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날들 속에서,
나는 단 한 번의 노크를 끝내 외면했다.
올 12월은 그 어느 해보다 숨 가쁩니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건 너무 싫은데,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여유 없이 종종거리며 사는 저를 보게 됩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곁눈질하며
할 일들을 해내고,
한 템포가 끝났다 싶으면
밀려 있던 업무를 다시 끌어옵니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창밖을 바라보면
회색빛 풍경은 이미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유리창 너머로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둘 번지기 시작합니다.
이쯤 되면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루의 다음 장면들이
이미 나를 재촉하고 있으니까요.
눈을 더 크게 뜨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마치 최후의 순간인 것처럼
온 신경을 쥐어짜 마감이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때였습니다. 똑, 똑, 똑, 똑.
문이 스르르 열리고
삼십 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밉니다.
말끔한 정장 차림,
잠시 망설이다가 그가 입을 엽니다.
"안녕하세요. 김해에서 올라온 ○○회사 인턴사원입니다.
연금보험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많이 바쁩니다."
"보험을 들어달라는 건 아니고요,
제가 드리는 말씀 딱 1분만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정말 딱 1분만요."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내게 소중한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
어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 마음을 가능한 한 빠르게 전하고 싶어
손끝으로는 키보드를 더 세게 두드렸고,
시선은 끝내 모니터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잠시 서 있다가 힘없이 돌아섭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 인사와 함께
그의 눈과 잠시 마주쳤습니다.
삶의 피로가 고스란히 담긴 눈빛,
조금 웅크린 듯한 뒷모습.
아, 보지 말 걸 그랬습니다.
그 순간부터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불편함을 애써 밀어내기 위해
다시 일에 몰두했습니다.
할 일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루는 여전히 분주했고
해야 할 일들은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계속 거슬렸습니다.
따뜻한 물이 흐르는 싱크대 앞에서도,
평범한 저녁을 마친 뒤에도,
문득문득 아까의 눈빛이 스쳐 갔습니다.
나는 바빴고,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백 가지 이유를 늘어놓아 보아도
그 불편함은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오래된 시집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
나는 불편함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님>
책장을 덮지 못한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불편함이 아니라,
너무 정확한 이름을 들은 기분이었습니다.
애써 합리화하며 나를 지켰던 순간이,
내 시간을 지켜냈다고 안도했던 순간이,
그래서 슬쩍 미소 지었던 기쁨이
나만을 위한 이기심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내가 뿌리는 함박눈이
누구를 더 춥게 만드는지 미처 돌아보지 못한 채,
나만 따뜻하면 된다고 믿었던 기쁨.
딱 1분만 들어달라고 했는데,
정말 딱 1분이었을 텐데,
나는 그 슬픔을 매몰차게 밀어냈습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정체는
그날의 상황도,
그 사람도 아니라
내 안의 이기적인 기쁨이었습니다.
'따뜻하게 살아야지' 늘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느새 차가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나를 발견할 때,
종종 스스로에게 실망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눈이 그친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