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
나는 이긴 경험보다 진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경쟁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살아가며 누군가와 겨뤄야 하는 상황 속에 놓이면 나는 으레 지는 편에 속했다. 무리 속에서는 중심보다는 주변의 인물이었고 상대방을 이겨보려고 혈안이 되었던 적도, 주목받기 위해 나서 본적도 크게 없다.
지금까지 꼭 이겨야겠다는 결심이 선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나는 패배하거나 이기더라도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지기만 하는, 이겨보겠다는 강단도 없는 내가 모자라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 같다는 기분을 늘 지울 수가 없었고 결국은 져주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는 합리화를 하며 먼저 지는 편에 손을 번쩍 들어줄 때도 많았다.
꽃을 하며 처음에는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물만 내놓으면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치열한 무한 경쟁 속에 던져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였었다.
이제는 철저히 내가 이 경쟁구도 속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한들 역시나 어떻게 해야 선두에 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꽃을 꽂을 때도 보통 메인 플라워가 있고 메인 꽃을 받쳐주는 서브 플라워가 있으며 그 메인 꽃과 서브 꽃 사이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필러 플라워가 있다.
메인 플라워는 크기가 크거나 화형이나 컬러가 아름다운 꽃이다. 서브 플라워는 주인공 꽃을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꽃들이다. 그리고 주인공과 조연들 사이를 더 조화롭고 풍요롭게 해주는 꽃이 필러 플라워이다.
꽃을 꽂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든 꽃이 각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꽃들이기에 하나하나 모두 동등하게 아름답고 소중하다.
하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메인 꽃에 묻혀, 서브 꽃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꽃에게까지는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종종 그렇게 눈길을 받지 못하는 꽃이 있다면 아마 그 꽃은 소국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꽃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메인 꽃을 정한다면 늘 지는 꽃이, 혹은 져주는 꽃이 있다면 그 꽃이 소국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꽃송이가 작은 국화 종류의 꽃들을 소국이라고 칭한다 소국은 시장에서 4계절 내내 볼 수 있다. 지금 같은 가을에는 더 많은 컬러와 종류의 소국을 만날 수 있다. 소국은 화려하지 않고 크기도 작다 보니 꽃꽂이를 할 때 서브 플라워 혹은 필러 플라워로 사용하거나 고가의 소위 고급 꽃바구니나 꽃다발에는 소국이 들어갈 경우 손님들이 싫어하실 때가 있어 사용하지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화과의 꽃들이 오래 볼 수 있고 튼튼한 편이라 꽃꽂이 속 메인 꽃과 서브 꽃이 시들어갈 때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꽃이 소국들이기도 하다.
키즈 클래스를 진행할 때, 아직 꽃의 종류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5살 언저리의 아이들마저 소국을 보며
"선생님 이 꽃은 싫어요 안 이뻐요 빼주세요"라고 외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 꽃이 얼마나 이쁘고 튼튼한 꽃인지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라며 소국에 대해 설명해주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화려한 장미를 먼저 집어 든다. 맨 마지막에 와서야 소국 몇 송이를 겨우 집어 든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와서 "선생님 이 꽃이 제일 오래가고 있어요 "라며 나에게 바구니 속에서 홀로 남아있는 소국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준다.
소국은 어떻게 해야 다른 꽃 들 사이에서 이길 수 있는지, 선두에 설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기지 않아도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결국은 끝까지 남아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그러한 꽃이다.
가끔 이 치열한 상황의 연속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 나만 뒤처지는 기분에 막막하기만 할 때
나는 소국을 떠올린다.
지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줄을 서더라도 결국은 끝까지 남아 있던 소국의 묵묵함을, 강인함을 그리고 아름다움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