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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돌고 돌아 삼성전자
(DX부문 삼성리서치)

다사다난했던 취업 스토리 13

by 참깨보꿈면

1. 또성전자?


내가 이야기했던가?

나는 삼성전자를 총 4회 지원했다.

학교 비공개 채용으로 진행했던 삼성전자 DS부문 TSP총괄부서(5화), 연구실 선배를 통해 추천 전형으로 진행햇던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6화),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한 같은 직무, 같은 부서(메모리사업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해볼 삼성전자 DX부문 삼성리서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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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025년 2월, 본인은 아직 열정있고 정정한 교수라고 생각하시는 나의 지도교수님은 은퇴를 하게 되셨다. 물론, 아직까지 학교에 남아계시고 일도 전혀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공식적으로는 만 65세를 넘어 '정교수'직에서는 은퇴를 하신 것이다. (현재는 명예특임교수로 계신다.)


그래서 2월 말 경에 연구실 졸업생들이 모두(라고 쓰고 대부분 이라고 읽는다) 모여 서울 중구 모처에서 호텔 볼룸을 대관하여 은퇴식을 했다. (선배들이 아닌 재학생들이 이걸 준비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여하튼 그 때, 졸업한 뒤 통 얼굴을 못 뵀던 여러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은퇴식을 참여하며 교수님의 은퇴 아닌 은퇴(?)를 축하드리기 보다는, 삼전 DS 메모리사업부 추천을 해주신 연구실 선배와, LG전자 채용을 도와주신 선배 두 분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굳이 더하자면 현대자동차에 가계신 여러 선배들께 잘 보이기 정도가 아니었을까.


나는 재학생 같은 졸업생으로, 잡일은 하는데 막상 졸업은 한... 그런 이상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어찌저찌 뒤쪽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좋아하고 따르던 선배들이 그 테이블에 앉아있기도 하셨고.

그 때 간만에 나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선배도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선배는 내가 입학할 때부터 유명했다. 어린 데도 불구하고 빡세다, 꼰대 같다. 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오는 선배셨는데, 어떤 날은 발표하던 후배 형에게 쌍욕을 날려벼리시는 ... 굉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시면서 연구실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다. 나도 유사한 일을 겪은 경험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잘못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손톱만큼은 들기는 하지만.... 여튼 연구실 한복판에서 '너 미쳤냐?'하는 샤우팅을 들을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내 결혼식 때 본인이 이래저래 왈가왈부 하셨던 것도 그렇고... 썩 기억이 좋은 선배는 아녔다.


각설하고, 그 선배와의 재회는 꽤나 재미있었다. 원래 대전에서 근무하시다가 한 2년전 쯤 서울로 올라와 근무중이셨고 슬하에 귀여운 딸도 하나 가지셨다. 그래서일까? 내가 알던 그 선배가 아닌 것 같았다. 좀더 유해지시기도 했고, 웃기도 잘 웃으시고, 그냥 일반적인 아저씨같아졌달까. 취업준비를 하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은 나는 만면에 가식적인 미소를 띠고 인사를 드렸다.


"형님 간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죠?
좋은 자리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저 요즘 취업준비중이거든요!"


그냥 인사치레처럼 건낸 말에 선배는 "어 안녕 오랜만이네." 라는 말씀 이후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은퇴식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즘, 갑자기 선배가 나를 불러냈다.


이유인 즉슨, 다니시는 회사에서 팀이 확장 계획이 있어서 10명 정도 채용 계획이 잡혀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채용 프로세스가 빨리 돌아가면 약 두 달안에 결과를 볼 수 있을거고, 그러면 4월 중 입사를 목표로 달려보자는... 내가 생각만 있으면 당장 다음 날 추천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이 형님이 다니고 계신 회사가 바로 삼성전자 DX부문의 삼성리서치이다.

사업부.PNG DX 부문은 더 많은 사업부가 있다.


삼성리서치는 일종의 선선행 조직이다. 다시 말해 선행보다 더 앞선 기술을 연구하는 그런 조직이랄까.

삼성전자 DX 부문의 5~10년 이후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그런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참고로, 개발 업무는 전혀 없고 전부다 '연구'만 하는 삼성의 최대 연구조직이라고 보면 되겠다. 모든 업무가 프로토타입 개발과 특허 출원/등록에서 마무리된다고 한다.


삼성리서치에 대해 블라인드나, 잡플래닛 같은 여러가지 채용플랫폼들을 찾다 보면 사실 삼성리서치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극강의 워라밸, 높은 성과급 보장, 서울 근무까지. 3박자를 이렇게나 잘 맞춘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AI 연구하시는 초창기 삼성리서치에 대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선배가 추천해준 부서, 그러니까 선배가 근무중인 부서는 AI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DS에서의 반도체기술, DX에서의 모바일 및 AI 기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부서(팀)였다. 쉽게 생각하면 다양한 가전의 신기술 연구를 하는 것이라 하면 되겠다. 이 때부터 고민이 많았다.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커리어에 대한 것이다. 삼성전자라는 네임밸류, 삼성전자의 어떤 안정성(?) 같은 것은 잠시 제쳐놓고, 나는 '가전제품'이라는 분야의 연구라는게 사실 상상이 안갔다(물론 지금도 잘 안간다). 배터리 연구를 하고, 반도체 연구를 하면 내가 기술적으로나, 지식으로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가전제품은 여러 기술의 집약체라고는 하지만 뭔가 내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됐다.


또 다른 고민은 부서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삼성리서치는 굉장히 고급 인력들을 모아놓은 부서이다. 박사급 인력이 대부분이고, 타 부서에서도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을 모아다가 만든 부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삼성성의 '팀' 구성원 수가 약 300명정도라고 하면, 삼성리서치는 약 1/3정도의 인력만으로 구성된 조금 작지만 고급인력들로만 구성된 곳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다보니 이 부서의 명확한 장단점이 있다(고 카더라.)

단점) 회사의 사정에 따라 인력 재배치(전배)를 시도한다. → 인건비가 너무 높다!

그 말인 즉슨, 고과에 따라서 내가 원치않는 수원 등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장점) 서초 본사와 가까워서, 여러 중임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본사의 부름을 받아 재미있는 일들을 할 가능성이 있다.

둘 다 흔치는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마지막 고민은 내 전공과의 직무적합성이다. 가전제품 연구다보니 사실 기계공학이라는 큰 범주에서 보았을 때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연구분야이지만, 내 세부전공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다. 선배 말로는 우리 연구실에서 가진 지식 정도라면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는 하셨지만... 나는 해석/코딩 등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벽한 실험 관련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다. 이건 1번과도 크게 연관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나의 새로운 신조인 "일단 붙고 고민하자"를 지키기 위해 나는 다시한번 삼성전자,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삼성리서치에 지원해보고자 했다.




2. 삼성리서치 채용 과정 상세.


삼성리서치의 채용 프로세스는 총 4개의 프로세스로 이뤄진다.


사전 미팅 → 1차 인터뷰 → 레퍼런스 체크 → 2차 인터뷰 → 결과 안내


삼성전자의 추천 전형은 DS부문 채용에 비해서 조금 더 간단했다. 내 이력서를 회사에 전달한 후 실무 부서에서 검토한 뒤 면접을 보고싶은 부서가 있으면 나에게 연락(사전미팅)이 오는 구조다. 지난 삼성전기(2화)와 유사한 프로세스라고 보면 되겠다. 사전 미팅에서는 연구팀 매칭을 하고 내 직무가 무엇인지 선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1차 인터뷰는 흔히 이야기하는 직무면접이고, 2차 인터뷰는 인성면접이다.


다른 회사와는 다르게 독특한 점은 삼성전자는 각 과정 별 합/불을 결정하지 않고, 전체 인터뷰 결과를 가지고 종합평가를 통해서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또한 특이한 점은 삼성리서치의 면접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회사 면접과는 다르게, 삼성리서치는 총 4회의 면접을 보게 된다. 직무면접 2회, 그리고 인성면접 2회이다. 각각 동료/임원 면접을 나눠서 보게 되므로 면접 시간도 엄청 길고 (면접 당 약 2시간 소요), 동료뿐만 아니라 임원면접(부서장급)도 각 면접마다 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매우 떨린다.


그리고 레퍼런스 체크의 경우는 화상이나 전화를 통해서 진행하지 않고, 서면으로 글을 작성해서 진행하게 된다. 내가 추천인으로 작성한 분들 모두의 후기에서, 글 적는 란이 너무 길어서 분량 채우기가 힘들었다고 하더라.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돌아와서, 따로 입사지원서를 쓰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준비해둔 이력서를 교수님 은퇴식 다음 날 바로 선배에게 전달했다. 선배가 육아휴직 중이셔서 채용 프로세스에 조금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고 알려 주셔서 마음을 비우고 기다렸는데 약 열흘 뒤, 삼성리서치로부터 사전 미팅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메일을 받았다.

사전미팅.PNG 사전 미팅이 잡혔다.

사전 미팅 전화를 기다리며 마치 삼성전기에서 광탈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들었다. 이번에는 YES맨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파트장님이 직접 하셨고, 본인 파트 소개와 어떤 일을 하는지 인원 구성은 어떤지와 같은 자세한 소개를 해주셨다. 나에 대한 자기소개도 부탁하셨다. 이력서를 기반으로 여러 질문을 하셨는데, 꽤나 무난했던 것 같다. 굉장히 친절하고, 상세하게 말씀해주셔서 아직도 그 목소리와 말투가 기억에 남는다.


소개를 마친 뒤,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해달라고 하셔서 나는 내가 고민하던 것들을 직접 여쭤 보았다. 사실 채용과정을 겪고난 뒤에 느낀 것이지만 내가 나를 숨겨서 채용을 진행해봤자 합격을 하더라도 어차피 추후에 선택을 안하게 될 가능성이 높더라. 그래서 무례하지 않게, 다만 내 뜻을 명확하게 담아 질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 워라밸 관련 질문

2) 직무적합성 관련 질문

3) 회사 안정성 질문


위에서 고민했던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여쭤보았고, 모두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나 워라밸 같은 질문은 부서 by 부서인 경우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선배가 이야기 해준 부분이나 파트장님이 이야기해준 부분이 유사해서 공교롭게도 더블체크가 되었다.


그렇게 오전에 사전 미팅을 마치고 오후 3시경, 바로 1차 인터뷰가 잡혔다. (얏호!)

1차인터뷰.PNG 직무면접!!! 벌써 세 번째 직무 면접이라 떨리지 않았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벌써 3회차 직무면접이라 정말 기분이 좋았다. 사람 일이 잘 풀리려면 이렇게 쭉쭉 풀릴 수 있는걸까? 2024년 9월 이후 탈락의 고배만을 마시다가, 갑작스레 지원한 대부분의 기업에서 면접을 보자고 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메일에서도 보다시피, 1차 인터뷰는 총 2시간을 진행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인터뷰 가능 날짜를 송부드리고 나니 날짜와 함께 포트폴리오 준비 요청을 받았다. 발표자료는 20분 분량의 PPT 또는 PDF로 준비하고 전날 오후까지 회신하여야 했다.

이번에도 발표자료는 삼성전자 CI를 기반으로 작성했다.

PT면접_장인중(연세대)_삼성리서치_제출본_페이지_01.jpg
PT면접_장인중(연세대)_삼성리서치_제출본_페이지_21.jpg
삼성리서치 직무면접 발표를 위한 포트폴리오 구성

내가 지금까지 봤던 직무면접 중에서, 삼성리서치 발표자료가 가장 만들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3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겠다.


1) 직무적합성 이슈: 앞서도 이야기했다시피, 내 전공과 정확히 들어맞는 부분이 타 직무대비 상대적으로 적어서인지 스토리 구성 자체가 꽤 난이도가 높았다. 어떻게든 이리저리 기워서 자료를 구성하기는 했는데...


2) 연구 직무 관련 이슈: 연구직무다보니 특정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기술을 Sensing 해봐야 하는데 이런 '제품'들은 생각보다 논문을 찾아보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기반기술 관련 내용들을 고민하다 보니, 내가 자료에서 추구하려 하는 내 기술의 "적용성"에 대한 부분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3) 발표 시간 이슈: 학회에서 발표를 해도 제일 긴 발표시간이 보통 15분인데, 여기서는 내가 진행했던 모든 내용들을 잘 엮어서 20분간의 발표를 진행해야 했다. 이게 참 딜레마인게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 시간을 채우기는 좋지만 너무 루즈해지고, 그렇다고 너무 간단하게 설명하기에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정말 많은 서로다른 주제들을 설명해야 하니 오히려 산만해지고.... 이걸 일관성있게 하는 작업이 참 어려웠다.


여하튼 총 20장의 발표자료를 구성해서 발표를 진행 했고, 실험을 위주로 하는 직무다보니 내가 가진 실험역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들과 연구내용을 위주로 자료 작성을 했다.


그렇게 1차 면접 당일, 나는 여느 때처럼 집에서 면접을 봤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스토리기는 한데, 면접 시간이 길다보니까 임원 면접 도중에 갑자기 우리 고양이들이 나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와서 부비적거리기도 하고, 카메라에 자꾸 등장하려고 하고.... 내가 아무 반응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니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 때는 정말 아찔했다. 차라리 동료면접이면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절대 아니다.), 하필 임원과 1:1 면접 중에 그런 일이 발생하니 순간 임원분께서 뭐라고 하는지도 잘 안들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LG에너지솔루션 면접 때에는 정장을 지양하라는, LG의 캠퍼스룩같은 비즈니스캐주얼을 요구했는데, 삼성은 그런 드레스코드 관련 언급이 없었다. 그래서 풀정장을 입고 면접을 봤다. 사실 비즈니스캐쥬얼을 입나 아니나 크게 상관이 없긴 하겠지만서도, 첫인상이 결정될 때 깔끔하고 포멀한 옷이 주는 인상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뜨는 IT기업들은 아니겠죠...? 정장입고오면 바로 탈락이란 이야기도 있더라.)


여하튼 나는 무사히 장장 두 시간의 긴 면접을 마쳤다. 직무면접에서 분위기 자체도 너무 좋았고, 임원분께서 내가 가진 역량을 회사 내 여러 조직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고 하셨다. 아마... 이쯤이면 면접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나는 면접을 본 바로 하루 뒤, 2차 면접 일정을 결정해달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대박!!!!!!!)

2차인터뷰.PNG 2차 인터뷰는 3) People 팀 인터뷰 (2:1), 60분 까지 포함이다.

그렇게나 고대하던 2차 면접, 인성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는 LG에너지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그리고 삼성전자 DX부문 삼성리서치까지, 총 3개의 인성 면접을 앞두게 되었다. 이 때즘 부터는 이제 어떤 회사를 가게 될지 두근거리는 동시에, 정말 현실적으로 내가 회사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정말 골치 아파질 미래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면서, 나는 인성면접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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