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하늘이 높아졌고,
바람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가을빛이 묻은 햇살이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휴일 아침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뜹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재생하지요.
『나우 이즈 굿(Now is Good)』.
배우 다코타 패닝 하면
「우주 전쟁」에서 아빠 톰 크루즈를 따라다니며
공포에 질린 눈빛을 보이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후 많은 작품을 했지만,
성장한 그녀가 연기한 『나우 이즈 굿』은
다코타 패닝이 진정한 배우로 자리 잡았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백혈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소녀 테사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겉으로 보면 흔한 소재에,
예상 가능한 결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시선,
그리고 귓가를 스치는 부드러운 영국식 발음이
묘하게 오래 남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테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순간이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며,
모든 순간들이 모여 생명이 된다."
테사는 우리 곁에 머무는 지금 이 순간이 곧 삶이며,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삶의 무게를 바꾼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짧은 생을 살다 간 소녀'로 기억되는 대신,
테사는 자신이 남긴 장면들로 기억됩니다.
아담의 넓은 등에 기대어 달리던 해변의 바람,
별빛을 올려다보던 눈빛,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던 가을날의 노을,
그리고
테사를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던 아담의 얼굴.
삶은 어쩌면,
그런 장면들을
어떤 방식으로 간직하느냐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순간을 행복한 기억으로 채우고,
서로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기는 일.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닐까요.
가을 햇살이 눈부신 아침,
『나우 이즈 굿』을 보고 또 보고,
눈물짓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드는
정체 모를 감정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늘,
내게 꼭 맞는 기억으로 살아갈
섭씨 20도의 토요일.
가을이 물든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