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집에서 벌어진 찹쌀들의 작당모의
좋은 식사 코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다. (그렇다 이 '여행술' 매거진에 식사 이야기를 올리기 위한 포석이다.) 게다가 좋은 코스는 좋은 술과 잘 어우러지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준다. 코로나로 해외길이 막힌 사이 스시 오마카세, 한우 오마카세, 심지어 이모카세 등 수많은 -카세 들이 범람했던 것도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아니었을까. 코로나의 영향이 많이 누그러진 올해 초, 코스 요리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https://goo.gl/maps/54djr6QHvY2KYuw87?coh=178573&entry=tt
바로 순대 오마카세를 표방하는 <리북방>이다. <Eleven Madison Park>, <Marea> 등 뉴욕의 유명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거친 최지형 셰프가 2017년 말 오픈한 홍대의 <서교고메>가 마포로 옮겨오면서 본격적인 순대 코스 요릿집으로 변모했다...-라고 한다. (아무튼 나만 몰랐다 이거다) 쭉 유명했던 식당인 것.
순대 주말 코스를 주문하고 (현재는 69,800원, 방문 당시 65,000원으로 기억), 런치 시간대라 주류 외에 음료 주문도 가능하다. 1인 1 음료 주문은 필수다. 낮부터 술은 좀 그래서 맥아 음료를 하나 주문해 봤다.
맥파이 쾰쉬로 우선 목을 축인다. 쾰쉬 특유의 가벼운 청량감이 좋다. 첫 잔으로 굿 초이스, 셀프 칭찬.
순대가 주인공이지만, 시작은 청포묵 면이 산뜻한 디쉬로 시작, 잡채를 재해석한 이북 음식의 재해석 버전? 정도 될 듯.
쾰쉬와 함께 애피타이저를 비우고 있자니 오늘의 주인공이 순회공연을 시작한다. 셰프님이 오늘 식사에 등장할 메인 순대들이 든 찜통을 들고 한 바퀴 돌면서 설명을 해주신다.
이쯤에서 메인요리 순대와 곁들일 메인 주류도 주문한다. 한산 소곡주. 찹쌀에는 찹쌀로 대적한다!
한산 소곡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제조된 소곡주만이 한산 소곡주로 인정받는다. 국가에서 명인 인증을 받은 것은 우희열 명인이 유일하나, 지역 내에서 유명한 여러 소곡주들이 존재한다. 찹쌀을 주재료로 하여 강한 단맛이 인상적이라 높은 도수(18도)가 잘 느껴지지 않아 '앉은뱅이 술'로도 유명하다. 18도라는 도수는 발효주에서는 최대 도수이다. 도수가 더 높아지면 효모가 사멸하는 단계. 우희열 명인 소곡주의 경우 찹쌀 외에 메주콩, 생강 등 부가재료를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것으로 보이는 음식들이 나오며 메인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킨다. 명태순대와 함께 나왔던 쪽파오일은 프렌치 출신 셰프의 훌륭한 킥이 아니었나 감히 평가해 본다. 아주 좋았다. 편육과 명란의 조화도 굿.
이제 메인이 나오나 보다. 육젓 사이즈가 참으로 육중하다. 육젓은 나중에 들어보니 같은 무게의 캐비어보다 비싸다고 한다. 이래저래 묵직하구먼. 함께 나오는 명태식해도 잘 삭힌 게 기대감을 더 증폭시킨다.
순대가 준비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테이블에 복순도가 막걸리가 분주히 서빙되고 있었다. 탄산이 워낙 강하니 오픈해 두고 다시 닫은 후 시간이 지난 뒤 서빙하는 방식이었다. 이날 희생된(?) 복순도가만 대여섯 병가량. 복순도가 막걸리의 산미는 순대의 기름기를 잘 씻어주겠지만 나는 우희열 명인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메인인 순대가 서빙되면서, 아껴두었던 소곡주를 순대와 함께 즐겨본다. 담백한 백순대와 찰진 고기순대, 두터운 아바이순대까지. 아, 찰싹 붙는다.
찹쌀과 찹쌀이 착- 붙는구나!
이런 유착관계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소곡주에 남아있는 약간의 둔탁한 끝맛이 순대의 기름기와 만나니 느껴지지 않고, 단맛은 서로 만나 폭풍 같은 감칠맛을 선사해 준다. 말 그대로 찰떡 조합이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오리순대. 향신료로 오리 냄새는 잡았지만 풍미는 꽤 남아있다. 토치로 지져 바삭한 겉면도 매력적이고 찰떡 친구 찹쌀술(소곡주)과도 잘 어울렸다. 역시 순대의 가장 좋은 친구. 감칠맛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간 이후 식사를 마무리하는 요리들이 이어졌다.
혀끝에서 녹는 배향 눈꽃과 함께 잘 구워진 고기와 술을 음미하고 있는데, 아?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유학파 순대 등장. 치미추리와 크림소스, 잘게 다진 샬럿 장아찌가 어우러지면서 감칠맛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머릿속에 헤드라인이 떠오른다. "감칠맛 과다 섭취자, 마포에서 숨 쉰 채로 발견" 이 역시 소곡주를 더하니 폭풍이 그치질 않는다.
술과 순대와 고기를 함께한 즐거운 잔치도 마무리를 해야만 한다. 적당히 식은 온도감의 수육과 국밥이 이를 돕는다. 어떤 사람은 이게 제일 맛있었다던데... 하긴 나도 스시집에서 후토마키가 제일 맛있다고 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이 집은 물이 제일 맛있네~!" 하는 충청도식 돌려 까기는 아니다.)
감칠맛 폭풍을 뚫고 나선 항해 끝에 맞이하는 평온한 디저트로 마무리한다. 음식들에 대해 감히 평할 것은 못되고, 코스에 맞출 주류가 고민된다면 자신 있게 소곡주를 추천한다. 사이사이 음식들을 끊어주는 산도 높은 탄산 (복순도가)도 훌륭한 선택이지만, 약주는 한식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훌륭한 친구이다. 찹쌀과 찹쌀이 만나 착- 붙는 조화를 보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