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밤

by 보라


핀치오 언덕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아름답다 하여

몇 시간 전 지나왔던 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이번엔 스페인 광장을 내려다보는 높은 지점.

조금이라도 전망이 트인 곳이라면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들떠 있었고,

모두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걸으면 핀치오 언덕.

오후의 태양이 마지막 불꽃을 터뜨릴 무대가

곧 펼쳐질 곳입니다.


하지만 언덕에 닿기도 전에

태양은 서둘러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붉게 번지는 긴 띠와,

여운으로 물드는 로마,

그리고 로마처럼 상기된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언덕 아래 포폴로 광장은 가장 따뜻한 색을 머금고,

일몰을 바라보던 나무들도 은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시들고 하늘이 밤을 향해 기울 무렵,

발걸음을 바티칸 시티 성 베드로 성당 쪽으로 돌렸습니다.


티베르 강, 지금의 테베레 강은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지방을 거쳐 로마로 흘러옵니다.


수면 위에 노랗고 붉은 불빛이 번지고,

잔잔한 물결을 따라 둥글게 퍼졌다가

아른아른 꼬리를 감추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숨 쉬는 듯했습니다.






문득 2년 전 겨울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산탄젤로 성은 로마 특유의 겨울 햇살 아래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고,

성 지붕 위 대천사 미카엘은

마치 "다시 만나자" 하고 손짓하는 듯 서 있었습니다.


오늘 다시 만난 미카엘은

더 고운 빛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마 나도 그 사이 조금은 더 고운 표정을

짓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이 점점 눈앞에 커집니다.

불빛을 입은 성당은

까만 밤 속 한 송이 꽃처럼 놓여 있었고,


햇살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마련한 축제 같아 숨이 벅차올랐습니다.


밤바람은 은은했고,

그 빛과 바람보다 더 좋은 풍경은

로마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까만 하늘에 별이 박히고,

별처럼 자신을 단장하는 시간이

로마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

로마도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아름다운 테베레 강둑을 따라 호텔로 돌아오는 길.


오늘 밤,

로마에게 건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에서는 모든 것에 취하고 싶었습니다.

풍경과 사람, 강물에 비친 불빛까지도.


낯선 이방인조차 기꺼이 품어주는

이 도시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빛깔로 부드럽게 물들어갔습니다.


온 세상이 달콤하게 일렁이는,

완벽한 취기의

로마의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