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놀아야지 암
벼락 게임
철 없이 놀았던 두 달
퇴사 시점이 11월 초가 되면서 나는 12월까지는 미친 듯이 놀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단다. 지금 아니면 언제 노냐! 싶었던 것이지. 사실 틈틈이 놀긴 하지만 두 달 내리 논 적은 대학교 여름방학, 겨울방학 말고는 아예 없었으니까. 무엇을 놀까 하다가 - 오랜만에 게임이란 걸 해보기로 했어.
초등학생 때는 알라딘과 Fox, 3D 테트리스를, 중학생 때는 천리안에서 채팅창을 이용해 하는 '신의 손'이라는 게임을 정말 좋아했는데(어머 내 나이 무엇) 한 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오질 못했고 우리 아버지도 '게임을 열심히 하면 집중력이 생긴다!'라는 오픈마인드셨기에 내가 게임하는 것을 한 번도 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었어. 그런 아버지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전화요금이 폭탄이 되도록 게임을 하기도 했었지. (그 시절에는 모뎀이라는 걸 사용해서 인터넷을 했거든. 아 그리운 90s!) 심지어 중학교 때는 '신의손'이라는 게임이 어찌나 유행이었는지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 타자 빨리치기 대회를 열었고 나는 무려 전교 3등으로 입상했었어. (1등과 2등이 같의 신의손을 미친듯이 달리던 정모군 한모군이었던 것도 기억나네? 근데 나랑 달리 걔넨 공부도 전교권이었음.) 슬프게도 그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교권으로 놀아 본(?) 경험이었어. 아무 방해 없이 게임만 주구장창 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나의 절제력이 이렇게 없다는 걸 아주 빨리 깨닫게 된 것 같아. 그래서 그 이후로 게임이란 것은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어. 그러나 Big event of my life를 야심 차게 수놓기 위해, 그리고 한 해의 시작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사업을 시작해보겠다는 벼락치기 근성으로, 나는 롤을 깔았지.
나의 롤 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형편 없었..... 밤을 새워 롤을 해도 실력이 늘질 않았..... 지만 진심으로 롤이 너무 재밌더라고. 하루에 잠을 5시간 정도만 자면서 롤을 엄청 열심히 했어. 그러다보니 새벽 6시, 아침 7시에 잠들고 11시 즈음 느즈막히 일어나서 라면 끓여먹고 또 롤 하고 그런 두 달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러길 잘 했어. 세상에 게임을 하기 위해 밤 샌 게 몇 년 만인지!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고 약 15년이 흐른 후 철부지가 된 기분에 묘하게 무서우면서도 재밌었어. 그렇지만 새해가 다가오는 것이 점점 무게감으로 다가왔고, 회사 이름이 찍힌 명함이 내게 부여해주었던 정체성, 소속감과 같은 사회적 힘이 이제는 없어진, 세상에 홀로 서 있는 통나무가 바로 나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어. 그렇게 12월 31일에 마지막으로 롤 한 판 때린 후에 컴퓨터에서 삭제했어. 중간 중간 너무 다시 깔고 싶었지만 컴맹인데다 컴퓨터 관련해서 뭐 하는 걸 굉장히 귀찮아해서 다시 할 수 없었어. 남편이 '다시 깔아줄까? 게임 하면서도 일 잘 하면 되잖아~' 하며 달콤하게 유혹했지만 '난 롤 아무리 해도 실력이 안 늘어서 시간 낭비야ㅠ' 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너무 빠르게 인정하더라고? 그 이후로는 게임이란 걸 정말 안했어. (그러다 임신이라는 또 다른 Big event가 생기니 문명이란 것에 손을 대기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소심해서 마냥 놀지도 못함
그래도 마냥 놀기는 좀 그랬는지 롤을 하던 전후로는 '무슨 사업을 할 건가?'라는 생각은 여러가지 해보았어. 일단 나는 중국 지식재산권법 중에서도 상표법과 저작권법의 충돌이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써서 지식재산 관련해서 관심이 많은 상태였어. 그런데 지식재산에서 제대로 하려면 변리사가 되어야 하는데, 내게 변리사가 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거든.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저작권'이라는 것에 포커싱이 되었지. 또 저작권을 법률로 풀어가면 변리사는 물론 변호사랑도 경쟁을 해야하는데 나는 승산 없는 일은 웬만해선 안 하는 쫄보라서... 자동 패스했지. 전문지식을 이용해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권리를 활용해서 사업화하는 분야로 고민해보기 시작했어. 저작권 사업인거지.
흠 그렇다면 저작권이 다루는 분야가 뭐가 있나. 찬찬히 기억해내니 출판, 음악, 미술,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것들이 생각났어. 소프트웨어는 컴맹이니까 치우고, 출판이랑 음악은 너무 시스템이 잘 조직되어 있어서 사업화 하기가 힘들 것 같았어. 그나마 느슨하게 얽혀있는 것 같은 미술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원화를 파는 갤러리보다는 이미 있는 그림들의 저작권을 활용해서 내가 제작과 판매를 맡고 저작권료를 분배하면 좋을 것 같았어. 그런데 여기서 바로 엘디프로 이어진 건 아니야.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하지 못하다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여러 회사들 다니면서 인쇄소랑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차 저작물 자체를 그대로 활용해서 포스터로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어.
이 결정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올 줄 누가 알았어?
돌고돌아 벼락치기
브런치를 시작할 때 '양벼락'이라는 작가명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작가명이 생겨난 이유는 나 늘 벼락치듯 일을 저지르고 해치우고 지쳐 쓰러져서 그렇거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할 때 어떤 계획으로 브런치를 이용할거냐는 질문에 '내 인생 전반에 걸친 벼락치기를 시리즈로 작업하겠다'고 말만 거창하게 했다지. 아무튼 그래서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벼락치기 시리즈는 '창업도 벼락치기', '임신도 벼락치기', '출산도 벼락치기', '육아도 벼락치기', '결혼도 벼락치기' 같은 것들이 있는데, 창업도 벼락치기는 아예 시작도 못했었어. 출산벼락은 약 한 달 정도의 일을 담은 거였기 때문에 빨리 끝낼 수 있었고, 임신벼락/육아벼락은 쓰다가 뒷전이 되었지(역시 나는 양벼락이여!)
아무튼 지금 이번 덕업일치를 내용을 쓰다 보니 내 인생 중 7-8년을 다루는 내용이라서 도저히 짧게 써지지 않을 거 같네. 처음에 쓰기 시작할 땐 쓰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결국 돌고돌아 처음으로 왔구나. 그래 이참에 이 시리즈 시작해보고, 벼락치지만 말고 끝도 내보자. 내가 투머치토커라서 늘 글이 늘어지곤 하니 퇴사편, 사업구상편 과 같이 편권을 나눌 것 같은데, 여기서 '편'자는 '퍼즐 조각'을 모으는 느낌으로 '조각 片'를 써보겠어. 역시나 시계열적으로 안 쓰게 될 거 같아서 말이지.
진솔 - Waterdrop 모빌
덕업일치 Issue No.9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엘디프 소속 진솔 작가의 <Waterdrop>이라는 모빌 작품이다. 진솔 작가와는 보통의 엘디프 계약이 그렇듯이 포스터나 액자와 같은 에디션 계약으로 인연을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모빌 작품을 업로드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업로드 된 사진 자체가 예뻐서 모빌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어 팔자고 제안하면서 인연이 연장되었다. 시간이 흘러 '엘디프 더굿즈'라는 굿즈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고 진솔의 모빌과 같이 아티스트들이 직접 만드는 인테리어 오브제를 판매하게 되면서 인연에 힘이 더해졌다. 진솔의 모빌은 화려한 듯 조용한 그 무언가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복잡한 마음이 들다가도 진솔의 곡선과 도형이 아찔하게 중심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그것이 예기치 못한 바람에 흔들려 주기까지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눈 가득 담은 아름다움이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의 개운한 충족감이 올라온다. 이지적인 굴곡와 단정한 팬던트에 홀려 그녀의 인터뷰를 읽는다. 퇴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 어떤 타인에게 시각적 완성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안한 퇴사, 흔들리는 도형, 그런 것들이 아름다움이라는 역에 다다르기는 참 힘든데 말이다.
작업 노트 - Waterdrop, Height 28cm, Stainless and Acrylic
7살 때부터 그림을 손에서 뗀 적이 없었어요.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그림은 제 인생에서 늘 함께 해왔어요. 하지만, 대학입시 전 안정적으로 돈을 벌려면 작가보단 디자이너가 낫지 않을까 란 생각에 의상디자인과에 들어갔고, 대기업에서 일했었어요. 하지만 일을 할수록 옷보다는 회화나 조형 다른 요소로 작업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고, 돈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더 중요하더라구요. 틈틈이 퇴근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야근이나 바쁜 시즌에 그림을 못 그리는 시기가 오면 너무 힘들고 우울했어요. 그래서, 퇴사 후 본격적으로 개인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