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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n 10. 2019

질문도 적당히

지난 파리일기 


내 친구 중에 질문이 많은 애가 있다.


어느 정도냐면 대화의 시작이 아이 해브 어 퀘스쳔 일 정도다. 얘는 궁금하면 질문을 한다. 뭐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워낙에 질문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라 얘가 신기했다. 같이 수업을 들어도 뭐가 궁금하면 질문. 갑자기 질문. 또 질문. 어쨌거나 매번 질문이다. 내가 넌 뭐 그렇게 질문이 많냐고 한 번은 놀렸더니 얘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며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러곤 또 아이 해브 어 퀘스쳔 이러면서 또 질문을 했다.


얘가 하는 질문들 중엔 내가 간단히 답을 해줄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들고 있다. 그럼 나는 그 자리에서 곰곰히 생각하거나 일단 대답을 할 수 없어서 에이 몰라 하고 넘기는데, 문제는 그러고 나서 나중에 꼭 다시 생각이 난다는 거다. 얘는 참 간단한 애다.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해버리고 나니 질질 끌리듯 남는 게 없다.


반대로 나는 질문을 담아두고 사는 편이다. 내가 질문을 해야 한다면 그건 정말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나는 아 그런갑다, 하고 주어진 상황을 그냥 넘기고 마는 편이다. 이런 자세는 단기적으론 별로 이득이 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론 참 편한 처세술이다.


일단 단기적으론 내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니까 가끔은 끙끙 앓고 산다. 또는 나중에 가서 내가 그렇다고 믿었던 것이 아닌 걸 발견하게 될 때 약간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던가. 그런데 장기적으론 편할 수 있다. 너무 질문을 많이 하고 살면 그것만큼 피곤한 것도 없다. 물론 내 친구가 하는 질문들은 예컨대 인간 존재에 관한/거대한/무지막지한 질문들이 아니기 때문에 얘기가 다르지만, 아무튼 질문이 많은 건 흔히 말하는 인생수업 책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가끔은 그냥 두고 살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같은 질문들엔 답이 없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노가 아닐 뿐더러 아쉽게도 상황과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으니까. 단정적인 답이 없을 바에야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그렇다고 아예 무시하고 살자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얕게만 질문을 하면 된다. 무게 잡지 않고.


파리에 처음 왔을 땐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댔다. 파리에서 보내는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어 보자면서. 그 의미를 찾겠다고 박물관에도 다녀보고, 책도 읽어보고, 그다지 반갑지 않은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나가보고 하여간 그닥 익숙지 않은 일들을 꾸역꾸역 해대면서 날 재촉해댔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나고선 시간과 장소가 의식되지 않는 내 가장 편한 순간이 의미를 만든단 생각에 이르렀다. 그 질문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비로소 그토록 내가 찾아헤맸던 의미가 분명해지는 순간이구나. 그 다음부턴 내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가 나여서 참 다행인 건 내가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는 편이라서다. 물론 2년 전 한국에서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한 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김보라를 말렸더라면 좋았을 일이지만, 우리 엄마 말마따나 그것도 ‘언젠간 쓸모가 있을 것’이라 믿고 살기로 했다. 그래야 편하니까. 왜 그랬을까, 그 때 다른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은 접어두기로 했다. 질문할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혁명가도 못 되고 그렇다고 기죽어 살기도 싫기 때문에 둘 사이 스펙트럼 중 어디 적당한 곳에 자리 깔고 내 마음이 편한 일을 하고 살기로 결정했다. 말하고 보니 좀 보잘 것 없는 것 같은데, 그 자리에서야 말로 비로소 내가 답도 없는 질문들에 짓눌리지 않고 살 것 같다. 약간 무거운 질문들일랑 잘근잘근 씹어서 ‘내일 뭐 하지’, ‘밥 뭐 먹지’ 같은 질문들로 분해해버리고, 오늘 일만 걱정하며 사는 걸로. 질문도 적당히, 스스로 괴롭히는 것도 적당히, 자기혁명도 적당히. 배꼽에 짓눌려 배 곯는 일도 적당히. 인생 걱정하다가 오늘 밥 못 먹으면 안 되니까!



ps. 사진은 뤽상부르 공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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