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이맘때쯤 내리는 비는
가을의 절정을 탐닉하는 비인지,
겨울을 재촉하는 비인지,
조금은 애매하고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뿌연 먼지를 씻어내는 동시에
가을빛을 한층 짙게 물들이지만,
위태롭게 매달린 나뭇잎을 떨구며
가장 쓸쓸한 계절을 앞당기기도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붉게 타오르던 단풍은
이 비에 이내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이 가을도 끝자락을 향해 가나 봅니다.
호흡을 크게 들이쉬어 봅니다.
물기를 머금은 알싸한 공기가
천천히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입니다.
그 속에는
보스턴의 빨간 벽돌 길이 있고,
시애틀의 축축한 도심이 있으며,
가을날 우이령의 고요한 오솔길이 있습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내리는 비를
실내에서 바라보는 것과
그 속으로 들어가 흠뻑 젖는 일은
전혀 다른 감각입니다.
창밖을 흐릿하게 적시는 풍경을
따뜻한 실내에서 지켜보는 일과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빗방울을 온몸에 묻히는 일.
그 둘 모두가
'11월 비'의 기억을 데려다줍니다.
이 비가 그치면
창문 밖 나무의 잎들은
어쩌면 흙바닥 위에 누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들이마신
알싸한 공기의 맛과
가을을 품은 냄새는
'11월 비'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아늑함에 기대어 비를 바라보는 지금처럼,
가을색을 느끼는 이 행복처럼,
바람의 온도와 낙엽의 냄새가
이 비에 고요히 담겨
다음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