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상황을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이집 앞에서 잘 떨어지길, 채니가 기분 좋게 사탕을 먹길, 가족 식사가 더없이 행복한 상황이 되길. 하지만 생각한 대로, 예상할 수 있는 상황만 생기지는 않는다. 오늘 식사하다 남편이랑 언성이 높아질 것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것도 부모님 앞에서.
채니가 울먹거리려 할 때, 나는 채니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채니를 안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 우리는 서로 사과하고 말없이 손을 잡았다.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 얘가 왜 이러나라고 말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해줬다. 식사할 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나의 말투에 왜 그거 하나 못하냐는 뉘앙스가 실렸겠지. 보이는 내가 하면 될 것을. 혹은 좀 더 섬세하게 챙기지 못한 내 모습에 스스로 아쉬웠다.
왜 채니와 남편에게 나의 태도가 달랐을지를 생각해 봤다. 채니는 아이니까 기대치도 낮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터다. 남편은 성인이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했던 나의 기대치 때문이다. 기대치를 낮추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서투름과 연약함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기대치가 높으니 비난하게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그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혹은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 남편 그리고 나에게도.
채니 여름방학이 끝났다. 친정에 머무르며 생각보다 수월하게 보냈다. 채니가 좋아하는 물놀이 매일 했다. 일 층이라 뛰어도 상관없는 엄마 집. 마음껏 뛰고, 떠들었다. 금요일부터 채니에게 자주 말해줬다. 이제 방학이 끝났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되면 어린이집에 간다고. 어젯밤 자기 전에도 말했다. 어떤 친구가 보고 싶은지도 물어보고. 채니는 두 명 친구 이름을 이야기했다.
아침에 채니가 일어나서 나를 부르길래, 가서 채니를 안아주며 말했다.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날이라고. 계속 말을 해서인지.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할 때도 채니는 별다른 말 없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장난감을 가져가겠다고 예닐곱 개쯤 꺼내서 자기 의자에 올려뒀다. 나도 나가야 해서 가방 싸서 나온 사이의 일. 평소 같으면 가져갔다가 내가 다시 가지고 오면 된다. 오늘은 그럴 수 없어서 하나만 가져가자고 했다. 채니는 앨리스를 집었다. 앨리스는 구급차. 그러더니 다른 손으로 프랭크를 집었다. 프랭크는 소방차. 프랭크를 앨리스 있는 손으로 옮기더니 에어를 들었다. 에어는 소방 헬기. 내가 안된다며 손을 휘저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채니는 어린이집 가방 주머니에 세 개를 넣더니 지퍼를 닫았다. 크기도 작고, 가방 안에 자기가 넣었으니 나도 별말 않고 채니와 집을 나섰다.
어린이집까지 채니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를 보며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빠는 어디 갔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어린이집은 가정형. 어린이집 현관 입구 복도로 들어갔더니 네댓 가정 부모와 아이들이 있었다. 뭔 일인가 싶었다. 사람들이 복도 여기저기 서서 서성 되고 있어서. 봤더니 아이들이 울고, 엄마나 아빠는 달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채니는 뛰어서 어린이집 현관까지 갔다. 현관에 아이들 의자가 있다. 앉아서 신발 신고 벗기 편하라고. 거기 앉을 때까지도 채니는 괜찮았다. 선생님이 보통은 가자마자 나오는데, 바로 나오지 않으셨다. 나는 채니 신발을 벗겨서 신발장에 넣었다.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뒤따라 나오는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마 그 아이를 달래고 있었던 모양이다. 채니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붙잡았다. 채니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말은 없었다. 나는 채니를 안으며 말했다. 친구들이 너무 오랜만에 어린이집에 와서 그런가 봐. 오늘 포비 선생님이랑 체육놀이도 하는 날이라 재미있을 거야. 엄마 다녀올게라고. 채니가 나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일보고 집에 돌아왔다. 아직 채니 데리러 가기 전까지 시간이 있길래 컴퓨터를 켰다. 글쓰기 수업 준비했다. 자료도 확인하고 말도 맞춰보고. 채니와 둘이 있을 때 하기는 어려우니, 이럴 때 바짝 해둬야 한다. 한 시간 정도 흘렀다. 얼추 준비가 됐다. 나머지는 이따 저녁에 다시 확인해 보며 할 참이었다.
주방으로 가서 실리콘 틀, 냄비, 주걱 꺼냈다. 얼마 전에 자일리톨 가루 샀다. 채니가 요즘 자꾸 사탕을 달라고 한다. 집에서 주지 않는다 한들, 밖에서 모두 먹고 다닌다. 밖에서는 통제가 어렵다. 어린이집에서 친구 생일 답례품으로 자일리톨 캔디 선물 받은 게 있어, 가끔 하나씩 꺼내줬다. 거진 다 먹어가는데. 생각해 보니 아로마 오일 DIY에도 있었던 거 같아서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니 간단했다. 만들어줘야겠다 생각했다. 채니 오기 전에 만들어두면, 이따 와서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냄비에 자일리톨 가루를 넣었다. 내 실리콘 틀에 맞는 양만큼. 불을 켜니 금세 녹기 시작했다. 자일리톨 가루 가장자리가 투명하게 변했다. 어느 정도 투명해지고, 가루가 좀 남았을 때 불을 껐다. 오렌지, 레몬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넣었다. 주걱으로 녹은 자일리톨을 섞었다. 실리콘틀에 부었다. 조금 지나니 굳기 시작했다. 빨리 굳히려고 냉동실에 넣어뒀다.
거실에 어질러진 장난감 바구니에 주워 담았다. 청소포로 바닥도 닦고. 자일리톨 만들었던 조리기구들도 정리했다.
엄마가 전화 왔다. 동생이 장어구이를 먹고 싶다고 했다며. 같이 먹자고. 채니를 데려왔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채니를 데리러 갈 참이라고 말했다. 대충 집도 치워졌고, 자일리톨 사탕도 만들었으니 집을 나섰다.
채니와 집에 도착했다. 곧 있으니 엄마 아빠가 왔다. 남편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퇴근 시간 맞춰 식당에 가기로 했다. 내 동생은 변덕이 좀 있는데, 고 사이 마음이 바뀌었는지 엄마에게 안 간다고 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로 우리 집에 올라오던 중 엄마는 전화가 왔다며 말했다. 누나 집에서 놀다가 오랬다며. 아무래도 동생은 아침부터 먹자고 이야기했는데, 저녁이 되어서 나 먹는다는 말에 싫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기다려서.
남편은 정시에 퇴근한다고 했다. 집에서 좀 있다가 남편 퇴근 맞춰서 출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미꼬담이라는 미역국 정식집에 가기로 했다. 남편이 퇴근한다고 하길래 우리도 출발했다. 남편이 먼저 도착해서 자리 잡고, 우리는 주차하고 들어갔다.
창가 식탁 자리에 남편이 앉아있다. 우리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그쪽으로 가서 앉았다. 세트메뉴로 시켰다. 미역국 두 가지, 사이드 두 가지 나온다. 꼬막 비빔이랑 같이. 주문한 메뉴들이 식탁 한가득 차려졌다. 고사리, 숙주, 궁채, 샐러드, 육전, 꼬막 비빔장, 간장게장, 쇠고기 미역국, 전복 미역국, 고등어구이 등등. 남편은 채니 먼저 먹였다. 낮에 중화요리를 먹었는데, 소화가 덜 된 거 같다면서. 남편은 김에 밥을 싸서 채니를 주기도 하고, 고등어 구이도 주고 했다. 육전 접시 한가운데는 부추를 간장에 절인 게 한 줌 올려져 있었다. 채니는 처음 보는 거라 무엇인지 물었다. 계란이 덮여 있으니 계란이라면서 달라고 했다. 간장 양념에 고춧가루가 들어있어 채니가 매울 거 같았다. 남편도 접시에 있는 육전을 여기저기 보더니 고춧가루 때문에 매울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접시 끝에 있는 육전들은 간장 양념이 묻지 않은 거 같으니 그쪽을 떼서 주라고 말했다. 남편은 잘 떼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하다가 중간에 있던 양념들을 가에 있는 육전에 절반 이상 묻혔다. 나는 양념이 육전에 묻는 걸 보면서, 여기 이쪽을 주라고 하며 손으로 가리켰다. 내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앞에서 아빠도 육전 떼는 걸 거들어주려고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아니 그렇게 하니까 더 묻잖아라고 말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아 정말 뭐라고 하네라고. 나는 그제야 얼굴을 들어 남편을 쳐다봤다. 아차 싶었다. 내가 너무 뭐라고 했구나 싶어서. 너무 잡도리를 쳤나 싶어 엄마, 아빠 표정부터 살폈다. 좀 놀라신 눈치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식사하고 계셨다. 내 표정이 굳었다. 남편도 얼굴이 굳어있긴 매한가지. 서로 가만히 젓가락만 들고 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내가 본 묻어있지 않은 육전 끝을 잘라서 채니에게 줬다. 여기 이렇게 하라는 말이었어라고 말하며. 남편도 그게 잘 안되더라고 하며 얼버무렸고.
남편은 느닷없이 앞으로 짜장면을 먹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쳐다보지 못했고, 짜장면 먹은 것도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남편이 몇 마디 더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나도 민망스러워 이영자, 김준현 이야기를 하며 체기는 음식으로 내려야 한다며, 웃어 보였다. 나는 좀 지나서야 남편 얼굴을 봤다. 엄마는 식사를 마치고 채니를 자기가 먹이겠다며 본인 옆으로 데려갔다. 채니는 엄마 옆에서 김에 싸놓은 밥과 반찬을 먹었다. 남편도 마저 식사를 했다. 식혜가 있길래 남편 떠다 줬다. 남편은 안 먹는다길래, 식혜가 소화가 잘 되게 도와주니 한입 먹으라고 했다.
부모님과 식당 앞에서 헤어졌다. 출발하는 거 보고, 우리도 차에 탔다. 서로 아무 말 없었다. 각자 채니랑만 말했다. 가는 도중 미안하다고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앞에서 너무 남편에게 뭐라고 한 것 같다. 남편에게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남편이 먼저 말한다. 미안하다고. 자기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됐다고. 부모님도 놀라신 거 같았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나도 아니라고 그런 줄도 몰랐고, 너무 뭐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가만히 손을 잡았다. 서로 말없이 창밖만 보다가 집에 도착했다. 소화제를 남편에게 가져다줬다. 나는 거실에서 채니랑 타요 버스 가지고 놀았다. 남편은 소화제를 먹고 좀 누웠다.
좋은 상황을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이집 앞에서 잘 떨어지길, 채니가 기분 좋게 사탕을 먹길, 가족 식사가 더없이 행복한 상황이 되길. 하지만 생각한 대로, 예상할 수 있는 상황만 생기지는 않는다. 오늘 식사하다 남편이랑 언성이 높아질 것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것도 부모님 앞에서.
채니가 울먹거리려 할 때, 나는 채니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채니를 안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 우리는 서로 사과하고 말없이 손을 잡았다.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 얘가 왜 이러나라고 말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해줬다. 식사할 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나의 말투에 왜 그거 하나 못하냐는 뉘앙스가 실렸겠지. 보이는 내가 하면 될 것을. 혹은 좀 더 섬세하게 챙기지 못한 내 모습에 스스로 아쉬웠다.
왜 채니와 남편에게 나의 태도가 달랐을지를 생각해 봤다. 채니는 아이니까 기대치도 낮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터다. 남편은 성인이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했던 나의 기대치 때문이다. 기대치를 낮추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서투름과 연약함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기대치가 높으니 비난하게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그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혹은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 남편 그리고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