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발견자

by 서한나

아침 여섯시에 주방 식탁에 앉아있다가 엄마랑 이야기를 했다. 몇 시에 가냐고. 엄마는 오늘 한의원 진료를 갈 예정. 아침에 나선다고 했다. 이모도 오늘 일정이 있다고 집에 간다고 했다. 아빠도 같이 나가는 걸로 알고 있었다. 엄마랑 이모를 데려다줄 참. 여덟시쯤 나간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 뒤에 한 마디 덧붙였다. 아빠는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고. 어제 이야기를 들을 땐 아빠가 돌아온 단 말 없었다. 우리 가족도 알아서 있다가 갈 참이었기 때문에. 왜 돌아오려고 하나 했더니, 잔디를 깎기 위해서였다.

아빠는 지금 간암으로 항암 1차를 한 이후다. 갔다가 와서 일을 하는 게 무리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말에는 채니와 남편이 늦잠 자기도 하니까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아빠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마음에 조금 걸렸다. 엄마도 아빠가 같이 갈 줄 알았는데, 데려다만 주고 다시 집으로 온다는 말이 걸렸던 거 같다. 식사도 드시는 것도 그렇고.

포스팅하다 말고 저장을 눌렀다. 씻었다. 갈 준비를 했다. 준비하는 도중에 채니가 깼다. 평소 같으면 아홉시 넘어서까지 자는데. 오늘따라 무슨 일인가. 조금 있으니 남편도 나왔다.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남편은 자기도 따라간다고 했다. 나는 채니랑 같이 더 잘 줄 알고 간다고 했는데, 오늘따라 둘 다 일찍 일어났다고도 말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더니, 둘 다 가겠다고 나서는 통에 다 같이 가게 됐다.

아빠는 내가 엄마와 이모를 데려다줄 거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마당으로 나갔다. 목덜미가 가려지는 챙 모자를 쓰고, 장갑도 끼고. 장화도 신었다. 잔디 기계를 밀면서 잔디를 깎았다.




엄마와 이모를 이모집에 내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주차를 할 때 아빠는 마당 구석 포도나무 있는 곳에 있었다. 그 옆으로 채니가 며칠 놀았던 미니 수영장 있다. 그곳 아래 빼고는 잔디를 모두 깎은 상태였다. 나는 몸에 좋다는 건강 커피를 한잔 시원하게 타서 아빠에게 가지고 갔다. 아빠의 셔츠 앞판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한잔 내밀며 말했다. 남편이 우리가 돌아왔을 때 아빠가 마당에서 일을 할까 안 할까라고 할 때 나는 안 한다고 했고, 남편은 한다고 했었다는 것을. 그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쉬다가 금방 나왔다고 말했다. 마당 한쪽에 채니가 놀던 작은 물놀이터. 그곳 빼고 거진 잔디를 깎았다. 나도 물을 버려볼까 해서 미니 수영장을 이리저리 옮겨보려 했지만 꼼짝도 안 했다. 물을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 아빠랑 바가지로 퍼서 근처 나무들에 물을 줬다. 어느 정도 옮겨질 정도가 될 때까지. 아빠랑 나는 같이 수영장을 밀어서 한쪽으로 옮겼다. 잔디가 보인다. 수영장 모양에 따라서 잔디가 푹 눌려있다. 한가운데에 미끄럼틀에서 내려올 때 안전을 위한 쿠션도 있는데 그 모양도 그대로 자국이 남아있다. 신기했다. 나는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게 고대로 남아있네 했다. 잔디는 물에 젖어 절어있었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잔디로 햇살이 비치니 은구슬같이 반짝였다. 보석이 많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채니랑 어린이 놀이터 갔을 때, 민생회복 지원금 사용하려고 어디가 좋을지 식당 몇 개 찾아봤었다. 그러다 식당 하나 발견했다. 작년 이맘때쯤 생긴 식당이었다. 주메뉴는 메밀국수. 특이점은 메밀국수에 소 불고기 전골이 같이 나온다는 것. 숙주, 파 한가득 올려져 있는 사진이 제법 그럴듯했다. 후기들 보니 웨이팅도 있는 것 같았다. 평일에는 오후 세시 반에 영업종료. 주말은 일곱시 반까지였다. 가족들이랑 한 번 가서 먹으면 좋을 거 같아 링크를 남편에게 보내뒀다. 남편도 메밀국수 좋아하는 터라 괜찮을 거 같았다.

아빠, 나, 남편, 채니 넷이서만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날. 나는 메밀 국숫집부터 생각났다. 아빠도 드셔도 괜찮을만한 메뉴라서. 아빠는 항암 일 차를 하신 후다. 몇 차례 검사도 했고, 결과도 괜찮은 상태. 이차 항암은 아직 예정에 없다. 집에 있을 때는 엄마가 신경 써서 식단도 챙기고 하지만. 오늘은 우리 모두 엄마도 없으니 외식을 하고 싶은 일탈 대기 상태랄까.


아빠에게 메뉴를 말했더니 좋다고 했다. 씻고 준비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아빠는 어딘 줄 모르고 가는 터. 나도 주소는 알지만, 위치는 모르는 터라 내비게이션에서 검색해서 가라는 길로 갔다. 구길과 새길이 있는데, 구길로 알려줬다. 우리 모두 모르다가 다 보니 알게 됐다. 그러다 청산면이라는 것을 들은 아빠는 우리가 버섯 사러 갔던 곳이라고 말했다. 작년인지 올해인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다 같이 버섯 사러 갔다 왔다. 아빠가 기르고 싶다고 해서. 도착해 보니 정말 그 근처였다.


블로그 후기에서 본 대로 정말 주차요원이 없었다. 식당 앞과 뒤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양쪽 다 꽉 들어찬 차들. 차를 델곳이 마땅치 않아, 내가 먼저 내렸다. 식당 앞에도 사람이 열댓 명은 있는 거 같다.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으로 붐빈다.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앞에 대기 키오스크가 있다. 대기팀이 22팀이라고 액정에 표시되어 있다. 안내에 따라 인원과 전화번호를 눌렀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지금 대기 번호와 앞에 몇 팀이 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 카운터에 직원이 있길래 물었다. 한 삼십분 정도 기다리면 되는지. 직원은 맞다고 했다. 대기를 해놓은 뒤, 차로 갔다. 대기 순서를 말했다. 기다리기는 하되, 근처에 다른 식당도 있는지 둘러보기로 했다. 토요일 낮이라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주차 자리는 없었기 때문에 차를 정차해두고 있기도 뭐 했다. 도로를 차 타고 둘러봤다. 계곡이 있어서 근처로 식당, 카페가 많이 있었다. 우리가 버섯을 샀던 영농조합도 보였다. 어느 식당이나 주차장이 만석이다. 다시 원래 대기해놨던 소메담으로 갔다. 여덟 팀 정도가 빠진 상황이었다. 기다렸다가 순서에 맞춰 식당으로 들어갔다.


각자 좋아하는 메밀국수 주문했다. 소 불고기 전골이 포함된 메뉴가 있고 단품도 있다. 아빠는 동치미, 나는 비빔, 남편은 들기름. 모두 소 불고기 전골을 추가했다. 대부분 소 불고기 전골을 같이 먹고 있었다. 주문한 소 불고기 전골이 바로 나왔다. 불을 켜서 냄비를 올렸다. 식탁에 맛있게 먹는 법이 적혀있다. 물이 끓으면 고기를 물에 넣고 좀 있다가 숙주도 넣으면 된다고. 그대로 했다. 곧 국수도 나왔다. 전골에 국수 얹어서 각자 입맛대로 먹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맛이. 아빠도 괜찮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채니도 국수 몇 가닥에 고기 얹어서 먹었다. 계속 빨리 달라고 했다. 천천히 먹으라고 하면서 입에 넣어줬다. 채니도 괜찮았나 보다. 남편이 먼저 채니 먹이는 사이 내가 먹고, 남편과 바꿨다. 남편도 맛이 괜찮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때에도 차는 계속 들어왔고 대기가 열대여섯 팀 정도 있었다. 블로그에 가성비 맛집, 인기 있는 집 하더니 그렇긴 한가보다.




집으로 왔다. 채니 잠들어서 재우고, 나도 잠시 쉬었다. 영양제도 챙겨 먹고, 아빠 커피도 한 잔 타 드리고. 아빠는 내가 타준 커피를 한 잔 마시더니 소파에 누워 낮잠을 주무셨다. 나도 주방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블로그 포스팅을 마무리하기 위해. 남편은 내 앞에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평온하다고 느껴졌다.


잔디밭에서 발견한 반짝이던 물방울 보석처럼. 자세히 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늘 내 하루에서도 채니가 얌전히 잠들어 있는 순간, 아빠의 낮잠, 우리 가족 외식, 엄마와 이모를 데려다줄 수 있었던 시 등. 그냥 지나쳤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가만히 앉아서 있는 시간에 들여다보니 반짝이고 있었다. 네잎클로버 잎의 뜻은 행운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세잎클로버 뜻은 행복이다. 행운을 찾으려다 행복을 놓쳐서는 안 된다. 소소한 행복을 자주 발견해 내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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