’의 역할까지 했다. 그런 역사를 ‘지고지순하며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낭만적 그림으로 이미지 세탁해 온 것이다. 물론 예물의 상징이 된 오늘날의 입지를 송두리째 부정할 수는 없고 ‘다이아몬드 거부 운동’을 펼칠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찬란한 보석 이면에 숨겨진 그러나 너무도 거대하고 막강한 힘의 실체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여가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이, 이 사회가 거시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예측해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출처 및 참고
쑹훙빙 저 ‘화폐전쟁’ 2권
http://naver.me/x50ZoTQS
나무위키 ‘세실 로즈’
https://namu.wiki/w/%EC%84%B8%EC%8B%A4%20%EB%A1%9C%EC%A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