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도 벼락치기 Ep. 3 - 고혈압환자의 저혈압쇼크

임신중독증 중 헬프증후군 a.k.a. 혈소판 감소의 위험성

by 양벼락

피를 너무 많이 쏟아서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들것에 실려들어 오면서 마음을 휘감았던 절망은 갑자기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잠식하기 전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응급실 유경험자로서(!) 침착하게 대응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남편도 나도 임신중독증 덕분에 이 병원 응급실을 한 번 경험했던터라 조금 더 노련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출혈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준비되어 있는 것은 다부진 마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급히 병원 편의점에 가서 산모패드를 사왔다. 산모패드 1개에 피가 가득차면 250ml의 출혈이 있는 것이고, 산모패드 2개가 꽉 차면 산후출혈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산모패드를 갈면 채 10분도 되지 않아 산모패드가 다 젖고, 10분 뒤 다시 갈면 또 울컥울컥 피가 나왔다. 그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많은 출혈인지, 산모패드 하나가 적셔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응급실 커튼 너머로 들리는 말은 내가 들어도 기함을 토하게 했다. "800cc 나왔습니다" 라고 의료진들끼리 정보를 전달하는 말이었다. 산후 출혈이 있게 되면 의료진에게 안 쓴 산모패드 1개를 샘플로 제출한다. 그 패드 1개가 몇 그램인지 측정한 후에 출혈로 인해 적셔진 산모패드의 무게를 재서 얼마만큼의 출혈이 나왔는지 가늠하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것이다. 800cc는 내가 앰뷸런스를 타기 전 흘린 피는 제외하고, 앰뷸런스에서 사용한 산모패드, 응급실에 도착하고서 두 시간 내에 갈았던 산모패드를 가지고 측정한 수치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출혈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루 동안 1리터가 넘는 피를 흘린 것이다.


사실 제왕절개로 인해 첫 입원을 해 있을 때도 나의 빈혈 수치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임신중독증 중에서도 헬프증후군에 속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바로 '혈소판 감소'이다. 일전에 적은 Ep. 1에도 말했듯이 혈소판은 지혈을 하는 기능이 있는데 그 혈소판이 적어진 상태로 제왕절개를 했으니 일반적인 수술보다 출혈량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진단서를 떼보니 제왕절개 수술 중에 급성 출혈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도 나를 퇴원 시키기 전에 나의 빈혈 수치를 걱정하셨다. 그러나 수혈을 받는 것보다 철분제를 먹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하시고 나는 특별한 수혈 없이 퇴원하였다. 1차 산후출혈로 인해 두 번 째 입원을 했을 때, 제왕절개 당시의 빈혈 수치를 잘 아셨던 교수님이셨기 때문에 수혈을 빠르게 처방해주신 것 같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수혈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수혈만 받는 것은 아니었다. 수혈과 함께 수액과 자궁수축제도 함께 내 몸에 들어왔다. 자궁이 수축해야 자궁 안에 있는 피들이, 더 정확히는 오로가 배출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몸에 피가 들어오니 약간 정신이 차려지면서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많은 액체들을 주렁주렁 달고 의료진이 최선을 다 하는데도 나의 출혈은 멎지 않았다. 오히려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내 몸은 점점 차가워졌다. 간간히 찾아오는 어지러운 느낌은 나의 신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을 하는 듯했다. 의료진들은 출혈의 양상을 보기 위해 계속 피나는 질 안으로 질경 넣고 질초음파 넣고 안 그래도 아픈 곳을 더 건드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진짜 실로 실신해서 죽을 거 같았다. (사족이지만 질경은 도대체 누가 만든건지 진짜 최악의 진찰도구다.)


고혈압 환자로서 혈압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은 경험하는 것은 정말 드라마틱했는데, SF 영화에서 우주선이 우주 속을 빠른 속도로 유영하다가 외계인으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을 때, 영화적 표현을 위해 테이프가 늘어나는 듯한 뚜웅- 하는 효과음과 함께 영상이 아주아주 아-주 느린 슬로우 모션으로 변경되는 바로 그 순간의 울렁거림과 아득함과 같았기 때문이다. 내 왼팔에 달려있던 혈압측정기는 주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했는데, 그 혈압기가 부풀었다가 푸슈- 풀리면 내 머리맡에 놓인 바이탈 사인을 보여주는 모니터에 나의 혈압 수치가 반짝인다. 그 모니터를 볼 때마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소 혈압약 복용 후 120/80 정도 나오던 혈압이, 혈압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80/50 까지 떨어지는 걸 보는 것은 굉장한 공포였다. 출산 직전 임신중독증으로 인해 혈압약을 먹은 상태에서도 160/100까지 혈압이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몸의 혈액이 빠져나가면서 혈압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혈액이 부족해지면서 눈이 조금씩 풀리고 숨이 가빠오는 것도 당연한 일. 몸이 조금씩 차가워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경험해야하는 것도 당연한 일. 수혈을 받고 있음에도 출혈되는 양이 더욱 많았기에 떨어지는 혈압을 잡기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의료진은 수시로 어지럽거나 숨이 가빠지면 말해야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의를 주었고 나와 남편은 혈압이 너무 낮다고 수시로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어지러움은 실체가 되어 나를 찾아왔고, 나는 힘 없이 남편을 바라보며 '어지러워, 어지럽다고 전해줘' 라고 말하고선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응급실 커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의료진은 혈압을 잡기 위해 수액을 더 넣기로 결정을 하였다. 신기하게도 혈액이 아닌 수액을 넣었는데도 혈압이 정상으로 올라오면서 몸도 다시 따뜻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몇 팩의 수혈로도 출혈이 잘 잡히지 않고 진행되는 양상이 너무 안좋아서였는지 이제는 전문의가 수술동의서를 들고 나타났다. 대학병원이 그렇다고는 하던데 무서운 말들을 많이 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다시 개복하여 자궁절제를 해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 놔... 딱 일주일 전에 제왕절개 했는데!)


내 출혈 양상이 어떻든지 간에 PCR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입원실 못들어간다고 해서 응급실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로는 피가 눈치도 없이 꿀럭꿀럭 나오고 있었고 위로는 몇 시간 동안 유축을 하지 못해서 불어버릴대로 불어버린 가슴에서 환자복이 다 축축해질 정도로 모유가 새고 있었다. 긴급 수혈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피가 계속 빠져나가다보니 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하듯 바르르 바르르 떨리면서 온 몸이 통제가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찰을 받을 때마다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 과호흡이 왔다 갔다 했다. 설상가상 이번에 바늘 잡은 분들은 왜 이렇게 제대로 핏줄을 못 찾고 찌르고 또 찌르고 내 팔에 피멍 딸린 바늘자국만 몇 개가 만들어졌는지... 한 번도 바늘을 무서워한 적 없던 내가 잠시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한 번에 잘 찔러주세요 제발! 지금 몇번이나 이렇게 하시는거에요!!!" 괜히 소리를 질렀나. 머리가 띵했다. 갑자기 그 분에게 죄송해서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도... 그새를 못 참고 또 바늘을 이상하게 찔러서 팔에 피멍을 만드는 그 사람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온몸에 링거줄 주렁주렁 달고 바이탈사인 체크한다고 가슴에 뭐 잔뜩 붙이고 손가락에 혈중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구를 달고 피날레로 소변줄까지 꽂아서 병상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게 된 모양새로, 나는 '아이들은 니큐에서 잘 자라고 있을까'를 가끔씩 궁금해하며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