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의 스케치북
아이가 네 살이 될 무렵 최고의 스타는 겨울 왕국의 엘사였다. 엘사 드레스를 갖춰 입은 꼬마 공주님들은 동네 어디에서나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놀이터의 하늘색 물결은 계절과 날씨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대유행이었다.
딸아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긴 했어도 특별히 드레스가 갖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때는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던 남자친구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검은색 양말을 찾아 신고 다니기도 했다. 여자아이니까 드레스를 사주면 좋아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던 나도 이 대세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엘사 드레스를 손에 들고 퇴근했다.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듯한 내 눈치를 보며 회사 동료가 사줬다고 둘러대며 딸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남편의 기대에 비해 크게 기뻐하는 내색 없이 드레스를 받아들었지만, 다음날이 되자 바로 그 옷을 입고 놀이터로 출동했다.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하늘색 치맛자락이 바람에 폴폴 날렸다.
온종일 신나게 놀던 아이가 집에 가는 길에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아빠가 참 고맙다.” 그 이후로 2년 넘게 엘사 드레스는 딸아이의 놀이터 유니폼이 되어주었다. 아이가 했던 말을 전해 듣고 남편이 너무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