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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바냐 Aug 13. 2015

양파 뽑던 날

from 신기리

  여름이 오느라고 몰려온 건조한 공기가 대기를 가득 채운 더운 날이었습니다. 햇빛은 눈부시고, 들풀을 빻고 흙을 뿌려 소꿉놀이를 하는 것도 싫증이 났습니다. 과자는 다 먹었고, 아까 같이 술래잡기를 하던 동생은 어디로 갔는지 어린 나는 혼자 밭두렁 근처에서 내 앉은 키 만한 양파꽃대를 휘두르면서 흐르지 않는 시간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농사 지으시는 할머니의 일손을 돕기 위해 부모님과 고모들은 그늘도 없는 너른 밭에서 양파를 수확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내 눈에는 어른들은 재미없는 일들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일 하고 있는 엄마의 등에 매달려 언제 집에 가냐고 몇 번이나 물었는지 모릅니다.


"니 저 쪽에 굴뚝 연기 보이나? 저 연기 색깔이 머꼬?"


  고모는 내 옆으로 와서 페트병에 든 반쯤 녹은 얼음물을 마시며 저 멀리 공장 굴뚝을 가리켰습니다. 동네 입구에 있는 공장의 굴뚝에서 우람하게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색깔은 하늘의 구름과 같은 색이었습니다.


"흰색이지"


  "맞다. 근데 니 그거 아나? 저래 하얀색으로 보이는데, 저기에 니 코 갖다 대면 코가 까맣게 된데이"


  중참이 담긴 보따리에 페트병을 다시 넣어두고 고모는 일을 잠시 멈춘 자리로 돌아갔고, 저는 고모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한참을 멍하니 굴뚝만 바라보았습니다. 휘두르느라 이리저리 꺾여 축쳐진 양파꽃대를 버리고 고모에게 이유를 물으러 뛰어 갔습니다.


  시간은 달팽이처럼 하염없이 천천히 흘렀습니다. 어른들은 가끔 알 수 없는 말을 했지요. 어린 나의 대부분의 시간은 어른들을 기다리는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은 하늘에 닿을 만큼이나 멀고 먼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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