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코너를 지나쳐
당신이라는 계절 앞에 서기까지
세상의 속도가 빠를수록
사람들은 '검증된 것'에 매달린다.
서점의 가장 목 좋은 곳에 쌓인 베스트셀러 코너는
실패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안전한 선택지다.
하지만 나는 습관처럼 그 화려한 매대를 지나쳐
책장의 구석진 모퉁이로 향한다.
나에게 좋은 책이란
타인의 추천사가 화려한 책이 아니다.
먼지 앉은 책장 사이에서 유독 혼자 빛을 발하거나,
우연히 펼쳐 든 한 페이지가
내 온 정신을 꽉 붙들어 매는 책.
수많은 책의 홍수 속에서
오직 나의 직관과 끌림으로 건져 올린 책만이
나의 '진짜'가 된다.
그날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건
은은한 살구빛 표지였다.
아니, 정확히는 <너라는 계절>이라는 제목이
내 가슴에 툭, 하고 내려앉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마주친 문장들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웃게 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일상을 바라보는 게 재미가 있어서
내게 미소를 선물해주는, 그런 사람.
-김지훈 이야기 산문집 <너라는 계절> 중
그 문장을 읽으며
내가 책을 고르는 방식은 사실
내가 사람을 곁에 두는 방식과 참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화려한 유머를 장착하거나,
대단한 성취를 뽐내야 한다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관계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전시된 모습'에 있지 않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대화가 끊이지 않는 편안함,
서로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사려 깊음,
그리고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고유한 결.
베스트셀러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화려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책장 구석에서도 묵묵히 제 빛을 내는 책처럼,
자신의 일상을 단단하게 일궈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의 일상은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읽는 재미가 있다.
그 사람의 삶이라는 계절 속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살구빛으로 물든다.
책의 홍수 속에서 내 책을 알아보듯,
사람의 홍수 속에서도
나는 그런 '내 사람'을 알아보고 싶다.
겉표지의 화려함에 속지 않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정성껏 넘겨보며
그 속의 진심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내가 세상을 여행하며
나만의 계절을 수집하는 법이다.
오늘도 나는 붐비는 코너를 지나
나만의 빛을 발하는 그 문장,
혹은 그 사람 앞에 잠시 멈춰 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