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에 남은 1993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내 인생의 책이다.
나는 지금도 도스토옙스키를 인류 최고의 문호라 믿고 존경한다.
『죄와 벌』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쩌자고 기말고사 기간에 이 책을 샀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시험공부는 뒷전이었고, 나는 소설 속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책장을 덮으면 내가 다니는 곳곳에 라스콜리니코프가 나타났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뒷골목 풍경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중압감이었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내 마음에 새겨졌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늦지 않게 그를 알게 된 것이 감사했다.
그렇게 『죄와 벌』은 내 인생의 책이 되었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그 책이 떠올랐다.
끝내 다 읽지 못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잠시 미뤄 두고,
책장 한구석에서 『죄와 벌』을 다시 꺼내 들었다.
책 속에는 오래된 책갈피가 고이 끼워져 있었다.
1993년, ‘대한서림’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종이 책갈피.
책값은 7,000원.
고등학생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을 텐데,
나는 문제집 대신 도스토옙스키를 선택했다.
32년이 지난 지금, 그 선택은 참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