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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Mar 24. 2023

투쟁 후의 성장, 성장 이면의 환멸

사람이 싫은 변호사의 성장 수기

  긴 역사에서 가족 및 가까운 이웃과만 접촉하며 살아가던 인류는 문명이 발달하고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필연적으로 많은 타인 나아가 타 문화권과 더 빈번히 접촉하게 되었다. 타인과의 접촉에는 필연적으로 분쟁이 따른다. 서로 의사의 합이 맞아 모든 문제가 합의와 협상을 통해 순리적으로 해결되면 좋겠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과 복잡한 사회 구조 탓에 애시당초 그건 불가능하다. 각종 관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 중 협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처리하기 위해 국가는 ‘법률’이라는 매개체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사법부라는 국가 기관을 만들고 판사와 검사라는 전문 인력들에게 그 업무를 맡겼다.


사법부라는 가상(허구)의 기구를 통해 가리지만 정작 그 사법부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판사와 검사는 사안에 대한 면밀히 조사하고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릴 뿐 사건의 당사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법률의 생리를 모르는 일반인들이 법적 투쟁에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하며 이를 담당하는 이들이 바로 변호사이다.







 

 하지만 사법 시험을 합격하고 법률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라고 해도 법 해석을 통해 의뢰인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이해 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의 복잡성 탓이기도 하지만 본래 세상사 자체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싫다’의 저자 손수호 변호사는 ‘회색지대’라는 표현을 통해 세상사의 애매모호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심지어 상식적으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사안에서조차 예상을 뒤엎는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의 ’동화적 소망‘과는 달리 법률은 권선징악에 대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높은 지위와 막강한 경제력을 소유한 ’강자‘가 그렇지 못한 ‘약자’에 승리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막대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힌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도 한다(정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면 애시당초 변호사라는 직업도 필요없을 것이다).


법 앞에서 정말로 당당할 수 있으려면 돈과 권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결국 승소를 위해서는 사안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세심하게 심지어 해부하듯 꼼꼼히 분석한 후 상대에게 손톱만큼의 틈이라도 보이면 맹렬히 밀고 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정의감이나 개인적 소회는 접어둬야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용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변호사의 중요한 자질로서 ‘따뜻한 공감’보다 ‘냉철한 이성’을 훨씬 더 중시한다. 필요 이상으로 의뢰인에게 감정 이입하여 공감하다 자칫 사안의 쟁점을 놓치고 패소한다면 그것만한 낭패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의 일 보듯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대처하는 게 의뢰인과 변호인 모두를 위하여 좋은 일이다.






 

용병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변호사 본인이 경제적으로 생존하고 자립해야 한다. 소규모 사무실이건 대규모 로펌이건 이익을 내야만 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변호사는 경영자이자 사업가이며 세일즈맨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 외에도 업계의 경쟁자를 비롯하여 사건 수임의 키를 쥐고 있는 잠재 고객 등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이 과정에서 수없는 갈등을 경험한다. 당연히 좋은 일만 있을 리 없고 인간 성정의 밑바닥까지 들여다 보게 되며 심지어 윤리적 도리에 어긋나는 소위 ’못 볼 꼴‘도 많이 본다. 저자가 책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수차례 ’사람이 싫다‘라고 되뇌이는 건 직업적 피로에서 오는 탄식이자 소회이다. 타인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대가가 그리 만만하진 않은 듯 하다. 저자의 한숨이 유달리 깊고 진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변호사만큼 필드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종도 별로 없다. 경험만큼 피로가 쌓이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회사 생활이 아닌 자영업을 하며 30대를 보냈다. 다행히 매장은 큰 문제 없이 잘 되었고 소소하게나마 이익을 남긴 후 정리했다. 무엇보다 대인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탓에 정신건강에 별다른 손상이 없었던 것이 자영업의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물론 매장 방문 고객들과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직 생활을 하며 겪는 동료 간의 갈등과는 그 양과 질에서 모두 결이 다르다). ’좋다 싫다‘고 외칠 대상 자체가 별로 없었다.

 

 다만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스트레스가 없었던만큼 얻어간 경험도 없었다. 사람이 싫어지는 상황을 겪으며 습득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의 협상력, 판단력, 문제 해결력 등이 지금의 내겐 많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제는 실패하거나 모자라도 너그러이 용인될 수 있는 그런 연령대를 지나버렸다. 이제껏 그랬듯이 내일도 저자에게는 어려운 업무와 까다로운 의뢰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내공’ 탓에 앞으로는 보다 수월하게 그 난관들을 헤쳐나가지 않을까 싶다. 아직 갈 길이 먼 나같은 사람 입장에서 저자의 투덜거림이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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