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스 남바완!

일본술 기초반, 또는 고인물의 소굴

by 조조셉
우니이꾸라동 <타츠미스시본점>, 고마사바 <오레노갓포(하카타나카스)>, 모츠나베 <에치고야> (2018, 福岡)

먹다가 망한다는 오사카 사람들 만큼이나, 후쿠오카 사람들의 음식 '덕력'도 만만치 않다. 모츠나베(대창전골), 고마사바(참깨고등어), 돈코츠라멘, 멘타이코(명란)의 고향이며 스시도 자신들만의 스타일이 있다. 우리나라와 가까워 영향을 받으면서도 친숙하지만 이국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카스 상점가 초입, 술꾼들을 설레게 한다. (2018, 福岡)

술 문화는 어떤가? 나카스 강변을 따라 일본의 유일한 포장마차 (屋台, 야타이) 촌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는 예상 가능한 오뎅집, 라멘집, 구이집은 물론 본격적인 칵테일 포차까지도 있다. 나카스 번화가에는 명물 메뉴를 자랑하는 여러 노포들에서부터 요리주점 '갓포(割烹)', 위스키바 등 어마어마한 선택지가 펼쳐져 있다.


정보의 과잉에 이은 선택의 과잉이다. 어디를 가야 적당한 가격에 다양한 메뉴와 괜찮은 맛, 포근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기초를 닦을 수(?) 있을까. 초행자에게 나카스는 거대한 주관식시험지 같은 느낌이다. 나 역시 이 동네는 처음이었기에, 여러 골목을 헤매었다. 그러다 나카스 상점가 한가운데서 자신만만한 간판을 발견한다.


모츠나베 단돈 630엔!, 간판의 가격은 계속 업데이트되는 듯 <사케이치방> (2018, 福岡)

https://goo.gl/maps/9uWEv9PWmaKEM7fMA


수많은 술집 중에 "우리 집이 나카스 남바완!"이라고 외치는 듯한 <사케 이치방>, 우리나라의 '진짜원조' 정도 비슷한 느낌일까. 그래도 감이 나쁘지 않다, 직감을 믿고 들어가 본다.

<사케 이치방>의 내부, 인테리어나 조명의 조도나 술집보다는 가정식 식당같은 느낌이다. (2018, 福岡)


패기 넘치는 옥호와는 다르게 소담한 실내, 그리고 일본의 술집답게 매캐한 담배 연기와 그에 못지않는 수다로 술집이 시끌시끌하게 가득 차있다. 그리고 가득 찬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메뉴 이치방? (2018, 福岡)

살짝 걱정이 든다. 이 많은 메뉴들... 퀄리티가 괜찮을까


에..또... (2018, 福岡)

걱정이 더 커진다. 하지만 묘하게 상냥하다. 그리고 이 집이 소중한 이유 또 하나. 술 종류도 메뉴 만큼이나 다양하다. 병맥주, 생맥주 등 중복된 메뉴를 제외해도 맥주, 청주(니혼슈), 일본 막걸리 (니고리자케), 쌀 소주, 고구마 소주, 보리 소주, 메밀 소주, 위스키, 레몬사와, 라임사와, 레드와인 , 화이트와인, 로제와인, 매실주의 열댓가지의 주류가 마련되어 있고, 거기서 또 소주나 위스키 등 독주는 우롱차, 물 타기(미즈와리), 하이볼(소다와리) 등 선택이 가능하다. 항상 궁금했던 메밀 소주와 니고리자케를 주문한다. 안주는 계란말이와 명란 갑오징어, 그리고 1인분도 주문이 가능하기에 스키야키 하나 추가.


결연한 표정으로 큰 병의 내용물을 잘섞은 후 서빙 (2018, 福岡)

먼저 내어준 소주가 나온 뒤 기다리고 있자니 잇쇼빙 (一升瓶, 1.8리터 사이즈)은 되어보이는 니고리자케 병을 들고 이모님이 등장하신다. 천천히 병을 뒤집어가며 내용물을 섞더니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그라스'에 양껏 따라주신다. 사뭇 진지한 의식의 과정.


니고리자케 (にごりざけ, 濁り酒 [음독으로 도부로쿠])의 니고리는 흐릴'탁'(濁)자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탁주가 된다. 다만 우리나라 탁주인 막걸리와는 조금 다르다. 니혼슈 양조에 사용하는 도정한 쌀을 사용한다. 또한 대부분 물을 타지 않은 원주로 출시되기 때문에 도수도 니혼슈와 비슷한 15도 안팎이다. 최초에는 청주를 빚고 난 이후의 찌꺼기를 활용하는 것에서 시작한 막걸리와 다른 유래로, '거르지 않은 청주'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막걸리도 도정한 쌀을 사용하는 곳도 늘었고 원주 제품도 꽤 나와서, 딱 들어맞는 구분은 아닐 수 있다.)


니고지라케 남바완, 쇼츄 남바투ㅜ 출격 준비 완료. (2018, 福岡)

바로 니고리자케 한 모금, 막걸리보다 당도는 낮은 것 같고 시원하게 깔끔한 맛이다. 하지만 도수가 있다보니 막걸리처럼 쭉쭉 들이키기는 다소 부담이 있다. 메밀소주도 카랑카랑하니 좋다. 일본식 표현으로 카라이(からい(辛い))하다고 해야할까. 깔끔한 쌀 소주, 달큰한 고구마 소주, 왠지 고소한 것 같은 보리 소주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다만 쌀 소주와 고구마 소주가 가장 잘나가는 것을 보면 달달한게 어디서나 먹히는 것 같긴 하다.


이렇게 많은 술을 취급하는 곳이 있으니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한 번에 풀어주는 느낌이다. 일본 술 입문 과정(?)에 있는 분들이 와도, 어느 정도 고여있는(...) 분들이 와도 메뉴 구성 자체로 즐거울 곳이다. 일본이라 해도 니고리자케를 취급하는 가게는 잘 없다. 일본에서 막걸리 열풍이 불 때 "우리도 막걸리가 있는데! 잊어버리고 왜 남의 나라 술을 마시는거야"라며 한탄한 유명인사가 있었다고.


명란과 갑오징어 회, 계란말이, 스키야키 (2018, 福岡)

그리고 주문한 안주들이 차례로 나왔다. 대부분의 안주가 방문 당시 기준으로 3백엔~5백엔 대이고, 나베 종류는 600~800엔 정도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스키야키가 800엔 정도. 그런데 회 상태도 준수하고 무엇보다 이 집의 자랑이라는 나베 메뉴가 기대 이상이었다. 비록 간소화 된 형태로 고기가 물에 잠겨있는 상태로(...) 나오기는 했지만 들어있을 것 다 들어있는 가정식 느낌으로 소위 '가성비 좋은' 메뉴였다. 스키야키 국룰인 날계란도 당연히 나온다.


기초반 커리큘럼 확실하다. 어디선가 일본술 입문협회가 암약하고 있는 걸까 (2018, 福岡)

화려한 진미도 좋지만, 소박한 곳이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다양한 술과 안주의 세계를 저렴한 입장료로(!) 즐길 수 있는 사케 이치방. 내 마음 속 나카스 남바완으로 임명한다.

“시켜줘, 나카스 명예 넘버원.”



사실... 안주 부문 나카스 남바완은 따로 있긴 했다. 여기도 기회가 되면 다뤄보는 걸로 (2018, 福岡)


최근에 영접한 '지콘'(而今)의 니고리자케. 정식 수입은 아니라도 직구가 활발해져 한국에서도 즐길 수 있었다. (2023,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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