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완성

by 서한나


이메일함을 열었다. A에게 메일이 와있다. 제목을 클릭해서, 파일을 다운로드했다. 압축을 풀고, 한글 파일을 였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마른 세수를 했다. 파일을 꺼버렸다. 하고 싶지 않았다. 힐끗 봐도 이전에 피드백 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부터 직업평가 소견서 피드백을 하고 있다. 직업평가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장애인이 취업할 수 있을지에 대해 검사한다. 그리고 어떻게 훈련을 하면 좋을지 제안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는 장애인복지 기관 담당자, 보호자, 사업주 등에게 보낸다.

열두 명 정도 소견서 피드백을 하고 있다. 연말이라 그런지 소견서 피드백을 요청하는 기관도 있다. 개별적으로 봐주는 사람도 있고, 대학생도 있다.

한 기관에 있는 두 명 평가사에게 피드백하기로 했다. 기관에서는 구월 초 전체 일정에 대해서 알려줬다. 평가사가 평가를 진행하는 기간. 소견서 작성 후 일정. 나는 이메일을 받으면, 칠일 안에 회신하면 됐다.


B는 일정에 따라 진도가 나가고 있었다. 구월 말 첫 번째 피드백 요청이 왔다. 기한 안에 나는 피드백을 해줬다.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전화 통화도 한 시간가량 했다. 소견서 구조, 흐름, 방향성 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일하면서 부수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B는 바로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전화 통화를 한 덕인지 얼굴은 모르지만, 이메일로도 친근하게 내용을 주고받았다.




A는 소식이 없었다. 나는 피드백 요청이 들어오면 칠 일 안에만 회신하면 됐으니까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기관에서도 별말이 없었고.

나는 의뢰를 받은 입장이니, 내가 할 일만 하면 그뿐이다. 십일 월 이십칠일 첫 메일이 왔다. 별다른 내용이 없길래 문자를 보냈다. 소견 작성하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특별한 질문이 있는지. 상대방은 없다고 했다. 온 소견서 내용을 검토하고, 피드백을 작성해서 보냈다.

A는 다음 평가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평가를 하게 되면 소견을 작성해서 보내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기관에서 공지가 왔다. 소견서 피드백 마감기한은 십이월 오 일이라고. 나는 기관에 이야기했다. 나에게 온 소견서는 모두 피드백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소견서가 있어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임을.

A는 평가 일정이 달라서 십이월 이십일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말이 맞지는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며칠이 지났다. 평가 일정이 바뀌었다며 소견서가 왔다. 평가 진행 일자를 보니, 처음 온 메일보다 먼저 다녀왔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만약 직장이었고, 내가 상사였다면 불러서 물었을 것이다. 날짜가 다른 것. 소견 작성이 늦고 있는 상황 등을. 하지만 회사가 아니고, 나는 의뢰를 받은 대로 피드백할 뿐이다.




처음 직업평가 보고서 쓰던 때가 기억났다. 마감기한이 있었다. 선배들과 같이 진행했다. 나만 보고서가 완성되지 않았다. 며칠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수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파일을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기관에 보고서를 보내야 하는 때가 지나도록 미완성인 상태. 결국 선배는 나를 사무실 밖으로 불러냈다.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니 뭐라고 혼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한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다. 그 이후에는 마감 날짜를 잘 지키려고 했다. 내가 혼자서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빨리 작성해서 선배에게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하는 시간이 걸렸다. 그것까지 계산해서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내가 마감까지 놓치면서 끙끙 됐던 이유는 이직한 직장에서 잘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경력직이었다. 초년생을 많이 뽑던 회사. 부담을 느꼈다. 선임들도 나보다 네댓 살이나 어렸고. 하지만 경력이 있다 한들 맡은 직무는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잘하기 어려운 직무이기도 하고. 숙련이 꾀나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숨을 고르고, 커피를 한 잔 탔다. 좋아하는 노래도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틀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아까 닫았던 파일을 열었다. 피드백 내용을 작성했다. 오늘이 세 번째 피드백이다. 같은 내용을 열 번째 쓰는 중이다. 반복하고 있자니, 내가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 걸까 싶었다. 처음 피드백 왔을 때와 보고서 대상자는 다른데, 내가 피드백 하는 내용은 전부 똑같다.

궁금했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알지만 그렇게 쓰기가 어려운 건지. 하지만 비대면으로 하는 일이니 즉각적으로 묻고 알려줄 수 없는 노릇이다.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도 고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파일에 한두 가지 중요한 것 위주로 내용을 작성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감기한 내에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했다. 완벽을 바라기는 무리였다. 완벽할 수도 없고.


일을 하다 보면 완벽과 완성 사이에서 늘 갈등이 생긴다. 어느샌가 완벽을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완벽을 바랄수록 완성과 멀어진다. 때로는 완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처음 일할 때 나는 완벽에 매달려 마감을 놓쳤다. 지금 A도 그런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제 나는 안다. 완성을 계속하다 보면 완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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