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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Jul 02. 2024

창업도 벼락치기-퇴사片

양벼락은 퇴사도 벼락치기

안녕, 나 양벼락이야.


여름 휴가 잘들 보내고 있어? 바로 직전에 쓴 글에서 내가 군산 선유도에 다녀왔다고 했잖아? 그 날 아들이랑 너무 신나게 놀아서 어깨랑 팔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까매졌고 이제 껍질도 떨어지고 있어. 그런데 어제 어린이집에 애들 하원하러 가니까 담임샘께서 내 어깨를 보시더니 "어머님 혹시 야외에서 일하세요???" 이러시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주말 동안 바닷가 가서 신나게 놀았는데 애들은 왜 안 탔냐면.. 두서없이 주절주절 설명해 드리는데 뭔가 너무 놀라신 토끼눈이 하루종일 생각나더라ㅋㅋㅋ큐ㅠㅠㅠ 엄청 까맣긴 해... 흑


오늘은 내 창업 초반기 이야기를 좀 적어볼까 해. 창업 이야기를 한 번도 시계열적 순서에 맞춰서 쓴 적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앞뒤 안 맞추고 그냥 생각나는 부분만 쓸 거야. 창업이라고 하기엔 그다지 모험적이지도 않고 혁신적이지도 않아서 좋은 본보기 따위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제일 즐겁게 하는 '게임'과도 같은 이 작은 사업을 어쩌다가 이렇게 오랜 기간 할 수 있었나 톺아보다 보니 창업 초기 생각이 안 날 수 없더라.


일단 적기 시작하면 뭐라도 적어지겠지. 가자!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9



벼락 퇴사
조직 부적응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 퇴사를 해서였어. 퇴사를 한 건, 회사가 너무 싫어서였고. 근데 퇴사와 회사가 너무 싫음 사이에 '두려움'이 커서 몇 개월 동안 고민이 많았어. 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직장으로 이직한 지 네 달쯤 되니까 '어라, 이거 뭐지?' 싶었지만 또 다른 이직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냥 회사라는 조직에 날 맞춰서 살아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 같아. 모든 회사가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어딜 이직 해도 웬만한 회사는 다 그런 식으로 살아야 될 것 같더라고. 아마 내가 공공기관, 교육기관, 시청 산하 재단 같은 안정적이지만 유동적이지도 않은 집단에만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 나 스스로는 사회가 제공하는 시스템에 나를 잘 끼워 맞춰서 살 수 있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 자체가 담당하는 일의 범위가 창발적으로 뻗어나가는 성격이 아니고 빈틈 없이 관리하는 종류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답답해지고 출근길이 너무 괴롭더라고. 나름 꼼꼼하고 관리자 성향이 되게 강한데도 넓고 얕은 새로움 없이 깊고 쫀쫀하게 관리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


회사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 대부분 직원 분들께서는 그 직장을 오래도록 다니면서 승진도 하고 학위를 병행하기도 하고 해외 파견도 종종 있는 좋은 회사였어. 다만 내가 있는 직군이나 내 전공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 같았어(대부분 공대 베이스인데 나는 법대 베이스). 게다가 내가 잘 한다고 해서 연봉이 올라가거나 직급이 높아지는 구조가 아니라서 '이걸 잘 하면 무엇이 좋은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업무 능력을 말로 인정받을 때는 잠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꼭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컸지(하여간 생각이 많으면 안 돼.) 어떤 사람들은 사기업에 비해 일거리가 많지 않은 회사이니 편하게 다니면서 취미 생활이나 박사 과정 등 부가적인 활동을 통해서 커리어를 넓혀가라고 말했는데 나는... 나는 뭘 해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사람이라 일단 엄청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할 수록 한계효용이 떨어지는 느낌에 고민은 더 커졌어.


남편의 가스라이팅

근데 내가 회사를 그만 두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우리 남편의 가스라이팅(?)이야. 우리 남편은 몇 개월 동안 내 귀에 인이 박히도록 말했어.


" 넌 일을 벌리면서 다녀야 되는 성격이다, 유동적이고 활동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 계속 불만이 쌓일 거다, 너한테 어울리는 직업은 컨설팅이나 사업이다, 사업을 하면 잘 할 것이다, 인생에 기회가 언제나 오는 게 아니다 지금 본인(남편)이 돈을 벌고 있고 아이도 없는 상태에서 모험을 해보는 게 좋을 거다, 나이 들어서 가진 게 더 많아지고 아이가 생기고 책임이 많아진 상황에서 모험은 더 어려워진다, 지금이다! "


남편 본인이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한테 저렇게 이야기 하니까 처음에는 '아니 이 사람이, 내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벌고 있으니까 본인이 조금 마음 편히 사업을 할 수 있는 거란 생각은 안 드나?'하는 생각이 들었지. 동시에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고 하루하루 잠도 잘 못 자면서 일하는 사람이 나보고 사업을 하라고 하다니. 남도 아니고 심지어 본인 와이프한테?' 하는 생각도 들었어(엇, 나를 일부러 고생 시키려고 한 큰 그림이었나?) 결국 남편 말처럼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오늘은 사표 낸다, 오늘은 사표 낸다! 하다가 어느 날 정말 냈고, 당시 팀장님이 '아 나는 이 사표 못 받아요, 양연구원 이러지 마.' 하시기에 삐쭉삐쭉 뿌잉뿌잉 주섬주섬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를 두어 번 반복했지.


조보아님 닮은 조주임님

그러다가 하루는 갑자기 너무 확신에 차서 '반려를 반려한다!'하는 마음으로 이메일로 사의 표명하고(사표 낸 시점, 사의 명확히 표현했다 등에 대한 증거도 남길 겸 또 삐죽거리면서 돌아오는 과정을 안 하려고) 이메일에 퇴사 날짜도 박아버리고 남은 휴가 다 끌어 당겨서 휴가계도 다 올려버린 후에 마지막으로 사표를 인쇄해서 결재서류 파일에 담아 팀장님 책상 위에 올려놨고 난 그렇게 10개월 만에 새로운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어.


약 3주 간의 실랑이를 마치고 나의 퇴사를 축하(?)하기 위한 팀회식이 열렸어. 모든 선배 및 상사분들께서 "그래도 1년은 다니지", "밖에 나가면 힘들다", "나가서 뭐 할거냐" 라고 걱정해주셨어. 나도 별 계획 없이 퇴사하는 거였고 다 맞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후련함이 커서 싱글벙글 웃어댔어. 그런데 단 한 사람, 내가 되게 좋아했던 (배우 조보아님 너무 닮은 데다 같은 조씨라서 혹시 조보아랑 사촌관계 아니냐고 물어본 적도 있는) 조주임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건배해주었어.


"나는 양연구원이 회사를 나가도 아주 잘 할 것 같아요. 멋진 결정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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