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날. 한 번 더 확인차였다. 신호음이 울리다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전화를 넘긴 거다. 바쁜가 싶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카톡을 피시 버전에서 보내면 더 빨리할 수 있으니까. 바쁘냐고 메시지 남겼다. 오늘 만나기로 한 날인 거 잊은 건 아닌지 말도 덧붙였다. 지난번에 관심 있어 하는 프로모션 있었다. 그거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점심 식사 준비로 바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A는 식당 사장이다.
한 시간 정도 있었더니 A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늘이었냐는 A의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온다. 나는 그렇다고 했더니, 지금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 일정이 생겼다며. 어떡하냐는 A의 말. 뭐 별수 있나. 다음에 만나는 거지 뭐. 아쉽기는 했지만, 이미 가고 있다는 사람을 어쩔 도리는 없다. 프로모션 이야기했더니 하나 구매할 수 있게 알아봐달라고 했다. 나는 다음 주에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B에게 전화했다. 오늘 A를 같이 만나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신호음이 울렸다. 댓번정도 울리고 나니 전화가 연결됐다. 나는 출발했는지를 물었다. B가 A의 식당으로 오는 데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는 B. 나는 A가 일 보러 나가는 중이라 오늘 만남이 취소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A와 같이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갔다가 A가 자주 가는 피부관리숍 원장도 만나기로 한터. 점심에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조금 미뤘다. 두시에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텀이 있다. 그 사이 강의 피피티 자료를 수정했다. 얼마 전 강의 의뢰를 받았다. 녹화 강의다. 총 이백 분. 백 분짜리 강의를 두 개 녹화해서 보내야 했다. 통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강의를 구상할 때, 백분 중 로스율을 십 퍼센트라고 본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사십오분짜리 강의를 두개로 계산했다. 왜냐하면 늘 백분 강의를 구성할 때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구상이 떠올랐다.
내가 놓친 게 있었다. 사십오분씩 두 번 강의를 구성할 때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실시간이었다. 수강생이 있을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강의는 혼자 녹화해서 보내야 하는 것. 수강생 없이 혼자 구십분을 떠들어야 했다.
강의자료 구상하고, 만들었다. 말해야 하는 내용들 정리했다. 몇 차례 연습도 해봤다. 강의 녹화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어쨌든 통으로 백분 정도는 비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채니 어린이집 갔을 때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이니 하나씩 나눠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줌 접속했다. 화면을 공유했다. 타임 타이머로 강의 시간 맞춰놨다. 녹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 보면서 몇 마디 연습해 봤다. 녹화 버튼을 껐다. 파일이 저장되길 기다렸다. 완료된 것을 보고 폴더에 접속해 봤다. 저장된 비디오 파일을 클릭했다. 영상이 나온다. 화면이 잘 녹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본 녹화를 시작했다. 녹화를 한 삼십분쯤 했을 때였다. 이렇게 해서는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강생이 있으면 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생긴다. 잠깐의 틈이 있다는 말이다. 혼자 녹화를 하다 보니 틈이 전혀 없다. 목소리가 가기 시작했다. 잠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말을 하면서 목이 아팠다. 다음 파트로 넘어가는 때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너무 틈이 없이 줄줄 말했나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을 한잔 가지러 주방으로 갔다. 컵을 꺼내들고, 잔에 물을 채웠다. 마셨다. 두 잔을 연달아. 하기 전에 물을 많이 마셨지만, 혼자 계속 말하니 갈증이 더 났나 보다. 이어서 할지, 멈출지 고민됐다. 그래도 삼십분가량 한 게 아깝기도 했다. 음음 소리를 내면서 목을 다시 가다듬어봤다. 다시 녹화 버튼을 누르고, 강의를 시작했다. 한 삼십분 정도 더 녹화한 것 같다. 하다가 페이지를 봤다. 한 열자 남았다. 근데 시간은 삼십분을 더 해야 했다. 녹화를 중단했다. 삼십분을 채울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다시 찍어야 했다. 내용을 더 보완해서.
어떤 부분 추가할지, 언제 숨을 쉬어야 할지 다시 구상했다.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녹화강의 찍을 때 생각이 났다. 삼십분씩 세 번에 나눠서 찍었던 것이. 그 생각이 이제야 나다니. 그랬더라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준비했을 터인데. 친구 말도 떠올랐다. 90분 혼자 말하려니 죽을 맛이었다는 이야기. 다시는 안 하고 싶었다며, 하겠다고 덥석 맡았던 것을 후회한다는 말도. 이제라도 생각나서 다행이다. 강의자료를 하나만 만들고, 다른 하나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 참고해서 만들면 될 것 같았다.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해뒀다. 시간도 다시 재분배해 보고.
수정하다 보니 두시가 다 되어간다. 두시쯤 만나기로 했다. B가 오는 대로 연락 준다고 했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액정을 보니 B다.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가려고 했는데, B가 우리 집 앞으로 온다고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며. 고마웠다. 식당까지 십분 정도 걸리는데, 편안하게 가면 좋으니까. 미안했다. 우리 집을 거쳐서 식당으로 가면 조금 돌아서 가야 하니까. 시간 맞춰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조금 있으니 출입구에서 B 차가 내려왔다.
식당으로 갔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주인과도 아는 사이다. 조금 앉아있다 보니 C도 왔다. 같이 밥 먹으면서 이야기 나눴다. 주인은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복숭아를 내줬다. 아는 농장에서 직접 사 왔다며. 차에 좀 오래 있어서 과후숙됐다고 했다. 말랑 복숭아다. 분홍빛이 돌았다. 나는 복숭아를 싱크대에 가서 씻었다. 복숭아 껍질을 벗겨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접시에 놓았다. 한 개씩 집어먹었다. 네 개를 먹었다. 배부른데도 주인은 옆에 와서 더 먹으라고 했다. 맛을 본 B는 농장 번호를 받아 적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채니가 하원할 시간이 됐다. 식당을 나섰다.
어린이집으로 가서 채니를 데리고 왔다. 금요일이 광복절이라 목요일까지만 한다. 이 불가방을 싸줬다. 한쪽 어깨에 이불 가방을 메고 다른 손으로 채니를 잡았다. 같이 걸으면서 집까지 왔다. 채니는 카페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카페에 가자고 말하는 게 웃기긴 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놀랐다. 나도 카페를 자주 가지 않고, 남편도 마찬가지. 가자는 소리를 듣고 눈이 커졌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묻기도 했다. 집 근처 카페에 몇 번 간적 있다. 사장이 친절한 편이다. 직접 빵이랑 쿠키를 만든다. 맛도 좋고.
집에 들렀다가 가자고 했다. 가방이랑 이 불가 방 내려두고 짐을 챙겼다.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카페까지 걸어갔다. 칠팔분 정도 되는 거리. 가던 길 채니는 발걸음을 멈췄다. 강아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며 인사했다. 안녕 나는 채니야. 너는 이름이 뭐니라고. 듣고 있는데 웃음이 났다. 강아지는 제 갈 길 간다. 개미도 보고, 새도 보며 걸어갔다. 안아달라고 할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카페 앞까지 걸어갔다. 들어가면서 소금 빵을 외쳤건만. 소금빵은 품절이었다. 우유식빵이 남아 있어 하나 사고, 팥빙수를 주문했다.
자리 잡고 앉아서 팥빙수 나오길 기다렸다. 빵은 안 먹을 줄 알고 포장해달라고 했는데. 자리에 앉더니 빵을 먹겠다고 말했다. 나는 빵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나를 본 사장은 잘라드릴까요라고 말했다. 사장은 식빵 일부를 잘라서 접시에 내줬다. 채니는 포크로 빵을 찍어서 먹었다. 팥빙수가 나왔다. 채니는 떡이 어디 있냐고 해서 떡 있는 부분을 한 숟갈 퍼서 먹여줬다. 먹고 있는 우리를 본 사장은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가져다줬다. 아기들은 아이스크림을 빙수에 올려주니 더 좋아하더라면서. 센스가 좋다. 세심함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채니도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하더니 입부터 벌렸다. 먹여달라면서.
계획대로 강의 녹화가 촬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멈춰 설 수 있었다. 지금 문제점을 돌아보고 고칠 수 있었다. 갑자기 일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피피티를 수정할 시간이 생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민했던 것을 여유 있기 풀어낼 시간이 없었을 거다. 만나기로 한 일정이 취소되어,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식당 사장의 넉넉한 인심을 맛봤다. 채니가 갑자기 카페를 가자고 해서, 모처럼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채니와 카페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 하늘을 쳐다봤다. 하얀 구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간다.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해석할지는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