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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May 14. 2022

장미의 가시가 나를 찌를 때   

세상이 나를 향해 가시를 세울 때

장미를 다듬다 가시에 손을 찔린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가시 제거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줄기를 훑다가도 잠시 방심한 사이에 손끝을 찌르는 갑작스러운 아픔에 순간 나도 모르게 아야 큰소리를 지르며 오두방정을 떤다.  혼자 있을 때 요란한 주책은 상관없지만 수업 중에도 수강생들 앞에서 가끔씩 이러한 나의 무의식적 반응이 나와  낯이 뜨거웠던 적이 많다.  


꽃을 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내가 장미의 가시에 유독 반응이 큰 이유는 뭘까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 엄살이 많아서 그래 "라고 나를 곁에서 본 동생이 말했다.

내가 다른 이들에 비해 아픔에 대한 민감도가 큰 것이 '엄살'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되어버렸다.

엄살의 사전적 정의는 아픔이나 괴로움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실제보다 보태어서 나타냄이다.

나는 나의 아픔을 실제보다 보태어서 나타내는 그러한 엄살을 부리는 인간인 것일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성인이라면 웬만한 아픔에는 참거나 조용히 반응하지 나처럼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특히 장미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은  사소한 아픔에는 무던하게 지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소리를 내 버리고는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인간관계의 사소한 상처에도 이처럼 반응한다.

상대방이 가끔씩 보이는 무심한 반응에,  어느 누군가가 나를 향한 표정이 불편해 보일 때,  내가 내민 선의가 무시당할 때,  용기 내어 보낸  연락이 상대방은 귀찮아 보일 때,  나는 상대방이 내게 중요한 사람인데  상대방에게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느꼈을 때 , 등등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이러한 상황들에 나는 유달리 아파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 한 기분을 느낀다.



아름다운 장미가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듯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던 사람들이 나를 향해 가시를 세울 때 나는 방어하지 못하고 찌르면 그저 찔려버리고 만다.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거친 가시에 찔렸을 때는 쉽게 가시를 뽑아낼 수 있지만  좋은 사람의 웃는 얼굴을 하며  뒤에서  드러내는  잔잔한 가시들은  손에 박혔을 때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이곳저곳 박혀있어서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  최근 이러한 잔잔한 가시들이 몸 이곳저곳 박혀서 뽑아내지도 못하고 오래돼서 곪아버린 상처에 어쩌지를 못하고 그저 방치하고만 있다.


40살의 나는 이제 이러한 아픔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묻어가고 넘어가든 아님 단호하게 뽑아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느끼는   아픔이 그저 엄살인 것 일까.

내 몸에 박힌 수많은 가시가 거짓일까.

 아픔이 진실이 아니고 나의 나약한 마음에서  

파생된 허상이라면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 일까.


차라리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이 엄살이기를 바란다.


나는 장미의 가시에 수없이 찔리면서도 아직도 장미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찌르는 사소한 가시들이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것들이라면 나는 결국은 그것마저도 사랑할 것을 알기에  아픔이, 엄살이 오래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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