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같았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피바다
1차 산후출혈은 멎어가는 듯했다. 피가 나오는 양은 생리혈 정도로 적어졌다. 퇴원하기 전 날, 질 초음파를 보면서 자궁에 피가 고여있는 것을 확인하기는 했었다. 교수님께서는 피가 아직 고여있지만 오로처럼 나올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보통 오로가 배출될 때 생리할 때처럼 피가 나온다고들 하니, 현재도 정상적인 오로 배출이라는 판단이셨던 것 같다. 교수님은 내게 불안하면 며칠 더 입원해있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니요 퇴원할 수 있으면 퇴원하고 싶다고 징징거렸다. 교수님은 알겠다고, 그러나 저번처럼 다시 피가 울컥울컥 나오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으로 빨리 와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들이 병원에 있긴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제대로 씻고 내 침대, 내 이불, 내 베개를 사용하여 근사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병원에서 퇴원하였다. 퇴원하기 전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보기 위해 짐을 다 싸놓고 면회시간인 1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뚜뚜, 뚜뚜, 뚜뚜뚜,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들어가면 이런 소리가 계속 난다. 니큐에 입원해있는 아이들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는 기계에서 나는 소리다. 소리가 꽤 시끄러운데도 우리 아이들은 볼 때마다 잘 자고 있다. 나와 남편은 양보라 아기1에서 이양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양보라아기2에서 이양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우리 아이들의 인큐베이터 자리를 능숙하게 찾아 들어가 아이들에게 안녕- 인사를 하고 20분의 짧은 면회를 마쳤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조리원 환불이다. 이미 산후출혈로 입원해있던 시기에 조리원에 연락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안내드리고 내 남동생 편으로 조리원 물건들을 모두 뺀 상태였다. 환불을 받기 위해 직접 조리원으로 갔는데 조용하고 잘 먹여주었던(!) 조리원에 대한 미련이 돋는 듯했다. 남들은 조리원천국을 즐길 시기에 나는 병원에서 사경을 헤맸으니 참으로 나 자신이 불쌍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니큐에 있는데 나만 조리원에 있으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혈이 너무 무서웠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남편과 한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았다. 출혈이 시작된 날도 남편이 나와 함께 조리원에 있어줬기 때문에 빠른 조치가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코시국에 산모와 아이들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남편들이 아예 드나들지도 못하는 정책을 가진 조리원이 많은데, 나는 오히려 남편이 드나들 수 있는 그 조건이 맘에 들어 그 조리원을 선택했었다. 뒤돌아 보면 내 목숨과 건강을 살릴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환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해장국 두 개를 사고 반찬을 잔뜩 샀다. 집에서 조리를 하겠다는 일념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나의 입원으로 인해 오랫동안 방치된 집안 정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졸다가 울다가 졸다가 고양이 쓰다듬다가... 뭔가 우울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의자에 앉아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남편은 고양이들을 한 마리 한 마리씩 냥빨하기를 시작했다. 보리 씻고, 루히 씻고, 라히 씻고... 이제는 히온을 씻기는 참이었다.
고양이를 씻기는 소리, 샤워기에서 물이 솨아솨아 나오는 소리, 고양이들이 싫다고 우엥우엥 집사 이러지마 끼야아아아- 하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깔고 우울한 마음을 달랠까 말까 스스로를 간보고 있었다. 다리는 퉁퉁 부어 낙낙히 맞던 임부레깅스가 뜯어지려고 하고, 발등 발가락도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부어서 양말 신은 발이 부푼 빵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또 그놈이 왔다.
의자에 앉아있는데 울컥 울컥 핏덩어리가 쏟아져나와 산모패드의 용량을 훌쩍 뛰어넘고도 서너개의 패드를 적실만큼의 큰 출혈이 느껴지면서 '또 시작이다'라는 생각에 절규하듯 남편을 불러댔다. "오빠 나 어떡해 오빠!!! 오빠... 오빠 나와봐 나 어떡해!!!" 화장실에서 마지막 고양이를 목욕시키고 있던 남편은 급히 나와서 정신놓고 울고 있는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피가 또 난다고 목놓아서 울었다. 정말 목을 놓는다는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공포와 고통이 뒤범벅된 소리가 올라왔다. 과연 출혈은 어마어마했다. 남편은 "지금 정신 똑바로 차려야돼!"라고 나를 각성시키고는 119에 전화를 했다. 빠르게 연결된 119 상담원은 우리 남편에게 여러가지를 묻고 지시했다. 그 중 하나는 얼른 나를 눕히고 이불로 체온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넘쳐나는 핏덩이를 주체하지 못해 이미 바지와 산모패드를 벗어버린 상태였다. 졸지에 바지를 벗은 채로 피를 콸콸 흘리며 집 거실에 누워있게 되었다. 누워있으니 마음이 단단해지면서 정신이 맑아졌다. 서서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울음을 멈추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곧 119가 올 것이고, 우리는 세브란스로 다시 갈 것이다. 가면 또 수혈을 받을 것이고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이 너무 눈부셨지만 오히려 그럴 수록 더 똑바로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이것 저것 주문을 하였다. "이거 백프로 입원 각이야. 오늘 조리원에서 가져온 짐 그대로 다시 가져가자. 빨리 챙겨줘. 고양이들 밥이랑 물도 다시 꽉 채워줘. 오빠 노트북도 빨리 챙겨. 핸드폰 충전기 까먹으면 안돼." 또 피가 울컥울컥 나온다. 고양이들은 괜찮을까, 생각을 하던 중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왔다. 앰뷸런스를 타려면 패드와 팬티, 바지를 다시 입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살짝 일어났다. 엄마, 이거 어지럽네? 그래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 당연히 어지럽지. 좋아. 다시 앉자. 어 저기 내 패딩이 바닥에 깔려있네, 추우니까 저 패딩 위에 누울까..? 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허리와 무릎을 굽혀 패딩 위에 손을 올리려는데 쿵!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부터 나에게는 아무 기억이 없다.
어둠 속에서 뭔가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기분 좋은 상태로 있었다. 괜히 콧노래가 나오는 멜로디에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누가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든다. 아니 왜 저를 부르시는 거...ㅈ..?
신나는 노래가 사라지면서 나는 눈을 떴고 다시 밝은 형광등이 가득한 현장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파란 부직포옷(?)과 의료용 고글(?)을 쓰고 있는 남자 두 명이 내 어깨를 들어 올려 바닥 위에 놓여진 패딩 위에 엎어져있던 나를 바로 뉘이더니 "산모님 정신차리세요!!!!" 라고 다급하게 외치기에 화들짝 정신을 차려주었다(?)
'아니 여기가 어디지, 무슨 일이지?' 싶어 주변을 살펴보니 어라, 우리집이다. 오, 나 아까 기절했구나. 허허, 기절 경험이 또 하나 추가됐네. 아직 정신이 안 차려져서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흐리멍덩하던 눈에 다시 따끈한 피가 도는 것 같았다. 이 두 구급대원은 나에게 수액을 달기위해 온갖 핏줄을 다 찾아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세브란스에서 핏줄이란 핏줄은 다 찔린 상태여서 혈관을 찾기가 어려웠다. 바늘을 들고 있던 구급대원은 수액을 달고 가야 안전하다며 한 번만 더 해볼게요, 한 번만 더 해볼게요를 여러번 말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는 결국 수액을 달지 않고 출발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대로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타게 되었다. 그 구급대원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오히려 침착한 목소리로 "그 쪽은 수액을 너무 많이 맞아서 아파요, 이쪽 팔은 실제로 수액은 안 넣고 바늘 넣다가 터지기만 한 곳이라 이번엔 될 수도 있어요, 다리는 아직 수액 안놔봤는데 지금 다리가 너무 부어서 안들어갈 수도 있어요, C-sec(제왕절개) 했어요, 원래 고혈압 있었는데 임신중독증까지 와서 조산했어요. 12월 14일에 출산이었고 단태아 기준 출산 예정일은 1월 24일이었어요."라며 구급대원들에게 수다쟁이처럼 온갖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게도 "패드랑 팬티 챙겨줘, 수유패드랑 양말이랑 양치도구 챙겨줘, 까만가방만 들고가면 되지 않을까?" 라며 끊임없이 입원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정말 나는 이 순간에도 내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벼락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빠르게, 더 빠르게 최대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챙기고, 생각하고 있어야 이 위기를 이겨낼 것 같았다.
구급차를 타러가는 길은 오늘도 추웠다. 매일 같이 드나들던 우리 아파트 주차장을 통과하여 도로변으로 나오는데 검은 하늘이 깨끗해보이고 차가운 공기는 이상하게도 상쾌했다. 구급차를 보니 안심이 되었는데 이내 현타가 밀려왔다. 오늘 퇴원했는데 오늘 다시 실려가는 것인가, 이번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피를 흘려도 되는 것인가, 아기를 낳자마자 이런 큰 일을 겪으면 나의 신체는 회복할 수 있는 것인가... 등등 생각의 꼬리들에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첫번째 출혈 때보다 피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입고 있던 패딩이 젖어가는게 느껴진다. 구급대원은 지속적으로 나의 혈압과 혈중산소포화도를 체크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혈관을 찾아 수액을 연결해주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춥거나 어지러워지면 꼭 말해달라고 했다. 꼭 이라고 한건지 제발 이라고 한건지 모를 정도로 그는 나의 구조에 대해 진심이고 절실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이번에도 우리의 목적지인 강남세브란스 응급실은 구급대원의 전화를 안 받는다. 이미 예상했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