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생리통을 많이 겪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색전술 하는 곳은 여타 수술장과는 달랐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 그런지 조금 더 다정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철이 철컹철컹 부딪히는 소리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조명이 밝아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제왕절개 때처럼 모든 옷을 탈의하지도 않는다. 전신마취를 하지 않아 모든 의식이 있는 채로 시술이 진행되는 것이 안심이 되는 면이 있었다. 특히 시술을 진행해주시는 교수님의 음성이 들릴듯 말듯 조용하여 다급하지 않았다. 옆에서 보조를 하는 전공의로 보이는 분은 그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건지 교수님께서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웅얼웅얼 하면서 조심스레 움직이면 이내 "1500에 400 들어갑니다"(정확하지 않은 기억인데 그 당시 비전문가인 내가 듣기론 이렇게 들렸음)라고 복창하며 무언가를 갖다주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 반복됨이 한 사이클, 두 사이클 돌아갈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으로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린 시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출혈을 겪고 있었지만 사실 색전술을 하러 가기 직전에는 이렇다 할 통증은 없었다. 침상에 누워서 바이탈 사인을 조절받는 여러 처치들을 받고 있었기에 어지러움증이나 추위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출혈 양상을 잡기 위해 색전술을 처방 받고나니, 간호사 분들께서 나를 간호해주러 오실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색전술 하면 효과 진짜 좋아요, 출혈 잘 잡히더라구요! 근데 정말 아파하시긴 하더라구요 ㅠ 아프긴 엄청 아프실거에요 ㅠ"
색전술 시술장에 들어선 지 십여분이 지나는 동안 이미 잡혀있던 라인에 새로운 진통제도 달리고, 내 배 위로 엑스레이(?)로 추정되는 기계가 놓이게 되었다. 아랫도리가 모두 벗겨진 상태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지만 내 사타구니와 다리에 검붉은 색으로 칠갑된 피떡들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지는 않을지 순간순간 걱정되긴 했다. 그러다가도 맨날 이런 모습을 보시는 분들일텐데 뭐! 하면서 그 아프다는 색전술이 무엇일지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술 준비를 어느 정도 마쳤는지 모든 의료진들이 나를 시술장에 남겨놓고 유리창 너머의 방으로 옮겨간 다음 처음으로 엑스레이를 퐝 찍었다. 나에게서부터 약 4~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모니터에 나뭇가지 모양의 검은 줄기들이 뜬다. 저게 내 자궁인가? 저게 자궁동맥인가? 긴가민가 하는 동안 의료진들이 다시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이내 교수님께서 내 오른쪽 골반 쪽에 자리를 잡으시더니 오른쪽 와이존에 차가운 무언가를 문대었다. 국소마취를 한 것 같다. '오 드디어 시작하는건가!' 상황판단을 하려는 찰나 교수님께서 내 오른쪽 와이존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순간부터 엄청난 생리통이 밀려왔다.
나의 생리통은 정말 유난스럽기 짝이 없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생리통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의 어느 일요일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모든 관절이 벌어져서 끊어질 듯한 생리통이 몰려왔었다. 살아생전 처음 겪어보는 통증에 설마 생리통인가 싶어서 내 방에서 화장실로 기어가다가 화장실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다. 그 당시 아빠는 매일 새벽 우리집 귀염둥이 도베르만 카이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셨는데, 화장실 앞에서 쓰러진 나를 발견하자마자 부엌에 가서 물 한 잔을 가져오시곤 내가 물을 들이키게 해주셨다. 아빠가 들어온 기억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화장실 앞에서 물을 마시고 겨우 정신을 차린 기억이 있다. 우리 아빠가 그런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생리통이 엄마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역시 여러번 생리통으로 고생했기에 아빠의 경험치가 이따만큼 쌓였으리라. 나의 생리통은 대학생 때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가공할만한 파워로 조금씩 차도를 보이는가 했지만 진통제 없이는 제대로 생활하지 못할 정도의 것이긴 했다. 결혼 후에도 생리통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려고 옷을 갈아입던 찰나에 찌릿한 복통이 살짝 느껴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생리 예정일을 조금 앞두고 있었기에 이것이 생리통이라고 생각지 못했고, 일단 눕자는 생각으로 급히 침대에 누웠는데 그 길로 엄청난 복통에 시달리다가 눈 앞이 흐릿해지고 숨이 가빠지면서 과호흡이 왔었다. 급히 부른 119가 도착하여 내 방으로 들것을 들고 오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갑작스럽게 구토를 하기도 했다. 정신이 내 육체의 안팎을 넘나들면서 분당서울대 응급실에 도착한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나의 유난스러운 생리통을 주저리주저리 나열하는 것은, 색전술을 통해 경험한 이 통증이 단연코 그 동안 겪었던 생리통 중 TOP 5에 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가장 아픈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색전술은 영상의학과에서 하는 시술이고, 국소마취 후 대퇴동맥에 2-3mm의 구멍을 뚫고 관을 삽입한 후에 영상촬영을 통해 자궁동맥까지 그 관이 닿을 수 있도록 세밀하게 관을 조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궁동맥에 관이 잘 도착하면 그 관을 통해 화학물질을 주입하여 동맥을 막아서 선택적으로 출혈을 막는 시술법이다. 그러니까 방금 전 교수님이 지금 내 오른쪽 와이존을 국소마취 시킨 후에 구멍을 냈다는 소리다. 손가락인 줄 알았던 것은 내 허벅지와 배 사이에 있는 대퇴동맥을 뚫고 들어가는 그 무엇이었나보다. 모든 의료진들이 다시 유리창 너머 방으로 넘어갔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으며, 나는 내 몸 속 자궁동맥으로 추정되는 나무 모양의 혈관들이 뜨는 모니터에 새로운 회색 사진이 떴다. 의료진들이 다시 내가 있는 방으로 넘어오는데 이제는 이 고통이 무섭다. 어떻게 잊을까 어디다 정신을 팔까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그래, 저 모니터를 보면서 내 나름대로 이 상황을 해석해가면서 소설을 써보자. 그럼 좀 낫겠지.' 라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래 저게 내 동맥이 출혈을 일으키는 모양이겠구나, 지금 저기에 뭔가를 하려나보다, 오케이 교수님 화이팅, 교수님은 최고이실테니까 시술 받는 저만 잘 참으면 되겠지요. 제가 잘 참아보겠습니다.' 생각은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나는 계속 "선생님.... 생리통처럼 너무 아파요... 너무너무 아파요..."라고 신음을 내뱉듯이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아파할 때마다 시술을 집도하시는 조용하고 근엄하신 남교수님은 아무 반응을 안해주었지만---아, 비난하는게 아니고 당연한 일이다. 시술 자체가 너무 섬세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나의 징징거림에 반응하실 여유가 전혀 없으셨을 것이다---예쁜 눈을 가진 다른 여자 의사선생님께서 진통제를 놔주면서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그러나 진통제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상하게 더욱 아파왔다. 진통제의 역할에 대해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까 엉뚱한 생각을 시작했지만 고통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나의 뇌내 상상 계획은 첫 삽을 뜨지도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래, 분당서울대 생리통 사태보단 낫다, 고3때 생리통 보단 낫다, 고1 때 생리통 보단 낫다, 이게 정말 낫긴 나은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낫다는 생각을 아무 주기 없이 반복적으로 주술처럼 나에게 상기시키면서 내 환자복을 움껏 부여잡고 고통을 오롯이 겪어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