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투명한 수채화

by 보라
어느 비 오는 날,
강인원 작사·작곡의 노래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자동차 라디오를 통해 흘러 나왔습니다.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고,

아직 여린 나뭇잎들이 바람에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몸을 흔듭니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더니, 곧 쏟아질 듯합니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시설물도, 나무도, 사람도,

거칠게 감싸 지나갑니다.


하지만 차 안에 있는 저는 온전히 안전합니다.

핸들을 움켜쥔 채,

유리창 너머로 거리를 바라봅니다.

바람이 스치고 간 세상 위로 스멀스멀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차창 위로 드디어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톡, 톡, 톡...


작은 빗방울 하나하나가 유리 위에 부딪히며

투명한 소리를 냅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수채화 같습니다.

빗줄기마다 잠시 스치는 공기와 함께,

거리 위의 풍경은 은은한 물감으로 덧칠합니다.


라디오를 타고 온

‘비 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노랫말 속 감정이

빗방울 하나하나가 되어 마치 음표처럼 느껴집니다.


나도 모르게, 차창 밖 풍경과 음악 속 감정을

천천히 음미합니다.


톡, 톡, 톡...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잠시 멈춘 듯합니다.


빗속을 걷는 사람들,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

반짝이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모든 것이 마치 투명한 물감 속에서 녹아들어

서로 섞이는 듯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순간순간, 차 안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조차

나만의 캔버스가 됩니다.


어느새 빗속 풍경은 마음속 화폭에 스며들어

오래도록 남을 작은 기억이 됩니다.


손끝으로 만질 수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선명히 느껴지는,

부드럽고 맑은 색채들.


비가 그친 뒤에도,

그 투명한 색과 소리는 마음속에서 잔잔히 울립니다.


언젠가 또 비가 내리는 날,

다시 같은 풍경 앞에 서면

오늘 느낀 감정과 색이,

지난날의 추억과 함께 떠오를 것입니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감정을 만들고,

감정이 다시 풍경을 채색합니다.


오늘, 거리 위에 잠시 머문 이 순간을

내 마음속 수채화로 담습니다.


오래도록,

그 맑고 투명한 색을 기억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