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어느 작가님의 그림인지.
내가 사는 주상복합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방과 선물을 주섬주섬 주워 엘레베이터를 탄다. 8층 버튼을 꾹 누르고, 성격 급한 나는 닫힘 버튼도 바로바로 누른다. 8층에 도착하여 집 앞에서 짐들을 조금 추슬러 손에 여유를 만든 후 도어락을 연다. 남편이 뭔가 맛있는 것을 뚝딱거리고 있다. 오예!
나는 오늘 받은 선물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포장지를 보니까 ㅇㅇㅇ 작가님거 같아. 딱 삘이 왔어!" 근데 이 선물을 어떤 경위로 그리게 되셨는지 어떤 그림이 그러져있는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가방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포장 그대로의 선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는 옷방으로 들어갔고, 아, 밥 먹은 다음에 옷 갈아입어야지! 하는 생각에 가방만 정리하고 나오니 고양이들이 선물을 마구 뜯으려고 한다. 포장의 빈 틈에 머리를 들이밀고 '이게 뭐냐옹' 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고양이를 들어올려 선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게 하고는, '그래 이미 고양이가 뜯으려고 한거 지금 뜯어서 확인하자'는 생각이 든다. 그 때는 병원이고, 조퇴고, 코로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그냥 선물 앞에 있는 들뜬 한 사람이었다.
분홍빛이 있는 연보라색 리본을 풀고 나니 조금 더 짙은 연보라색 포장지를 뜯고나니 발포지가 나온다. '그래, 이건 확실히 그림이지 히히' 발포지를 뜯고나니 어렴풋한 그림의 형태가 보이는 미농지가 나온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였어! ㅇㅇㅇ 작가님의 빅팬인 나는 더 신나는 마음으로 마지막 포장지인 미농지를 걷어낸다. 왜 사람들이 '베일에 감춰진'이라는 표현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렴풋이 비쳐지는 것과 실제는 다른 것이었다. 눈 앞에 놓인 것은 중앙에 놓여진 두 개의 그네, 그 양 옆으로 놓인 또 다른 모양을 한 두 개의 푹신한 의자, 그리고 바닥에 누워 쉬거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의 고양이들 보리, 히온, 루히, 라히의 모습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라히의 우스꽝스러운 포즈의 사진과 동일한 포즈의 고양이 그림을 보니 꺄~ 하는 소리와 함께 왠지 눈이 뜨거워진다. 그림의 뒷면을 보니 작가님과 작가님 남편분이 적어주신 메세지가 있다.
그것을 읽으니 갑자기 눈물이 툭 터지는 것이다. 어 뭐지 이거, 어 왜 이래 이거?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 부끄러워서 잠시 옷방으로 숨어들어갔다. 눈물이 꾸역꾸역 나오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스스로 그림을 산 적은 있어도 그림을 선물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서 그런걸까? 매일 그림을 팔고, 누군가에게 그림을 선물하려는 사람을 대응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자로서 그림 선물이라는 것이 이 정도로 감동적인 것인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따뜻한 색감의 그림 속에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고, 내 가정이 담겨 있는 느낌.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하고, 어떻게 그릴지 서로 상의하고, 실제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작품의 뒷면에 짧은 메모와 사인을 남김으로써 축하와 응원의 메세지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이 그림은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선물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던 것인가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어느 그림팔이의 저녁은 축축한 옷 소매, 코를 팽팽 푸느라 쌓여버린 휴지뭉치들처럼 잘 진정되지 않는다. 그러고는 카톡으로 온데 말을 거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그림을 선물할 생각을 했어, 아니 작가님 왜 이 작품을 보니 이렇게 눈물이 나나요, 야 나 지금 그림 선물 받고 눈물나서 혼자 옷방 와서 울고 있어 웃기지...... 두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을 토독토독 거리다보니 이내 말간 웃음이 찾아와 마음의 밝기를 높혀준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사실은 오늘 하루 겪었던 병원에서의 긴장이, 임신중독증일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조산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온몸을 바싹바싹거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임신중독증의 치료 방법은 임신의 종료 뿐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 방법 뿐일까, 혈압은 원래 있었던 건데 약으로 조절하면 되는 것 아닐까, 아직 아이들 몸무게가 2키로도 채 안되는데 임신이 조기 종료된다면 아이들은 건강하게 나올 것인가, 12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1월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1년이나 늦게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데 어떻게든 버텨서 1월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박사님 말 듣지 않고 내 나름대로 버티다보면 1월 출산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지 임신중독증은 잘못하면 산모도 아이들도 다 죽는다는데 혼자 비과학적인 행복회로 돌리느니 나의 주치의를 믿고 출산 시점을 앞당겨야 하는 것인가.... 등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했던 고민들을 고민해야 했었다. 내 몸 속에 있는 세 개의 심장이 건강히 뛸지 아닐지를 처음으로 걱정해야했던 무거운 하루였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불안과 의심으로 긴장한 마음이 그림에 담긴 응원과 따뜻함으로 스르르 풀리면서 미세한 경련이 났던 것 같다. 그림을 선물해주면서 툭 내던진 우리 회사 공동대표이자 내 고등학교 선배인 분의 말이 그제서야 와닿는다. 그래, 이 그림처럼 출산 후에도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일상들이 더 많을거야.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은 그림 선물을 받은지 두 달 반이 지난 시점이다. 출산 5주 전에 받았다고 생각했던 이 그림 선물은 실제로는 출산 2주 전에 받았던 선물이 되어버렸고, 출산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시점에서 아이를 응급제왕으로 낳아버리고 산후 출혈이라는 어마어마한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이 그림 포장을 다시 풀 수 있게 되었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던 2021년 12월의 악몽이 시커멓게 흘러가는 동안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11월 27일 선물받은 이 그림은 2022년 1월 2일이 되어서야 아이들 침대 머리 맡에 달렸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돌볼 때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우리 가족을 위해 이 선물을 해준 세 분을 떠올린다. 앞으로 다 잘 될거라는 마음을 주는 고마운 그림. 나에게는 1억, 2억 하는 그림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그림. 4년 가까이 그림을 팔았지만, 그림을 보고 이렇게 감동 받고 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사실이 새삼스러우면서도 내 업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르게 한다. 그림을 보고 울었다는 사람들의 리뷰를 보고 '와 진짜 감수성 엄청 풍부하신 분인가보다' 하고 쉽게 생각했던 내가 바로 그 분이 되다니. 그 동안 무슨 생각으로 그림을 팔았는가에 대한 부끄러움도 밀려온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진심으로 작품을 대해야겠다는 마음을 세워본다.
.......그래도 작가 노트를 보고 운 적은 있었어! (뒤늦은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