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방문은 출국 비행기에서부터 비염이 악화돼 고생을 했다. 전과 다르게 시차 적응도 안 돼서 현지 체류기간 내내 피로가 누적됐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기대만큼 즐기지 못했고 일찍부터 귀국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보름간의 일정을 마치고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내 좌석은 통로 쪽 엑스트라 레그룸이었다. 추가비용을 내고 예약한 자리였다. 승무원이 다가와 내 좌석이 비상구 바로 옆이라서 만약의 경우, 다른 승객의 탈출을 자기들과 함께 도와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은 바라지 않지만 혹여 그런 상황이 되면 협조하겠다는 쿨한 대답이 절로 나왔다. 다리를 쭉 뻗고 레그룸에 앉으니 비로소 귀국한다는 실감이 났다. 알레르기 약도 먹었겠다 이제 영화나 보다가 좀 자고나면 인천 공항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통로 건너 옆자리에서 짐을 올리는 사람이 보였다. 어린 아이 둘을 앞세운 엄마였다. 아기 엄마의 용모가 눈길을 끌었다. 서글서글하고 둥근 눈망울이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의 스포츠 웨어가 늘씬한 키에 세련됨을 더해 주었다. 그는 아이들을 앉혀 놓고, 장난감, 책, 과자, 기저귀, 옷가지 등 여러 물품을 꺼내 펼쳐 놓느라 경황이 없었다. 미리 요청을 했는지 남자 승무원이 아기 요람을 가져 와서 아기 엄마 좌석 앞 벽에 붙이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불쑥 20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 둘을 데리고 시카고에서 남편 없이 한국행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열 세 시간의 비행시간을 과연 아이들이 잘 버텨줄지 걱정이 되어 긴장하고 있었다. 요람을 요청하고 둘을 교대로 먹이고 놀아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느라 쉴 틈이 없었다. 딸아이는 놀다가 잠이 들었다. 아들은 돌도 안 된 때라 재우기가 쉽지 않았다. 아기가 울면 다른 승객들의 휴식이 방해될까봐 눈치가 보였다. 뒤편 화장실 옆으로 애를 안고 가서 흔들어 주었다. 자는 애를 요람에 눕히고 잠을 청하기도 했지만 혹시나 기류 이상으로 비행기가 흔들려 요람이 벽에서 떨어지진 않을까 싶어 도로 애를 품에 안고 졸음을 쫓았다.
그때를 떠올리니 눈앞에 있는 아기 엄마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도울 일이 있으면 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내식을 먹고 나자 조명이 꺼지고 승객들은 하나 둘씩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 좌석의 아이들은 도무지 잘 생각이 아닌 듯 했다. 네댓 살 돼 보이는 아들은 태블릿 PC에 열중해 있었다. 엄마는 딸애를 무릎에 앉히고 놀아 주다 애가 보채면 안고 일어서다를 반복했다. 나는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다. 아기 엄마도 나를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내게 눈이라도 맞추면 괜찮다고 미소를 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쪽으로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기는 기내 공기가 답답한지 몸을 비틀어대며 짜증스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딱한 마음을 누를 수 없어 애 엄마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얼굴에 웃음을 짓고서 내 앞쪽 여유 공간을 가리키며, 여기서 아기를 좀 걸려 보세요, 했다. 그는 아, 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아기를 데리고 레그룸 앞 공간을 천천히 돌았다. 아기는 신이 나서 폴짝거렸다. 화가 난 듯 표정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네가 웬 참견이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색하고 불쾌했다. 보기하고는 영 딴판이네, 하고 속엣말로 탓하며 고개를 돌렸다. 조용하다 싶어 돌아보았더니 엄마와 아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좌석에 대각선으로 몸을 걸치고 자는 딸애는 다리가 늘어져 덜렁거리고 티셔츠는 말려 올라가 배꼽이 드러나 있었다. 티셔츠를 내려주고 담요라도 덮어줄까 하다가 아기 엄마를 흘끗 보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40분 후면 인천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 딸을 일으켜 세웠다. 아기는 눈물, 콧물 범벅에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우는데, 엄마는 아랑 곳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가끔 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선잠을 깬 데다 썰렁하고 낯선 기내 공기 때문에 허전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엄마가 품에 안고 다독이면 곧 그칠 울음이었다. 남자 승무원이 장난감을 들고 아기를 달래보려 했다. 여자 승무원은 당황한 얼굴로 쩔쩔매고 있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애 엄마는 뻔뻔하게도 눈으로 웃고만 있었다. 아기 울음소리, 승무원들의 수선스러움과 엄마의 요지부동이 나의 인내심을 비등점에 이르게 했다. 차라리 나 보고 애를 봐 달라고 하지, 나는 아기 엄마가 얄밉고 원망스러웠다. 생각할수록 애 엄마의 태도가 괘씸할 뿐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승객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느라 애쓰고 있었다. 지병인 편두통이 재발했지만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기 엄마의 짐 싸기가 끝났다. 수십 분은 지난 것 같았다. 착륙 안전벨트 해제 등이 켜지고 승객들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짐을 챙겨 통로에 서 있을 때, 젊은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재빠르게 선두그룹에 섰다가 빠져나갔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아기 엄마를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도 그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경계부터 했을까? 어려울 때 받은 남의 도움에 고마움을 느끼고, 자기도 남을 배려해 주면서 기뻤던 경험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잘못을 뻔히 보고서도 가만히 있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괜한 언쟁에 휘말릴까봐 속으로 욕하면서 말 한 마디 못한 것을 참아 주고 있다고 합리화했다. 힘든 걸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아기를 오래 울리면 승객들에게 피해가 심하다고 알리고 행동 자제를 설득했어야 했다. 나의 비겁함이 아기 엄마가 자기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같은 잘못을 어디선가 또 저지르는 걸 부추기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비행기를 탈 때 아기 엄마가 옆에 앉을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아기와 엄마는 언제나 우선 보호의 대상이다. 기꺼이 배려하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상황이 생기면 보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소통을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