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 앞에서

by 보라


잣나무는 거대한 레드우드처럼 곧게 하늘로 뻗어 있었다.


텐트 너머로 펼쳐진 황금빛 들녘은
마치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듯했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저수지가 고요하게 감싸고 있었다.

잣나무와 참나무, 낙엽송 사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 때마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고,
잠들기 전 마음속 고민들도
어느새 잎사귀 사이로 흘러 사라진 듯했다.

아침이 다시 찾아왔다.
오늘은 자동차에 싣고 온 자전거를 꺼내
섬길을 달려볼 생각이다.
섬 사이를 잇는 석모대교 덕분에
이 섬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연기 모락이는 밥 짓는 소리,
가을바람에 출렁이는 황금빛 들판,
저수지에 비치는 햇살까지.


모든 것이 일상의 소음을 잊게 하고,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을 마음에 채워준다.

덕산여가캠핑장의 잣나무 그늘 아래,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나는 오래전 잃어버린 호흡을 되찾는다.

석모도 앞에서,
잠시 나를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