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의 스케치북
여느 날처럼 딸아이는 방에 뒹굴고 있는 스케치북은 놔두고 굳이 재활용하려고 모아놓은 상자를 하나 꺼내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었다. 신나게 포도 덩굴을 그리다가 갑자기 색을 파란색으로 바꾸더니 그린 그림.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해파리를 표현한 것인가 싶어서 물으니 ‘공중그네’라고 대답을 했다.
잠깐 의아했다가 문득 떠올랐던 기억. 그해 여름, 우리 가족은 베트남에 있는 한 리조트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리조트 안에 다양한 놀이 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찾았는데, 생각보다 딸아이가 탑승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개 없었다. 신장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가 130cm는 넘어야 탈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여섯 살 또래 중에서도 키가 작은 편이었던 아이는 입구에서 좌절하고 돌아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문제의 공중그네. 키가 좀 더 커야 탈 수 있는 것이라고 여러 번 설명해 주었으나, 너무 간절하게 타고 싶어 해서 어떨 수 없이 일단 줄에 합류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직원이 한눈에도 작은 딸아이를 바로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No!”라고 차갑고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베트남 언니에게 마음이 상해 버린 아이는 “타고 싶지 않아졌어!”라고 내뱉고는 서 있던 줄에서 나와버렸다. 위험하니까 못 타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이미 상처가 나서 팔짱을 끼고 있는 여섯 살의 자존심은 회복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갑자기 결연한 눈빛으로 덧붙였다. “빨리 키 커서 꼭 다시 거기로 공중그네를 타러 갈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인 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몇년이 지나, 지금은 130cm를 훌쩍 넘은 아이의 키. 지금도 그 공중그네가 타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