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도 벼락치기 Ep. 9 - 불안한 퇴원

by 양벼락

돌아보면 그렇다. 우수한 구급대원들과 길을 피해준 운전자들 덕에 저녁 여섯시 경이었음에도 빠르게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이 헌혈해준 피가 원래 내 피보다 더 많을 정도로 나에게 들어와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여 치료까지 이어졌다. 나와 이웃들이 열심히 내준 건강보험료 덕분에 큰 부담없이 많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의료수준 덕분에 나도 아기들도 큰 사고 없이 소중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집을 비우는 동안 집과 회사를 돌봐주는 남편 회사 동료 창업자들, 그리고 묵묵히 엘디프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나대표 덕분에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자상하고 멋진 남편 덕에 정신적, 정서적 위로를 받으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제왕절개 - 1차 산후출혈 - 2차 산후출혈을 겪었던 약 2주의 시간 동안 제왕절개 환부와 소변줄과 늘 팔에 달려있었던 라인들 덕분에 샤워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내가 남편의 도움으로 샤워를 했던 것이다. 마스크를 오랜만에 벗고 샤워를 하는데 나한테서 정말 사람에게서 날 수 있는 악취인가 싶은 정도의 고약한 냄새가 났었다. 제왕절개를 마친 후 감사를 논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원은 무서운 일이었다. 퇴원한 날 바로 다시 입원했던 경험은 나를 오그라들게 했다. 자궁동맥색전술을 마친 후에도 피는 (생리보다 적은 양이었지만 어쨌든) 나오고 있었다. 피를 볼 때마다 무서워 한다는 것을 아셨는지 교수님께서 자궁에 남겨진 핏덩어리들을 썩션해서 완전히 자궁을 깨끗하게 해놓고 퇴원하자고 하셨다. 이 정도 피가 나는 것은 오로라고 보면 된다고 하셨는데도 피만 보면 목 뒤가 뻐근해지고 언제 또 이런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다. 썩션을 하러 가는 길은 무려 휠체어를 타고 갔다. 수혈한 양에 비해 나의 피검사 수치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지 휠체어를 들고 오는 간호사님 덕에 나는 내 상태를 다시 한 번 더 의심하게 되었다.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썩션을 기다리다가 이름이 호명되자 교수님을 뵈러 갔다. 교수님은 핏덩이를 다 뽑아도 피는 나오지만 색전술을 한 이상 저번처럼 울컥거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썩션을 하기 위해 산부인과 검진 의자에 앉았고, 나는 그놈의 자궁경을 또 경험해야했다.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삽입은 덜 아팠지만 썩션이라는 것은 결국 자궁경부 안에 썩션 기계를 밀어넣어야한다는 것이었을테니... 고통이 적지는 않았다. "앨리스 있어요?" 라고 간호사님께 물어보는 교수님의 말에 '앨리스'라는 단어에 꽂혀서 어떻게 생긴 기구일지 상상하면서 고통을 잊어보려고 했다.


썩션을 마친 후 하루를 더 병원에서 보내고 나는 12월 29일 드디어 퇴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날리고, 크리스마스도 날렸지만 덕분에 니큐에 있는 아기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마음은 불안했지만 집에 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생각과, 또 언제 피가 철철 흐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했다. 하루하루 살얼음 판 위를 걷듯이 오로 양을 체크하고, 언제든지 병원에 입원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남편과 3일마다 용인 모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12월 14일 출산을 하고 2주 넘게 강남 세브란스를 들락날락 거렸던 나의 출산 후기는 이쯤에서 멈춰질 수 있었다.


아무 이벤트 없이 잘 흘러만 가던 나의 임신 생활에 '임신중독증'이라는 변수가 들어오면서 말 그대로 출산을 벼락치기로 해결해버렸다. 내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벼락치기'라는 키워드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출산이 가장 앞을 차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내 인생에 가장 위급하고 중대하고 치명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응급제왕으로 끝날 것 같았던 출산 벼락치기는 산후출혈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실넘실 넘어가면서 겨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두 가지 말을 자주 하고 다닌다.


"진짜 웬만하면 임신출산 하지 마세요. 저출산은 남의 문제이지만 임신출산은 내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남세브란스 자주 올 줄 알았으면 강남 살 걸(?!)"

출산 뿐만 아니고 육아까지 강남세브란스와 하게 된 썰은 언제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출산도 벼락치기> 시리즈는 여기서 끗!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출산도 벼락치기 Ep. 8 - 큰 통증, 또 수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