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을 바라볼 용기

by 서한나


주방 식탁의자에 앉아 노트북으로 포스팅을 하고 있는 나. 엄마는 밖에서 미니 정원 장미에 물을 주고 있다. 주방에 창이 나 있어 엄마가 물 주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는 리넨 롱치마를 입고 물뿌리개를 들고 있다. 발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물을 준다. 나는 그 모습이 예뻐 보여 사진을 찍었고. 이모는 그 모습을 보고 치마 입고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하냐며, 바지 입고 나가라고 했더니 기어이 치마를 입고 나갔다고 말한다. 엄마는 우리를 보고 괜찮다며 웃는다. 얼른 물만 주고 돌아오겠다고.


그러고 보니 식탁에서 보이는 화단 두 개 중 하나가 비어있다. 얼마 전까지는 뭐가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은 안 난다. 아마 철이 지났나 보다. 다른 것을 또 가져다 심으려나 보다.


남편은 출근했다. 이모는 어제처럼 직접 간 토마토 주스를 한통 챙겨주셨다. 우리 텃밭에서 딴 토마토다. 이번엔 노란색 토마토가 많다. 주스가 노란색이다. 채니는 노란색을 보더니 마시지 않았다. 싫다고 했다. 맛은 좋은데. 이모가 옆에서 채니에게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모는 바지런하다. 한 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우리 집에 오면 주방 살림 도맡아 한다. 손도 크고, 음식도 잘하는 편. 집에 보통 사람이 모이면 일곱여덟이다. 더 많을 때도 있고. 그럴 때 음식 척척해내는 건 이모다.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한식도 잘하고, 양식도 잘 한다. 파스타도 맛있고. 텃밭에서 나는 재료로 때마다 다르게 해준다. 썬드라이토마토, 바질 페스토 이런 것도 만들어뒀다가 내준다. 엄마는 조리학과를 나왔다. 이모를 보면서 혀를 내두른다. 쟤는 저런 걸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하냐면서. 학교에서 배운 조리법보다 이모가 더 잘 하고, 정갈하다는 거다. 우리는 뭐 그저 물개박수 치면서 먹어치우기 바쁘다.


청소도 정말 잘한다. 이모가 청소해놓으면 티가 난다. 깔끔하고, 단정해진다. 엄마는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미안해서 샤워를 못하겠다고.


엄마 역시 바지런하다. 이모가 집 안에서 그렇다면 엄마는 마당과 텃밭에서 그렇다. 엄마는 눈 뜨자마자 밖에 나가서 잡초 뽑고. 텃밭에서 채소를 따온다. 이모에게 주면 이모가 식사 때 내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할 일이 많다며. 밖에서는 엄마가 지나온 자리가 티 난다. 일을 했구나 하고. 잡초가 없어져있기도 하고. 무언가를 심어두기도 하고. 농사 장비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평소 아빠랑 죽이 잘 맞는 느낌은 없다. 티격태격 스타일. 근데, 집 밖에서 농사일을 할 때 죽이 잘 맞는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뭔가를 한다. 그 덕에 매년 채소, 과일 걱정 없이 풍족하게 먹는다. 마당에 나가면 언제나 눈이 쉬는 공간이기도 하고.


내가 이 얘기를 왜 했냐면. 채니랑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랑 이모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티격태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말한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고. 좀 쉬라고.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며. 귀여운 소리들이다. 그러다 내가 나오자 나에게 서로 동의를 구하느라 바쁘다. 그렇지 않냐며.


내가 보기에는 둘이 똑같다. 엄마와 이모에게 말한다. 이제 고만하고 쉬라고. 이리 오라고. 하지만 둘은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장소만 다를 뿐. 열심히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일을 하느라 바쁘다. 그 덕에 집 안과 밖에 모두 깨끗하다. 서로 자기 모습은 못 본다. 하지만 남이 하는 것은 잘 보이나 보다. 왜 쉬질 않냐며 탓한다. 그리고 서로 말한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면서. 왠지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고. 나는 말했다. 스스로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 있을 때 남편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이제 좀 쉬어. 혹은 가만히 있어도 되라고.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돼서 웃음이 났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엄마와 이모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집에서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하루 종일 집에 있을 때, 하루 종일 쉴 틈 없다.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정리도 해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채니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오기도 한다. 데리고 와서도 채니 간식 먹이는 틈에 이어서 하기도 한다. 잘 때까지 가만있지 않는 거다. 오늘 내가 이모와 엄마를 바라본 시선은, 평소 남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겠지.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본다. 살면서 무심코 타인에게 건네는 조언이나 평가가 자신에게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용기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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