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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ccoli pen Oct 22. 2021

벤치에 수놓은 가을 (네 살, 11월)

여섯 살의 스케치북

나뭇잎과 산수유 열매, 놀이터 흙으로 벤치에 수놓은 아이의 가을. 나무들과 계절이 함께 빚어낸 설치미술작품이다.



놀이터는 미끄럼틀과 그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의 햇살 같은 웃음소리를 감싸 안아주는 놀이터의 터줏대감, 나무들이 있다.

봄이 되면 나무들은 색색의 고운 꽃들을 피운다. 향기를 머금고 나무 밑에 떨어진 꽃잎들을 아이들은 두 손 가득 모은다. 아이들이 내보내는 숨결에 한 번 더 춤을 추는 꽃잎들. 마법과도 같은 그 광경은 핸드폰 카메라로 담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여름이 되면 나무 여기저기에 앉아 울고 있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넘는다. 채집통을 손에 든 작은 사냥꾼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저녁 무렵 뽀얀 종아리를 노리는 풀숲의 모기들은 아이들의 귀갓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뜨거운 공기가 서늘한 바람으로 바뀌는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남아 있는 자신의 것들을 모두 내어준다. 빨갛게 익은 산수유 열매들이 작은 손가락들을 유혹한다. 나뭇잎들은 꽃처럼 피어오르다가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낙엽은 밟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길을 가다가 잘 마른 낙엽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엄마와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는지 시합하는 놀이는 딸아이가 참 좋아하는 놀이다. 겨울이 되어 놀이터에 아이들의 발길이 뜸해질 때면 나무들도 눈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 다시 놀이터에 작은 발소리들이 하나둘 들려오는 꿈을 꾸며 기다리다가 봄이 돌아오면 연둣빛 기지개를 피겠지.

아이들을 지켜보고 키워주는 나무들은 놀이터의 다정한 어른이다.


"낙엽 밟기 놀이는

늘 내가 이겨서 더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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