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Be Scared!

왜 터프가이들은 버드라이트를 마시는가

by 조조셉
Las Vegas Strip (2022, Las Vegas)


사실 미국여행에서 라스베가스는 곁다리였다. 그랜드 캐년 투어를 위해 거쳐가는 도시 정도였는데, 그랜드 캐년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었다. 그 기억에 한몫한 그 경험을 첫 브런치 시리즈 ' 그의 여행술'로 기록해 본다. 뉴욕 재즈클럽 탐방기, 묵은 여행 사진들과 같이 여러 야심 찬 기획들이 있지만 우선 술냄새나는 여행기가 이 브런치의 주인공이 될 것 같다.


Grand Canyon South Rim, Antelope Canyon, Horse Shoe Band (2022, Arizona)



일출보다 자정에 더 가까운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16시간에 걸친 그랜드캐년 및 기타 등등 친구들 투어를 마치고 시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가이드분에게 이곳의 나이트라이프를 즐기고 싶다 하니, 이렇게 전했다. "라스베가스는 다운타운이 진짜다. 세상 이상한 사람들은 다 거기에 있다."

가야지 그럼. 안 갈 수 없다.

피눈물 나는 우버 비용을 혼자서 내고 라스베가스 스트립 끄트머리 숙소에서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스트립과는 또 다른 현란함의 다운타운. 나중에 알았는데, 이 사진 속의 모녀를 펍에서 만났다. (2022, Las Vegas)

스트립과는 또 다르게 현란한 다운타운의 취객들 사이를 헤쳐나가며, 나도 얼큰해지기 위해 열심히 가게를 찾았다. 일단 칵테일이나 한 잔 할까?


열린 문 닫힘. The Laundry Room (2022, Las Vegas)


야심 차게 들어선 스피크이지 바는 뜨내기 여행자를 거부했다. 예약 손님만을 받는 바였다. 이렇게 된 이상 아예 로컬 느낌을 찾아보자, 펍(Pub) 또는 태번(Tavern), 또는 다이브 바(Dive Bar, "술독에 빠지는" 저렴한 동네 술집)라고 불리는 만만한 그런 곳. 수상하게 평점이 높은 이상한 이름의 선술집을 발견했다.

개돼지도 아니고 소돼지(돼지소) 살룬이라니. (앞으로 '소돼지 살룬'으로 부르겠다.)


Hogs and Heifers Saloon, NV (2022, Las Vegas)

https://goo.gl/maps/YSUNKasxrVEyZH557


2,500개에 달하는 구글 평점 리뷰에도 4.5점을 유지 중인 이 펍.

삼삼오오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바이커들, 손님들. 그리고 베스트만 걸친 거구의 가드.


이 거친 분위기.


그래 바로 여기다!


Hogs and Heifers Saloon, 가게 입구 (2022, Las Vegas)


다행히 생각보다는? 바이커가 아닌 손님들이 더 많았다.

입구 근처에는 가게 이름값을 하는 돼지(Hog)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주 확성기로 공지나 추임새를 넣는다. *백 바를 찍겠다고 허락받고 찍은 사진임을 강조* (2022, Las Vegas)


인파를 헤치고 중간의 바 자리 하나 간신히 차지하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바텐더가 한 마디 한다.


"Hey, Don't Be Scared!"


아니 어떻게 알았지? 이 '소돼지 살룬'은 어떤 분위기인가? 바텐더들의 복장이나 서비스 방식이나 중간의 이벤트까지, 영화 코요테어글리를 생각하면 정확하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이 뉴욕인데, 이 술집도 원래 뉴욕에 있었다고 한다.


중간중간 바텐더들이 바 테이블 위에서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그리고 손님들의 시간도 있다. 남자들은 함부로 오르지 못한다. 무너질까봐(!) (2022, Las Vegas)


쫄지 않을 수가 있나. 가까스로 겸연한 표정을 짓고, 기네스 드래프트를 주문한다. 흡연이 가능한 곳이라, 가방에 있던 미니 시가 (Cohiba Short) 한 대도 피워본다. 평소 연초나 전자담배 등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피우는 시가는 너무 고소하다.


핸드폰에 간신히 남은 그때의 흔적 (2022, Las Vegas)

그런데 이곳의 부담스러운 서비스가 하나 있는데, 바에서 담배를 피우는 손님은 바텐더가 담뱃불을 붙여준다.

동양의 샤이가이는 피우지 말라는 건가... 아마 팁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바텐더: "대체 왜 기네스 같은 맥주를 마시는 거야?"

나: "아니 이만큼 시가, 담배와 잘 어울리는 음료가 없는데 왜?"

바텐더: "너무 배부르고 느끼하다. 맥주는 많이 들이켤 수 있어야지."

나: "여기선 뭘 마셔야 하는데 그럼?"


정말 해피한 가격 (2022, Las Vegas)
"뭐긴 뭐야, 버드라이트지!"


맥주 애호가라면 진절머리를 칠 부가물라거(옥수수가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의 대표주자 버드와이저에,

거기에서 나오는 더 가벼운 맥주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의 버드라이트?

맥주순수령맙소사...


심지어 앞의 사진에서 보이는 유명 크래프트 맥주 제조사 Founders의 훌륭한 IPA도 생맥주로 판매되고 있었다. 해피아워가 아니어도 8달러 정도. 현금 전용 펍이니 팁까지 10달러로 딱 적당한데 버드라이트를 왜?


영국 신사도 아니고, IPA 마시는 힙스터도 아니라면 버드라이트는 이 터프한 펍에서 어떤 의미일까.

풍미로 따지자면 잘 쳐줘야 카스라이트 상위호환이다. 배부르지 않아 더 마실 수 있다던 라이트 맥주 마케팅이 성공적이었다더니, 삼국지의 장비처럼 술을 동이째로 들이켜야 진짜 미국의 호걸, BAD-A$$ 터프가이이기 때문일까?


호걸답게 동이째 술을 들이켜는 장비 (2023, 조조셉)


아직 의문이 남은 상태에서 드래프트 탭에 있는 나머지 맥주들, IPA(Founders IPA)와 망고맥주(Golden Road Mango Cart)를 마시고 나니 남은 선택지는 버드라이트뿐이다. 경험치나 쌓을 생각으로 주문해 본다. 그리고 저렴한 버번(Bourbon) 위스키 한 잔을 주문하고 체이서(Chaser, 독주에 뒤따라 마시는 음료나 가벼운 술)로 삼았다.


샷 글라스에 서빙된 달짝지근하지만 독한 버번을 털어 넣고 버드라이트를 바로 이어서 들이킨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와인과 안주에 좋은 페어링이 있고 술과 체이서가 잘 만나면 굉장한 시너지가 난다. 아이리쉬 위스키와 기네스의 조합은 흔히 카밤으로 불리는 아이리쉬 카밤도 있고, 여러 나라의 여러 술들과 음료가 훌륭한 독주-체이서 조합을 보여주고 있다.

Irish Car Bomb
임슨 등 아이리쉬 위스키 반, 베일리스 아이리쉬 크림을 반 넣은 샷 글라스를 한 모금 마신 기네스에 떨어뜨려 한 번에 들이켜는 폭탄주 칵테일


근데... 형이 여기서 왜 나와?


옥수수를 넣은 부가물 라거가 옥수수 술을 만나 빛을 발하나? (버번은 51% 이상 옥수수를 사용해야 하니) 버번의 달콤한 향과, 들척인다고 생각했던 버드라이트의 달콤함이 합쳐지고 곡물의 고소함도 두드러진다. 역시 미국 술에는 미국 술이다. 한국의 소맥이 나름의 미감과 의미가 있듯이, 이곳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See Rule #1. (2022, Las Vegas)


그렇다. 이 날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바텐더가 언제나 옳다.


정말 그랬다.



"사람 안 나오게 백 바좀 찍어도 됨?" "Sure!" ..."?" (2022, Las Vegas)
결국 다음날 <마피아 박물관>에 갔다가 또 들렀다. 바텐더가 급조해 준 시가 트레이(?)가 인상적이다. (2022, Las Vegas)
현란한 백 바. 여러 모금 행사를 하는데 이때는 소방관 돕기 행사였다. 나도 조금 보탰다, 마초적 이미지와 달리 LGBTQ커뮤니티도 후원한다. (2022, Las V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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