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물도 위아래가 있다.

Sherry의 향기는 오래 가요

by 조조셉
'알함브라'다 (2016, Granada)
'그라나다'다, Plaza Nueva (2016, Granada)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도 보고 플라멩코 공연도 본 여행자라면, 남은 것은 타파스 바를 가는 것뿐이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막상 볼거리 욕심이 많아 한 곳만 제대로 즐겼지만 인심 후한 그라나다를 제대로 즐기려면 타파스 바를 가는 것은 실제로 옳은 일이다.


La Gran Taberna, 이름과 달리 그렇게 그랜-드 하진 않다. 그라나다 술집들 중에 큰 편이긴 할지도? (2016, Granada)

https://goo.gl/maps/kegHPerjroPs8Tr6A

충만한 타파스 경험을 위해 여러 방법으로 타파스 술집을 찾았고, 누에바 광장 한편에 수줍은 노란색 외벽으로 칠해진 <라 그란 타베르나, La Gran Taberna>, 너로 정했다! 이름과 달리 그렇게 그랜-드, 그랑-데 하지는 않지만 2층까지 있는 선술집으로 영어라면 Tavern.


<La Gran Taberna> 메뉴판 (2016, Granada)

현란한 메뉴. 하지만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은 솔로 여행자에게 허락된 것은 단 하나 'Combinado' (콤비나도, Combination, 모둠메뉴) 망설일 것이 없다. 타파스 모둠도 끌리지만, 그중에서도 가게의 이름을 단 메뉴가 눈에 띄었으니. 바로 Combinada GRAN TABERNA (실제로 대문자로 쓰여있다.) 1/2 사이즈 주문!


그리고 첫 잔을 고민한다. 스페인에 와서 생각보다 '샹그리아' 한 잔 마실일이 생각보다 없었다. 많은 가게들이 잔 보다는 대용량의 Jarra(하ㄹㄹㄹ라, 영어로 Jar나 Jug와 대응)로 팔고 있어서 홀로 여행자에겐 부담이었다. 시키면 다 마시긴 하겠지만... 여러 가지를 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잔술로 샹그리아가 있기에 반가워서 시켰다.


그라나다의 '국룰' 무료 안주와 샹그리아 (2016, Granada)

그리고 안 나오면 섭섭한 타파스 등장. 바게트 위에 크림소스를 머금은 오믈렛 비슷한 것이 올라가 있다. 타파스 자체는 작은 안주를 의미하니 정확히는 브루스케타(Bruschetta)가 맞겠다. 이탈리아식 표현이다.


현지화된 음식을 여전히 외국 음식이라고 칭하는 게 한국이나 일본의 '중화요리' 포지션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누가 한국 짜장면과 일본 라멘을 전통 중국이라고 하겠는가) 같이 나온 올리브 올리브유 절임도 야무지다.


모둠샷을 위해 아껴먹었다. (2016, Granada)
왼쪽부터 돼지 간 빠떼, 닭 빠떼, 캐비어가 올라간 연어, 치즈, 다양한 초리조와 하몽. 저는 그만 빠떼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2016, Granada)

그리고 드디어 나온 <그란 타베르나>의 <그란타베르나 모둠 (1/2)> 굳이 타파스 진열된 샷을 보려는 게 아니면 셀프 조립하는 느낌으로 시키기에 좋은 선택이었다. 역시나 현지의 빠떼와 하몽은 (심지어 세라노 정도로 보이는데도) 감동적이다.


치즈는 아마도 만테고(양젖)치즈, 캐비어는 당연히 아브루가(청어)나 대체품이겠지만 연어와의 조합은 참 짭조름하니 좋았다. 보기에도 목 막히는 그림이지만, 그럼 술을 시키면 된다. 밥도둑이 아닌 술도둑이라고 해야 할까.


'생'(술통) 와인 메뉴 (2016, Granada)

이쯤에서 샹그리아를 시킬 때부터 눈여겨봤던 메뉴를 주문해 본다. 이걸 담았던 오크통에 숙성한 위스키 (PX Cask matured Whisky)들이 유독 고평가를 받기에 늘 궁금했는데 이것 역시 잔술로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건 바로 PEDRO XIMENEZ! (페드로 히메네즈, 동명의 포도 품종으로 만든 셰리와인)


”싸장님 여기 뻬드로 히메네즈 단 하나! “

“안돼 안 팔아!”

“왜요!”

”그건 이따 막잔으로나 드셔!"

“아?”


Sherry(셰리) 와인은 대체로 일반 와인에 브랜디를 넣은 주정 강화와인으로만 불리지만, flor(플로르, 효모가 형성하는 수면의 막) 발효와 숙성에 따라 Olorosso → Palo Cortado → Fino → Amontilado 등 여러 종류로 변화한다. 위의 메뉴를 분석해 보면 아래와 같다.

- Vermut : 베르무트, 식전주나 마티니 등 칵테일 재료로 쓰이는 화이트와인 기반의 리큐르
- Palo Cortado : 팔로 코르타도, Fino(피노)나 Amontilado(아몬틸라도) 숙성 도중 플로르가 중간에 사멸한 형태로 Oloroso(올로로소)와 Fino(피노)의 중간 풍미
- Málaga : 말라가의 와인도 여러 종류인데, 일반적인 스틸와인(Still Wine, 탄산 없는 와인)으로 보인다.
- Jerez Oro : Olroso로 보인다. (헤레즈 자체가 올로로소로 유명한 지역), 올로로소는 플로르 발효를 마친 와인에 브랜디를 넣어 발효를 멈추는 가장 잘 알려진 셰리와인의 종류.
- Calicasas : 그라나다 인근의 소도시 깔리까사스, 그곳에서 만드는 베르무트의 일종(인 것 같다.) 이것도
마셔볼걸!!
- Pedro Ximénez : 페드로 히메네즈 포도 품종으로 만든 셰리. 주로 다른 셰리에 가당 용으로 사용하는데, 이걸 조금 넣은 올로로소 셰리를 크림 셰리라고 하는데, 조금 넣은 게 크림이라면 이건 어느 정도 일지? 그 달달한 포트와인보다 약 2배 정도 달다. 가게 주인장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수긍하고 시킨 Birra (맥주) (2016, Granada)

중간에 응급 탄산 공급을 위해 맥주도 한 잔 시켰다. 열심히 타파스를 조립해 가며 다른 술들을 탐닉해 본다. 그리고 대망의 주문!!!


사장님도 고개를 ‘끄덕’


한 잔 마셔보니...


썩은침착맨.jpg "이가 썩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침착맨 (2023, 조조셉)


아이고 싸장님... (당을) 뭐 이리 많이 넣으셨어요... 이가 썩을 것 같아요... 셰리 와인 중에서도 달콤하고 진득해서 크림셰리로 불리는 셰리가 있는데, 거기에 ‘가당’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이 페드로 히메네즈다. 그 달콤한 포트와인보다 2배는 달달한 물건으로, 디저트 와인으로 마시기에도 다소 부담스러운 와인인 것



pedro ximenez 2.jpeg 나 먹물 아니다 (2016, Granada)


이 어마어마한 달콤함이라니. 소위 말하는 쨈스러운 (Jammy) 표현을 몇 번 제곱해야 나올 것 같은 진득한 검은 과실류의 직선적인 달콤함... 시원하게 서빙되어 이 정도이지 상온으로 마셨다면 바로 치과를 찾아 고해성사를 해야 할 것 같은 달콤함이었다. 이런 와인을 술자리 처음에 마신다면 그날 다른 술은 마실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포도물에도 위아래가 있다.





pedro ximenez.jpeg 빛을 받아도 약간의 갈색빛만 돌뿐, 검고 진득하다 (2016, Granada)
jamons and toneles.jpeg 술통(Tonnel)에 담긴 와인들 (2016, Granda)
gran taberna interior 2.jpeg 낮술을 즐기고 나니 한산해진 가게 (2016, Gr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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