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메모] 진인사 해야 대천명이다

by 양벼락

오늘 아트코리아랩 입주기업 + 멤버십 기업 네트워킹이 있어서 별 기대 없이 참가했다. 늘 네트워킹은 어색한 진행과 어색한 명함 나누기, 그리고 어색한 공기 속에서 다과 먹기로 점철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 근데 오늘은 진행해주시는 담당자 분께서 레크리에이션 전공인가? 싶을 정도로 오프닝이 쌈빡(!)했다. 회사 소개도 멤버십 기업 위주로 진행되느라 입주기업인 나는 안 해도 됐었다(오예?). 케이터링도 은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모두의연구소에서 준비해준 <내 마음 속의 날씨>를 그림으로 그리고 서로 나누어 이야기해주는 부분에서 내 마음을 돌아보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대표님들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에 나는 요즘 나의 태도를 정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눠 준 종이에는 비어있는 모바일 화면이 출력돼 있었다. 나는 대뜸 북악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입주한 공간에서는 북악산과 청와대, 경복궁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곳이기 때문일까? 북악산 먼저 그리고, 그 아래 청와대 그리고, 그 앞에 경복궁 그리고... 작은 사람들을 점점점점 그리고... 북악산 맨 위에 '♡진인사 대천명♡' 이라고 꼬물꼬물 써놓았다.


아침에 경복궁을 보다보면 어느 날은 눈이 쌓여 있고 어느 날은 폭포 같은 비가 내리기도 한다. 하루는 미세먼지 최악의 상태로 누리끼리하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유리 하나 없는 그 곳이 반짝반짝 빛나보인다. 어느 날인가 경복궁을 보면서 '조선왕조도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는데, 나라는 사람 하나, 엘디프라는 기업 하나에 그 것이 없겠는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마음이 복잡해지면 경복궁을 보러 나갔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경로는 여러가지이지만 나의 경우 가장 잦은 경로는 '내가 원하는 미래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슈퍼N인 내가 원하는 미래라는 것은 정말 상상 속의 어떤 모습 중에서도 최상의 것이었을 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당연한데도 좌절감이 든다는 것은 일견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우스운 걱정거리가 있다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말 문제는, 그 좌절감이 들었을 때 해야할 일에 집중을 못하거나, '지금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회의감이 들어 고민에 빠지거나, 나태지옥에 빠져서 오늘 할 일을 경시하고 쓸데 없는 상념과 불안으로 하루를 버려버리 등의 행태다.


2023년 중간인가부터 만만치 않아졌고 2024년에는 와우! 할 정도의 어려움이었다. 2025년이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이 팔 다리를 다 자른 후에 겨우 심장만 뛰게 할 정도의 응급처치 후였으니 이것이 나아진 것인지 늘 불만이었다. 하지만 격랑의 시기는 생각보다 골이 깊어서, 2024년 중반부터 나는 나 자신의 허영과 야망, 오만에 대해 철저하게 인정하고 덜어내는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었다.


2025년이 되었다. 여전히 욕망의 찌끄러기들이 나를 좀먹을 때가 많지만, 나는 습관으로 이겨내고 있다. 조금 늦었어도 출근한다, 조금 부족해도 마무리한다, 조금 어려워도 시작한다, 조금 맘에 안들어도 다시 한다... 해야 되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냥 한다.


그 동안 놀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진인사 했느냐?를 스스로에게 묻기보다 대천명은 언제 오는가?에 목말라했다.


이제는 대천명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진인사 했는지도 묻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만 생각한다.


그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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