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도 벼락치기 Ep. 4 - 출혈은 수혈로 막는다

내 몸 속에는 내 피보다 남의 피가 더 많다

by 양벼락

응급실에서 정신줄을 열심히 붙잡으며 버티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병상 커튼을 촤- 하고 젖혔다. 나의 주치의 교수님이었다. 밝은 웃음으로 "보라씨 왜 돌아왔어, 안와도 됐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오늘이 원래 외래보는 날이어서 안 올 수 없었지만 교수님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산후 출혈로 오길 바라지는 않으셨을테니까. 나는 교수님을 보자마자 마음이 툭 놓여서 "교수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고 엄청 반갑게 맞이했다. 대학생 시절 따르던 교수님을 부르는 듯한 애교 섞인 말투가 저절로 나왔다. 교수님은 "이 정도면 수혈하고 약으로 조절하면 돼요! 걱정하지 말아요~" 라고 말씀하시고는 쿨하게 사라지셨다. 너무 쿨해서 순식간에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싶은 정도였지만 그때서야 이 상황이 점점 나아질거라는 믿음이 새싹처럼 자라났다. 응급제왕을 할 때 마취 직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봐 주던 그 의사의 눈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제왕 수술 후에도 회진을 도실 때마다 그렇게 반가웠던 교수님의 얼굴은 응급실에서는 빛까지 나는 것 같았따. 나는 교수님의 처방을, 그리고 수혈의 힘을 믿기로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와 남편의 PCR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고 우리는 이번 입원도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병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제왕절개 때 입원했던 같은 병실, 같은 침상으로 가는 그 기분이 데자뷰 같으면서도 제왕절개 당시처럼 이번에도 텅텅 비어있는 4인실에 나 혼자 입원한다고 하니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행운은 잠시, 응급실 침상에서 입원실 침상으로 몸을 옮기는데 '아, 이렇게 정신을 잃고나면 나는 못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한 현기증이 나고 온 몸이 덜덜덜 떨리면서 혼절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강력크한 생리통으로 고통받다가 기절한 전력이 많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정줄 놓으면 바로 기절이다.' 숨을 몰아쉬면서 '나는 정신을 잘 잡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멀쩡하다.'를 속으로 되뇌이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고혈압 환자인 내가 저혈압 쇼크로 죽을 것 같았으니 피가 빠져도 너무 많이 빠진 상황이었다. 제왕절개 후 만났던 간호사 분들이 젖으로 잔뜩 젖은 내 환자복을 갈아입혀주고, 바이탈 사인 체크를 위한 여러가지 장비들을 몸에 붙여주면서 왜 이렇게 안 좋은 일로 다시 돌아오게 됐냐며 너무 안타까워 했다. 원래도 세심했던 사람들인데 더욱 더 세심하게 나를 돌보려고 애써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소변줄이 꽂혀있었기에 하반신은 제대로 닦기가 힘들었고 내 하반신에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출혈이 계속 됐기에 엉덩이에서 허리까지 피가 눅눅하게 차오르는 그 찝찝함은 정말 다시 생각 하기 싫다.


간호사 분들의 전문적인 간호와 정성이 참 무색하게도 새벽에도 계속 되는 출혈과, 출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끊이없이 쏟아부어댄 수혈로 나는 나 자신을 붙드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도 힘들었다. 밤이 지나가도록 나를 만나러 오는 여러 사람들마다 나를 아프게 해야만 하는 임무를 한 가지씩 가지고 오는데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특히 질경은... 정말 내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질경으로 진찰 받으면서 드는 생각이 '이따위 질경 하나 하면서도 이렇게 힘든데 자연분만 한 사람들은 진짜 대단하다. 제왕절개 만세!'였을 정도니 말이다. 특히 전공의로 추정되는 한 의사가 와서 질경으로 나를 진찰했을 때는 나는 과호흡이 올 정도로 고통 속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냥 지나갔지만, 출혈의 양상을 보기 위해 질경을 넣어 진찰을 한다고 해놓고 진찰이 다 끝나도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바람에 도대체 왜 진찰한거냐고 뒤늦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나의 신경이 잔뜩 곤두설 만큼 질경으로 하는 진찰은 괴로웠다. 다른 전문의가 와서 질경으로 진찰을 해야한다고 했을 때 나는 안돼요 안돼요ㅜㅜㅜ라는 절규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전문의는 스킬이 좀 있었는지, 이렇게 저렇게 호흡을 하라고 나에게 지도했고 그 호흡법을 따라 진찰을 받으니 고통은 덜했다.


밤이 새도록 전혈과 성분혈을 합해 총 10팩의 혈액을 받고도 다음날 아침 피검사에서 헤모글로빈, 혈소판 수치가 안 올라서 수혈 2팩을 더 맞았다. 출혈은 다행히 잦아들고 있었고 큰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도 원하는 만큼의 수치가 나오지 못해 예상 퇴원 날짜는 하루가 미뤄졌다. 빨라도 크리스마스 이브에나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조리원도 취소하고 마사지도 취소했다. 코로나로 인해 상주보호자가 병원 밖을 나갈 수 없었기에 내 동생이 조리원에 들러서 여러 짐들을 챙겨서 갖다주기도 했다. 앰뷸런스를 타느라고 모든 짐을 조리원에 놔두고 와버린 터였다. 동생과 영상통화를 하며 어떤 것이 내 짐이고 어떤 것이 조리원 짐인지를 구별하면서 짐을 챙겼던 기억이 그나마 재미있는 기억이다. 사실 제왕절개 때도 아무 준비 없이 급하게 입원하는 바람에 남편 회사 동료가 짐을 챙겨다 주었고, 우리 집에 들러서 고양이들의 밥과 물을 챙겨주기도, 병원 생활에 필요한 기타 물품들을 챙겨다주기도 했다. 이 코로나라는 놈의 실체가 피부로 와닿는 나날들이었지만 고마운 주변 사람들 덕분에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신세질 일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기도 했다.


산후 출혈로 재입원을 하면서 딱 하나 좋았던 것이 있다면 내가 다시 강남세브란스에 입원하는 바람에 나와 남편이 신생아중환자실(NICU, 니큐)에 들어가 있는 우리 아기들 직접 면회가 가능해졌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신생아중환자실 면회는 PCR 검사를 마치고 음성이 나온 입원환자와 그 상주보호자 말고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달려있던 소변줄 때문에 나는 니큐까지 이동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바로 아랫층에 아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위안이 되었다. 매일매일 남편이 시간 맞춰 아이들 면회를 가서 찍어온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교수님은 드디어 나의 퇴원 날짜를 처방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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