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평생 나라는 사람을 잘 팔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점점 더 좋은 마케터가 되어 나를 팔다 못해 부모가 되어서도 내 자식을 잘 팔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게 된다.
내가 그동안 왜 썩 잘 팔리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서 비교적 잘 팔리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더 깊게는 내 가치에 대해. 몇 년 전의 나와 비교하여 실력 좋은 마케터가 됐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빛을 보는건가?
이 좁디 좁은 사회에서 관심을 받으며 늘 걱정한다. 고등학교 때의 한 친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인기를 그 때나 지금이나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의 나를 보며 다른 사람들도 이와 같이 생각할까 두렵다. 그래서 내 가치를 높이고자, 더 가치 높은 사람이 되려 부던히 노력중이다.
나는 스스로가 가치 높은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급격히 우울해진다. 이 과정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내 가치를 판단하려 노력하지 않으나 저절로 판단되어진다. 우울하고 싶지 않으나 우울해진다.
나는 종종 이런 나를 무기력증이라고 판단내린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 이런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동기는 있되 도구가 없다. 재미라는 아주 강력한 도구가 있으나, 모든 동기가 해당 도구를 사용할 순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 재미 없는 일이 관성을 가지고 속도가 붙기 전까지 여러 단계의 도구를 사용해야한다. 그러면서 여러 단계의 장벽을 마주친다.
동기가 있으나 도구는 없으니 장벽에 부딪히면 늘 그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다. 그럴 경우, 나 스스로를 무기력증이라 판단, 급격히 우울해진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장벽을 제거하는 거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고 앉아서 아침밥을 먹는 것까지도 마쳤는데 기숙사 밖을 나오는 행위 자체가 장벽에 해당한다면 아침마다 나를 기숙사에서 데리고 나서줄 누군가를 찾는다. 나는 아침공부라는 동기가 있고 의지도 있으나 기숙사라는 장벽을 스스로 넘지 못하므로 누군가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그 누군가에 대한 감사함, 미안함과 같은 감정들 역시도 도구가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