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의 일 '잔'

잊을 수 없는 빙하 앞 위스키

by 조조셉


'시소'잎이 향을 주도하는 진 피즈 (2017, 청담), '바카라' 글라스에 담긴 위스키 (2022, 낙성대)


술 자체보다, 그와 곁들이는 '조연'들이 씬 스틸러가 될 때가 있다. 술을 마시는 순간의 분위기는 당연한 것이니, '지금 이 조명... 온도... 습도...'는 일단 논외로 한다. 술이 빛나는 순간에는 여러 요소가 일조한다. 각자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주의 순간이 있을 텐데, (없다고? 이런...) 남미 여행을 나서는 내게 그 버킷리스트는 '빙하 위에서 마시는 빙하 위스키 온더락 한 잔이었다.'


(2023, 조조셉)


파타고니아의 드넓게 펼쳐진 빙하 위를 걷는 트래킹을 마치고 마지막에 가이드가 호쾌하게 부순 만년설을 글라스에 담고 위스키를 콸콸 부어주는 그 맛은 어떨까. 부어주는 위스키 래야 기껏해야 몇 년 묵었는지 모를 듀어스, 커티샥 정도 저렴한 녀석으로 보였으나, 기대감을 가지는 데는 충분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가는 동계 기간(6월) 에는 투어가 없다. 마치 약 올리듯이 불과 방문 일정 1주 전까지는 -기대하고 기대하던 만년설 온더락 위스키가 포함된- 빙하 트래킹 투어가 있었다. 아... 약 오른다!

엘 칼라파테(El Calafate)에서 페리토 모레노 (Perito Moreno) 빙하로 가는 길 (2019, 파타고니아)

그래도 파타고니아에 와서 빙하는 봐야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파타고니아의 엘 칼라파테로 향했다. 혹시 어디 유빙이라도 건져서 위스키 한 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서.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2019, 페리토 모레노)

위스키의 유무와 관계없이 (안개 때문에 더)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빙하 계곡은 방문자를 들뜨게 만들었다. 자, 이제 빙하를 건지러 가볼까?


'어 못 내려가' (2019, 페리토 모레노)

하지만 꼼꼼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국립공원 당국은 관강객들이 물가까지 내려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두고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비수기라 사람도 적고 따로 적극적인 감시인이 붙어있지는 않았지만, 어글리 코리안이 될 수는 없었다. 나무가 워낙 빽빽하게 둘러있기도 하고, 계속 빙하 조각이 "쩡-" 소리를 내며 떨어지니 접근을 막는 게 당연해 보였다. (물가까지 간 사람이 빙하까지 가지 말란 법이 없으니)


빙하는 아름다웠다. (2019, 페리토 모레노)

빙하 온더락은 건지지 못했으나 그래도 한 잔 해야지.

'여긴 어디 난 무엇' (2019, 페리토 모레노)

위스키를 힙 플라스크(Hip Flask, 휴대용 술병)에 담아왔다. 같은 아메리카의 기상이 담긴 미국 위스키로.


한껏 분위기에 취한 동행 김 씨 (2019, 페리토 모레노)

생각해보니 얼음이 있어도, 담을 잔이 없었다.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해 본다. 청량한 얼음 바람을 맞으며 들이키는 독한 미제 버번위스키. 좋았다. 아니 그런데... 더 좋은 게 있다는 것을 안다. SNS를 접하고 상대적 행복을 잃어버린 부탄 사람처럼, 더 좋은 것을 알아버렸으니... 조금 눈물이 난다.


또 보자 인간. (2019, 페리토 모레노)

뭐 어쩌랴, 억울하면 다시 와야지.




동네 슈퍼에서 팔던 3천 원짜리 매그넘(1.5l) 와인, 꽤 마실만 하다. (엘 칼라파테)
개들이 참 많다. 주인 있는 개, 없는 개 (2019, 엘 칼라파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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