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by 서한나

기차를 탔다. 핸드폰으로 KTX 앱을 켜서 자리를 확인했다. 늦게 예매를 했더니 자리가 별로 없었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여야 한다. 가면서 사용해야 하니까. 객실 칸 가장 끝자리, 문이 열리면 바로 있는 자리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좌석은 의자 밑에 바닥이 높다. 들어가 앉을 때 자세가 어정쩡해진다. 좌석 폭도 좁았다. 들어가 앉으려다가 끼인 모양새가 됐다. 통로 쪽 자리에 앉아서 창쪽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자리에 앉아 앞 의자에 붙어 있는 보조 테이블을 펼쳤다. 가방 지퍼를 열었다. 노트북을 꺼냈다. 전원을 켜고, 마우스도 세팅했다. 화면에 삼성 갤럭시라고 로고가 떴다. 뒤이어 바탕화면이 나왔다. 지문인증을 했다. 서한나님 환영한다는 메시지. 동그란 원이 뜨면서 구동되고 있다는 그림이 보였다.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 출발 전. 기차에 타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시 시선을 내 노트북 화면으로 옮겼다. 화면이 컴컴했다. 전원 버튼을 다시 눌러봤다. 키보드에도 백라이트가 켜져 있다. 푸른빛이 돌았다. 화면이 켜지지 않아서인지 유독 눈에 선명하게 색이 들어왔다. 몇 번을 다시 껐다가 켜도 똑같았다. 화면은 보이지 않았다. 키보드 백라이트로 전원이 들어왔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몇 주 전부터 노트북이 이상하긴 했다. 온라인 강의를 듣던 중이었다. 갑자기 와이파이 연결이 끊겼다. 여러 차례. 늘 같은 장소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몇 차례 반복됐다. 프로그램 구동도 느려졌다. 그러다 노트북 배터리를 만졌다. 놀라서 손을 뗄 정도로 뜨거웠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니 이것저것 확인했다. 노트북 용량을 봤다. 455기가인데 450기가 정도 됐다. 하드에 빨간 표시가 되어 있었다. 자료들을 모두 백업했다. 백업한 파일은 모두 삭제했다. 용량이 100기가 정도로 줄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증상 있었다. 배터리가 뜨거워지기를 반복.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메인보드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던 거 같다. 노트북 구매한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다. 수리한지 일 년 됐다. 비슷한 증상인가 싶었다. 서비스센터 가봐야지 했지만, 이래저래 못 갔다. 결국 오늘 같은 일이 생겼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업무를 하려고 했다. 소견서 피드백해 주기로 한 게 있다. 가면서 하면 딱 맞다. 못했다. 노트북이 안 켜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어젯밤 책쓰기 수업도 진행했다. 그때도 아무 이상 없었다. 어제 잘 된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다. 지금 되지 않으니까. 핸드폰으로 안 켜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봤다. 관리자 모드로 들어가서 재부팅 하라는 거였다.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노트북을 덮었다. 가방에 넣었다.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실 문을 열었더니 학생들이 도착해있다. 몇몇 학생들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 나는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고 강단 앞에 섰다. 출석을 확인했다. 오늘 해야 할 일정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직업평가 캡스톤 디자인 수업. 오늘까지 캡스톤 디자인 계획서를 제출하는 날이다. 지도 교수로부터 들은 전달사항도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열여섯 명. 조별로 진행된다. 올해는 두 개 조다. 그룹별로 미팅했다. 학생들이 쓴 계획서 보면서 같이 이야기 나눴다.

나는 조별 미팅 때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한 학생이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말했다. 여기에는 그 내용이 없어서 알기가 어렵다고. 그 말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학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얼굴도 붉어지고. 아마 이런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을 터. 나는 말했다. 잘 못했다거나, 혼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궁금해서 묻는 것이니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고. 그래야 말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작성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몇몇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얼버무렸다. 챗 GPT에게 물어보면 된다며, 그 자리에서 노트북으로 챗 GPT를 켰다. 타이핑을 쳐서 나온 답을 나에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싶어서.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보다는 검색으로 나온 답을 받아들인다는 게 아쉬웠다. 의존도가 생각보다 높구나라는 걸 실감했다. 두 조 학생 모두 내 질문에 그 자리에서 이런 건 챗 GPT가 잘 해결해 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챗 GPT가 말해준 것은 적절한 답은 아니었다. 그들이 검색했던 결과를 가지고 나온 이야기를 내가 다시 질문하고, 그 내용의 근거가 부족함을 이야기했더니 아이들은 모두 표정이 굳었다. 당황한 눈치였다.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나는 말했다. 다시.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수업은 한시에 끝이지만, 계획서가 완성되지 않았다. 각 팀 조장들은 남아서 나와 계획서를 다시 살펴봤다. 예산 금액도 확인하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편집을 했다. 나는 내용을 수정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걸 수정했는지, 검토할 때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 이야기해줬다. 아이들은 다음 수업이 두 시라고 했다. 내용을 보완하고, 두시에 마쳤다.

핸드폰 앱을 켜서 기차 시간을 확인했다. 두시 반에 기차가 있다. 택시를 타고 역으로 이동했다. 아이들 피드백할 때부터 계속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로 옆에 앉아있으니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다. 민망했다. 얼굴이 좀 붉어지긴 했지만,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 이 기차를 타지 않으면 다음 기차가 삼십분 이상 텀이 있다. 평소라면 상관없지만, 노트북도 고쳐야 해서 서둘러야겠다 생각 들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뛰어서 역으로 들어갔다. 카페로 가서 단팥빵, 상투 과자 하나씩을 집어 들어 계산했다. 승강장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다 먹고 나니 기차가 역으로 들어왔다.

택시 타면서 기차를 예약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 자리는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 결재부터 했다. 아뿔싸. 자리에 가보니, 넷이 마주 보고 앉는 자리였다. 나는 창가 자리. 세 자리가 차있었다. 노트북도 안되니 눈을 좀 붙여볼까 했더니. 앞에 사람이 앉아서 자기가 싫었다. 자는 꼴이 흉할까 싶어서. 아침에 읽던 책 꺼내서 마저 읽었다. 창밖도 보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하면서 용산에 도착했다.



노트북 키보드 백라이트는 반짝거리며 푸른빛을 띄었다. 켜져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화면은 나오지 않았다. 백라이트에 전원이 들어왔으니 기대감이 있었지만, 정작 사용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챗 GPT로 그럴 싸한 답변을 내놓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답변을 복사 붙여 넣기하고 그럴듯한 내용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답변된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근거가 부족했다.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잘 작동되는 것처럼, 혹은 그럴듯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알맹이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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