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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ccoli pen Oct 22. 2021

엄마 가면 (다섯 살, 12월)

여섯 살의 스케치북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깔깔거리는 딸아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놀라서 머리에 쓰면 위험하다고 말하며 달려와 다급히 머리에서 비닐을 벗겨보니 투명한 봉지에 그림이 그려 있었다. 머리에 모자처럼 쓰면 엄마로 변신하는 ‘엄마 가면’이라고 아이가 설명해 주었다.

비닐에 그림을 그려서 가면을 만들 생각을 했다니. 아이의 설명을 듣고 바닥에 함께 앉아 깔깔 웃었지만, 괜스레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만들어 쓰고 엄마로 변신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혹시 다른 일을 하느라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도 가면을 쓰면 엄마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는 이제 열한 살이 되었다. 멋진 반바지가 입고 싶은 초등학교 4학년의 아이는 친구들이 너무 소중하다. 예쁜 우정 팔찌를 사기 위해 문방구에 몰려다니고, 프로필에는 친구들과 함께 찍은 셀카 사진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이따금 속상한 일이 있으면 파묻혀서 울 수 있는 엄마 품이 필요하다. 아이는 지금도 엄마 가면이 필요할까. 앞으로도 가끔 엄마 가면을 머리에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잘 살아야겠다.



"엄마로 변신할 수 있는 매직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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