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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 (사내추천제도 2)

다사다난했던 취업 스토리 10

by 참깨보꿈면

1. 경쟁 아닌 경쟁


우리 연구실 선배들 중에는 두산에너빌리티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계신 분들이 꽤 많다. 아무래도 전공이 잘 맞아서일까. 여하튼, 2025년에 접어들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선배들에게 사내 추천 채용 요청을 지속적으로 부탁드렸다. (제 7-8화를 참고하세유)


두산에너빌리티는 헤드헌터 채용으로 지원하긴 했지만, 그 즈음에 (내가 추천채용을 부탁했던 선배가 아닌) 두산 선배들이 연구실 졸업한 박사들을 추천채용하고자 연구실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연구실에서 그 선배들과는 좀 다른 주제의 연구를 해왔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과 큰 접점이 없었는데, 그래도 선배들한테 내가 회사에 가고싶다는 의지를 어필하고자 그 자리에 참석했다. 물론 두산의 러브콜을 받은 (2025년 2월 졸업예정이신) 두 명의 박사님들과 함께였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셔서 취업준비 기간이 길었던 나는 정말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많이 물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맡게 될 업무부터 시작해서 회사의 비전이라던가 정부 정책과의 연관성 등등... 직무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 전반적으로 내가 궁금했던 내용들을 정말 많이 여쭤봤다. 선배들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준다고 생각했고, 내가 두산에너빌리티에 가고싶다는 의지를 많이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의 시선은 온통 내 주변만을 향하고 있었다. 정말 단 하나의 질문도 나에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둘은 한화에서의 러브콜도 같이 받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한화가 아니라 두산을 선택해라조차도 아닌, 제발 우리 회사도 지원해줘에 가까운... 그런 애원이었달까.

보다못한 나는 적당히 마무리를 짓고 그 자리를 먼저 빠져나왔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가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그 선배들로부터 전화 한통이 왔다. 아주 심각한 이야기였다.

편의상 내가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한 직무를 A, 선배들이 하는 직무를 B라고 하겠다.

A 직무를 지원했던 나는 식사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B 직무를 하고싶다고 어필했다. 그 때 정말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전화 통화로 알게 되었다.

나를 B 직무로 지원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지만, 나는 그동안 연구실에서 선배들과 일해오지 않아서 이번에 졸업하는 다른 두 박사들을 B 직무로 뽑고 나는 전문성이 좀 더 떨어지는 C 직무를 지원하는 것으로 하면 안되겠냐는 것이다.

그말인 즉슨, 나는 이미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했고 다른 둘은 꼭 필요한 B 직무를 줘야 '지원이라도 해볼 것 같으니' 나는 같은 팀 내 다른 직무(C)를 주고 다른 둘을 B 직무로 추천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단칼에 거절했어야 하는 이야기였는데... 어영부영 나는 그렇다고 대답해 버렸다.

물론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선배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 잘못할 일도 아니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을 FIT한 자리에 뽑겠다는 거니 뭐 누가 뭐라 하겠나 싶지만, 그 자리에서 밀려난 당사자의 입장에서 속이 상하는 것이겠지.


여하튼 결론적으로는 다른 두 박사님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가게 되었고, 나 또한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지 않게 되었으니 나름 업보를 쌓은 거라고 해야겠다.


여하튼, 연구실에서 다른 박사님들과 취업경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마 내가 취업 시장에서 빌빌대고 있는 것을 보며 그 다른 두 박사님들도 열심히 도전하고자 한 것이겠지.

내가 간절한 만큼 간절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기엔 솔직히 내가 더 간절했던 것 같다. 나를 뽑았으면 갔을텐데! (ㅋㅋㅋㅋㅋ)


여하튼 이런 경쟁 아닌 경쟁 관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도 똑같이 드러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선배 또한, 나보다는 다른 두 박사님들께 관심이 많아보였다. 제일 먼저 지원하고 싶다고 연락도 드렸고, 무언가 발표들이 나올 때마다 나만 선배에게 먼저 전화해서 소식을 알렸는데도 항상 그 형님이 먼저 연락을 주는 상대는 다른 박사님이셨다. 이런 상황을 겪다 보니 나도 점점 지쳤던 것 같다.


심지어 처음 추천을 부탁드렸을 때도 다른 두 박사들이 졸업하면 그들을 채용하고 싶어서 애매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두산에서 이직하신 선배가 겨우 설득해서 나도 한 자리를 얻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이후 과정도 알만 하겠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텐데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깍두기가 되어 잘못된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고 내가 지원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에 입사하더라도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와 별개로, 입사지원 기회를 주신 선배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은 여전하다.)


추천 채용 과정에서 새삼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2. 첫 면접이 잡히다.


각설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추천 전형을 진행하기 위해서 나는 두산에너빌리티에 지원했던 지원서를 토대로 입사지원서 작성을 시작했다. 두산 원서를 낸 뒤 바로 시작했는데, 뭔가 내용이 비슷햇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꽤나 걸렸던 것 같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입사지원서는 크게 자기소개서경력사항 및 업적 두 개로 나뉘어 있었고,

자기소개서는 지원동기, 경쟁력 두 파트에 대해서 쓰는 것이었다.


나 포함 세 명이 같은 지원서를 쓰는 것이어서, 다른 박사님들과의 차별점이 꼭 드러나야 했다.

이게 참 웃긴데, 사실 입사지원서를 쓰는 자체가 (내가 모르는) 다른 지원자들과의 차별점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나는 단지 나의 강점을 어필하고, 회사가 원하는 나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가진 다른 사람과의 차별점이 무얼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고민은 결국,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와 연결되었다.

내 지도교수님의 기조 상, 해석과 실험 모든 분야에 전문성을 가져야 하며 어떤 설계 과정부터 결론까지를 종합하여 글로 작성하는(이게 논문이겠지) 능력이 있어야만 박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란 의왕 그렇듯, 모든 분야에 다 최고가 되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내 특출난 점은 단지 해석을 잘하고 실험을 정밀하게 하는 것을 넘어, 내 연구에 필요한 다양한 코드를 직접 만들어서 이를 해석 또는 실험과 통합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같이 해주신 분이 두산에서 한화로 이직한 그 선배인데, 그 선배와의 대화에서 내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할 수 있는 가장 FIT한 직무를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이를 정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결국 직무를 이해하고 필요한 역량을 이해하고 나니 자개소개서를 술술 써내려갈 수 있었다. 특히 관련 경력이나 내 경쟁력에 대한 내용 작성이 짜임새 있고 하나의 이야기글처럼 쓰였다.

하나도 잘 안보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개조식과 줄 글을 섞은 자소서를 썼다.


이렇게 작성한 입사지원서는 결국 1월 13일이 되어서야 선배에게 전달되었다.

제출 완!


그렇게 약 한달 뒤, 뜬금없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서류 합격?????

대박이었다! 물론 다른 두 박사님들도 함께 합격했지만, 나... 정말 붙은거야?? 면접 보는거야?????


나에게 찾아온 첫 실무 면접이었다!!!!!!!


정말.... 기다리면서 선배들한테 연락도 하고, 혹시 어떤 소식 있는지도 여쭤 보았지만 사실 인사팀과 실무하는 팀 자체가 분리되어 있다 보니까 아무 정보도 알수가 없더라.


그래서 이런 실무면접 메일 자체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참고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성면접이 없었다!)

면접은 총 40분 진행된다고 안내 받았고, R&D 직군의 경우 본인의 대표 경력 및 역량, 성과 소개하는 5분(!) 내외의 자유양식 PDF 제출이 필요했다.


그 와중 당황스러웠던 것은, 서류 합격 다음 날까지 면접 자료 제출이었던 것이다(!)

뭐 이후에 면접 날짜가 조정되어서, 2주 정도의 시간이 생기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면접 일정이 잡힌 나는 부랴부랴 면접 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편에서도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이 때 즘해서 타 회사의 면접도 계속 잡혔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격언이 무색하게 물밀듯 일정이 쏟아졌다. 노를 젓긴 하는데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은 맞겠지?하는 고민을 거의 매일 했다.


그렇게 나는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첫 면접을 보게 되었다.



번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회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회사이기 때문에, LIG Nex1,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같이 신원조회를 필수로 시행한다.

나는 연구실에서 국방과제를 많이 수행해와서 그런지 이런 신원조사 자체가 매우 익숙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테니 몇 자 내용을 적어보고자 한다.


신원조회는 방위산업 또는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기 위해 법률에서 정한 결격사유 확인을 위해 진행된다. 내가 알기로 방위산업체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비밀취급인가를 받아야하고, 이를 위해 범죄경력 등을 조회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연구과제 참여자는 본인 신원 조사 정도를 진행하지만, 방위산업체는 부모~조부모 정도까지의 신원조사를 함께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청한 신원조회는 국군방첩사령부에서 직접 수행하며, 신원진술서를 작성하고 회사/연구소에서 직접 공문으로 의뢰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는 직접 방첩사령부 홈페이지에서 신원진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조회 소요 기간은 천차만별인데, 나는 짧으면 한달, 길면 세 달 까지도 소요되는 것을 경험했다.


각설하고 그래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채용 과정은 아래와 같다.

서류 평가 → 실무 면접 → 임원 면접 → 신원조회, 레퍼런스 체크 → 채용 검진, 처우협의 → 입사 확정


이 다음에는 레퍼런스 체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2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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