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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ccoli pen Oct 22. 2021

밤과 낮 (다섯 살, 12월)

여섯 살의 스케치북

이 작품의 제목은 ‘밤과 낮’이다. 어두운 밤의 기운이 방안에 가득하지만, 밖에는 햇님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아이는 아직 혼자 잠을 자지 않는다. 처음에는 외동이라서 그런 것일까, 무서운 꿈을 꾸기라도 한 것일까 싶은 안쓰러운 마음에 같이 재웠다. 그런데 4학년이 된 지금도 혼자 자려고 하지 않아서 이유가 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이 아이에게 ‘밤’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나는 어떻게 혼자 자기 시작한 것인지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처음 엄마와 떨어져서 잠을 자게 되었던 그날 밤 추억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긴장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채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결국 무시무시한 마녀에게 쫓겨 혼자 정신없이 도망 다니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땀을 흘리며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간신히 다시 잠을 청했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잠에 들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 따로 자는 것이 무섭고 힘드니 조금 더 옆에서 자고 싶다고 엄마에게 왜 말하지 못했을까.

어른이 된 지금도 사실 혼자 잠자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옆에 남편이나 아이 없이 잠을 자게 되는 날이 있는데 편하기보다 허전하고, 적막함과 고요함이 짓누르는 무게감이 버거워서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내 숨소리만 들리는 방에 혼자 누워 있으면 텅 빈 천장 바탕에 새겨지는 이미지들이 낯설고 두렵다. 내 나이 여섯 살의 그날 밤 꾸었던 꿈이 지금도 생생한 것을 보면 이것도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어린이집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아기들은 하루가 끝나고  밤이 지나면 그 다음 날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아기들의 잠투정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의 주인공 데이빗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와 다시 만나 함께 하는 단 하루를 선물 받게 된다. 소중하고 달콤한 하루를 모두 보내버린 데이빗에게 그날 밤 잠이 드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맙소사. 생각이 이곳까지 도착해 버리고 나니 딸아이를 혼자 재우기 시작하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결국 나는 아이가 스스로 제안할 때까지 기다리게 되겠구나 싶어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개인차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겠지.'합리화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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