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가의 꽃 Apr 14. 2022

부모 바라기 자식들을  위한  카네이션

요즘 시즌의  꽃 업계는 카네이션 샘플 상품을 선보이느라 한창 분주하다.

꽃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큰 이벤트인 어버이날을 위해 얼어붙은 일 년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불효녀, 불효자들에게 또한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카네이션을 빌려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는 이 날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버이날의 카네이션에  관한 유래는 미국으로부터 왔다고 한다. 1904년경 시애틀에서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식들은 흰 카네이션을 본인의 가슴에,  어머님이 살아계신 자식들은 붉은 카네이션을 어머님의 가슴에 달아드리기 시작했고 점차  이 운동이 관습화 되며 카네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어머니의 날, 어버이날의 상징적인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느 설문조사에서는 어버이날 가장 받기 싫은 선물 1위가 카네이션이라는 결과가 있지만 아직은 그래도 카네이션이 없는 어버이날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성인이 된 우리는 어린 시절 색종이로 열심히 접은 카네이션을 엄마 아빠의 가슴에 달아주던 기억이, 그리고 그 시절  젊었던 우리 엄마 아빠의  행복해하던 미소를 떠올리며  지금도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안겨드린다. 비록 이제는 카네이션이 메인선물은 아닐지라도. 그리고 혹시나  카네이션을 놓치기라도 한 자식들은 괜한 죄책감이 휩싸이기도 한다.


난 아직 부모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부모가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과연 어떤 것인지는 어렴풋이 짐작만 한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주시는 사랑으로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항상  나에게 '넌 절대 너를 향한 나의 감정을 다 알 수 없다'라고 하시는 것만 보더라도 내가 부모가 되어보지 않는 한은 평생 부모님의 사랑은 다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것만은 안다.

자식들의 부모를 향한 사랑을,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부모 바라기 자식들의 처절함을 알고 있다.

우리 사회는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무한한 희생과 사랑은 자주 조명하지만 부모를 향해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부모 바라기 자식들은 그렇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부모는 절대적이고 광활한 우주 속 유일한 존재이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생기기 전에 이미 알아버린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선善의 모든 것이고 악惡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부모 그 자체가  아이들 세상 속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그 시절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랑 중 본인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면 아이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비교군도 없이  어떠한 모습의 부모라도  내 전부이자  내가 아는 세상 그 자체가 된다.

그러하기에  그 시절의 우리는 본능적으로 부모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부모가 나에게 건네주는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그 후 아이는 성장을 하고 어른이 되어가며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점차 나만의 기준을 확립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아이들은 뿌리 자체가 흔들리는듯한 혼란을 겪는다. 나의 모든 것이었던  부모의 모순을 깨닫고 부모가 나에게 남긴 주홍글씨와 같은 마음속 상처에 아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깊이 자리 잡아 부정할 수도 없는 부모를 향한 애정과 모순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랫동안 힘들어하고 어떤 이들은 거칠게 부모에게 반항도 한다.


성인이 되면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안다. 결국은 어떠한 것도  부모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모순덩어리인 부모라도, 나를 힘들게 했던 부모에게라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사랑받기를, 인정받기를 원한다.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어느 유명 스타가 부모가 자신을 인정해줬을 때 비로소 행복해졌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이처럼 우리 자식들은  타인의 인정도, 사랑도 아닌 한때 나의 전부였었던 부모에게서 인정받기를 죽을 때까지 갈망한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부모의 심정을 죽을 때까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들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기에 자식들의 부모를 향한 끊임없는 갈망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들이 잊고 지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마음의 표현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자식들이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카네이션을 구입한다.  

자식들은 살면서 무수히 많은 불효를 저지르고 부모님들은 매번 어김없이 자식들을 용서한다. 그렇기에 우리 자식들 또한 부모님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더라도 깊은 어딘가에 내려놓고 여전히 그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어버이날, 어버이가 아닌 부모 바라기 자식들을 위한 변명을  아직 부모가 되지 못한 혹은 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가 이렇게 감히 해보며, 세상의 모든 자식 바라기 부모님들께 용서와 양해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놓아 , 놓아, 놓아 그리고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